키다리와 천하장사
"처녀가 총각 만나는데
이유가 필요해요?"
그렇게 말하던 남자가
"얌전하고 예쁜 여자 소개해 주시죠!"
......?
와, 인생 삼십 년, 내 촉이
그렇게 빗나간 건 처음이다.
미치지 않았니?
김칫국도 그렇게 사발째로 들이키면
체하지 않겠냐구!
그날, 김칫국에 푹 뒤집어쓴 후유증?
말도 마
속은 부글부글, 아랫입술은 잘근잘근 깨물어서
짓이겨졌지 뭐니
그 남자
롤러 한번 꾹 밀더니 마치
무슨 일 있냐는 듯
태연하게 눈만 끔뻑이더라.
그 꼴을 보니
내 속에선 용광로가 끓어올랐지만
복식호흡하며 '진정하자!'를 외쳤지.
그리고
그 남자에게 태연하게 말했어.
"아하하 친구요? 있죠~
이상형이 얌전하고 예쁜 사람이면..."
그 말에 이 남자, 이마 주름까지 활짝 펴더니
생기가 도는데 그런모습 처음 보겠더라구.
"키 크고, 눈도 예쁘면 더 좋죠"
얼씨구!!
'예쁘고 얌전하고 키 크고 눈 예쁘고...'
"아, 네..." 대답은 했지만
이건 뭐라는 거니?
그래서 나는
'키 안 크고 덜 얌전하고 눈이 예쁘지 않다?'
어헛! 나도 자존심이 있잖니.
"그럼, 저도 친구분 소개해 주시는 거예요?"
맘에도 없는 소리를 툭!! 지껄이고 말았어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어.
"아침이슬 카페로 나오시죠!"
한 마디 하고 끊는 거 있지?
자기가 무슨
한마디 소통 달인이니?
심장이 자존심도 없이
또 살짝 심쿵 하더라고
저번에 나댔다가 좀 망신당했니?
고만!! 맘 단속을 했어.
카페에 들어서는데
웬일? 이 남자가 먼저 와 있는 거야!
달달한 팝송, 은은한 조명,
DJ가 헤드폰을 끼고 LP를 만지작거리고
있었어
이 분위기 너무 로맨틱하지 않니?
근데, 이 남자 신문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거야
아무리 숨겨도 그 비주얼이 어딜 가겠니?
단박에 쪼르르 달려갔지.
"저..."
인기척에 그가 신문을 내리더라
"헉!!!"
귀티 나는 얼굴?
눈 씻고 봐도 아니었어
귀티는커녕 큰 바위 얼굴에
검게 그을린 피부
두툼하고 큰 입술...
"죄. 죄송합니다 사람을 찾느라고요..."
그 남자도 당황했는지
"허억"인지 "끄억"인지 소리를 내더라.
힘 빠져서 자리에 앉으려는데
그 순간 카페 입구에 광채가 번쩍이는가
싶더라.
드디어!
천하장사가 등장하신 거지.
아. 역시...
뽀얀 피부
윤기나는 머릿결
매달리고 싶은 우람한 팔뚝
부드러운 눈매
살짝 올라간 입꼬리까지...
내 심장은 또 나대고 말았지 뭐야.
이 남자
내 맞은편에 앉더라
"잘 지냈어요?"
어머, 목소리까지 달달해!
"바쁘셨나봐요?
저기, 저분이신가 착각했거든요~"
이 남자 내 말을 듣더니 싱긋 웃더라.
...'저 웃음은 반칙이다' 생각하고 있는데
그때였어
이 남자가 고개를 돌리더니
"어이!"
어머나!
신문 그 남자가 일어섰어
그 남자가 우리를 향해 걸어오더라?
근데 더 충격적인 건
키가 ... 거의 190은 돼 보였어.
입이 떠억 벌어졌지.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거구의 남자 두 명과
마주 앉게 됐지 뭐니?
천하장사가 말했어
"여긴 내 친구에요"
"전교에서 제일 큰 친구죠."
"버스 타면 머리가 천장에 닿아서
환풍구에 머리를 내놓고 타지요."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니?'
그런데 더 충격인 건
그 키다리 남자의 목소리였어
"안녕하세요 ㅇㅇㅇ씨 반갑습니다웩!"
말은 분명히 반갑다고 하는데
느낌은 무섭게 들렸어.
"우리가 한 덩치 하니 형님들 귄유도 있었지만
친구랑 우리는 착하게 살고 있습니다 웩!"
마치 돼지우리에서 울리는 듯한
웩웩대는 듯한 저음
말을 할 때마다 카페가 진동하는 줄 알았어.
도무지 무슨 말인지 보다
소리에 압도당하니
"아. 네..." 대답은 했지만
영혼이 가출한 표정이지 않았겠니?
아마도 덩치들이 크니까 조직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다는 말인가 봐.
천하장사는 미소를 짓고
키다리는 웩웩거리고
음악은 달달하고
나는 제정신 아니었지 뭐니.
그때 키다리가 물었어
"식사해야죠 웩
뭐 드실 거예요. 웩"
메뉴판을 펴는데...
이 거구의 남자들과 밥을 먹는다고?
아. 이건 고문이다 싶더라.
백 퍼센트 체하고 말지 안 그러겠니?
나도 모르게
"어.. 전 오렌지주스 할게요"
라고 해버렸어.
도대체 이런 남자를 나에게 소개한
저 천하장사는 제정신인 거니?
식사 내내
천하장사는 웃고
키다리는 웩웩거리고
음악은 로맨틱하지만
내 정신이 혼미해서
내내 쇼생크 탈출만 생각했어.
결국,
쪼르륵 주스를 바닥내고
벌떡 일어섰더니
두 거구가 동시에 일어서더라.
갑자기 형님들 앞에
똘마니가 된 것처럼
'나 다 일어선 거 맞니?'
천하장사와 키다리의
두 거구의
위협인지 에스코트인지
정신없이 나오는데 키다리가 말했어.
"ㅇㅇ씨 담 주에 봅시다 웩"
"친구분도 꼭 같이 나오세요 웩!!"
천하장사는 배시시 웃고 있더라.
"필시, 이건 꿈일 거야
아니, 절대 꿈은 아니지"
도망치듯이 카페 계단을 내려왔어.
카페 입구에서 하늘을 봤거든?
와아~
그 파란 하늘, 지금도 잊히질 않는다.
그 자유,
감옥에서 탈출한 거 같은 해방감!
난,
단호하게 외쳤어
"저 남자들이랑
내 인생이 엮일 일은 없다,
두 번 다시 절대 없다!"
......
과연,
내 말처럼 운명은 흘러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