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남자 3화

내 인연은 어디에...

by 김사임



"처녀가 총각 만나는 데 이유가 필요해요?"


그 말에 김칫국을 원샷하고,

두 번째는 190 거구 키다리 소개받았지.

솔직히… 꽤 충격이 컸다.


아무리 생각해도 천하장사,

참, 눈썰미는 별로다 싶었어.

어쩌자고 '버스 환풍구에 머리 넣는 남자'를

소개할 수가 있냐고.

말도 마

그 충격 때문에 며칠 동안 말문이 막혔잖니.


우리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어.


"남자는 만나면 세 번 안에 끝내라!"


"차 마시고, 밥 먹고, 대화 나눠보면 결론 나는 거다."


유교적이고 꽉 막힌 지론이었지만

그 시절엔 아버지 말씀이 법이었잖니.


그 기준대로라면,

키다리는 벌써 두 번 만났으니 아웃 직전.

천하장사는 친구 소개라는 명목으로

세 번째 만남이 코앞이었어.

사실상, 결론의 문턱에 서 있었던 거지.


카페에서 이미 키다리랑 나의 조합은

‘무리수’ 그 자체였어.

아무리 좋아한들 키 190

남자 겨드랑이에 파묻혀 다닐 순 없잖아.

사람들 구경거리 될 일 있니?


그런데 더 웃긴 건,

키다리가 자꾸 전화를 걸어오는 거야.

특유의 저음으로,


"ㅇㅇ씨, 밥 드셨어요? 웩!"


심지어 천하장사도 전화를 하기 시작했어.

근데 정작 자기 얘기는 안 하고

계속 키다리 근황만 묻는거야.


"키다리 친구 연락 자주 해요?"

"요즘 연락 오죠?"


이 남자 왜 이러니?


아니, 소개했으면 빠지는 게 예의 아닌가?

이유가 뭔지 모르겠더라구.


그렇게 묘한 일주일이 지나고

드디어 약속한 날이 됐어.






천하장사 바람대로

까맣고 진한 눈썹에 큼직한 눈,

얌전하긴 롤러도 못 따라올 내 친구를

소개해 주기로 한 날이었지.


장소는 '흑과 백'이라는 카페였어.

인테리어도, 조명도, 메뉴판까지 흑백.

딱, 두 쌍 커플의 대비를 보여주는 무대랄까?


마침내,

천하장사와 키다리,

나와 내 친구

정말 흑과 백의 구도 속에서 네 명이 마주 앉았어.


천하장사는 사람 좋은 얼굴로 인사했고

내 친구는 특유의 수줍은 표정으로

"피식…"

살짝 고개만 숙였어.

얌전한 그 모습에 천하장사 표정이 사르르 풀리더라.


그걸 보며 내 마음은

괜히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어.


그런데 그때

"ㅇㅇ씨, 오늘 더 예뻐 보이십니다. 웩!"

키다리는 내 속도 모르고 웩웩거렸지.


나는 이미 마음을 접은 상태라

마음 놓고 웃었더니,

그걸 또 키다리가 오해한 모양이야.

내가 웃으니까

자기한테 마음이 있는 줄 아는 거 같더라고.


진심은 천하장사 쪽인데

왜 나는 키다리랑 마주 앉아 있는 건지…

속이 좀.. 불편했겠니?.


신기한 건,

말 없던 천하장사와 내 친구였어

의외로 대화가 잘 이어지는 거 있지?

둘 다 조용조용한 스타일인데도

왠지 찰떡처럼 술술 잘 통하는 분위기였어.


그걸 지켜보는데,

내 친구가 괜히 더 예뻐 보이는 거야.

큰 눈도, 웃을 때 손으로 입 가리는 모습도

내가 봐도 예쁜데

남자들 눈에는 오죽할까 싶더라.


괜히 나는

'삐삐니 뭐니, 나대기나 하고... 어휴!!'

김칫국만 원샷하던 지난날이 떠오르더라고.

역시, 친구처럼 조신해야

남자들에게 어필하나 보다 싶었지.


그 와중에 키다리는 또

"ㅇㅇ씨, 이것 좀 드셔보세요 웩!"

계속 이것저것 챙겨주는데

속으론 울고 있었어.


'제발 고만하셔요… 우린 안 될 사입니다…

제발,우리.. 거울 좀 봅시다…'






그러던 중,

천하장사와 내 친구는

급기야

여행 얘기까지 진도가 나가기 시작했어.


바닷가 모래사장이 어떻다느니

여름엔 역시 바다라는 둥

이런 대화까지 오가는 거야.


그러더니

천하장사가 내 친구 돈가스 접시를 가져다가

스윽스윽 잘라주는 거야.


'아니, 이 싸람들이..

벌써 커플 모드야 뭐야?'


그 광경을 키다리도 봤어.

그러더니 내 돈가스 접시에 손을 뻗더라.

그래서 재빨리 접시를 사수했지.


"아, 아뇨! 제가 할게요!"


그 말에 키다리가 멈칫

무안한 기색이 역력했어.


그 장면을

천하장사랑 친구도 다 봤거든?

그 둘이

우릴 보고 멋쩍게 웃더라.


이쯤 되니

천하장사랑 친구는 거의 커플 분위기.

키다리와 나는 어정쩡한 줄다리기


‘그래, 너넨 잘 어울린다…’

싶으면서도 괜히 마음이 씁쓸했어.


그때 갑자기

키다리가 툭 한마디 던졌어.


"우리 넷이 바닷가나 갈까요? 웩!"


"뭐라고요???"

나는 반사적으로 외쳤어


‘키다리랑 수영복 입고 바닷가를 걷는 상상…?’


으...

이건 그냥 '고목나무에 매미'

생각만 해도 열받지 뭐니


그런데 천하장사랑 내 친구는

"가도 괜찮지 뭐~"

이런 눈빛이더라


'그래, 잘들 해봐라.

나는 아니다.'


허공을 보며 허허거리는 키다리를 보며

‘이걸 어떻게 마무리 멘트를 날리지?…’

속으로 고민하고 있었어.


천하장사와 내 친구는 커플 당첨

나는 키다리와 이별!


'아. 내 짝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거냐...?'

생각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천하장사가 내 친구에게

정색하며 물었어.



.....




"혹시… 영규 동생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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