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연은 어디에...
"처녀가 총각 만나는 데 이유가 필요해요?"
그 말에 김칫국을 원샷하고,
두 번째는 190 거구 키다리 소개받았지.
솔직히… 꽤 충격이 컸다.
아무리 생각해도 천하장사,
참, 눈썰미는 별로다 싶었어.
어쩌자고 '버스 환풍구에 머리 넣는 남자'를
소개할 수가 있냐고.
말도 마
그 충격 때문에 며칠 동안 말문이 막혔잖니.
우리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어.
"남자는 만나면 세 번 안에 끝내라!"
"차 마시고, 밥 먹고, 대화 나눠보면 결론 나는 거다."
유교적이고 꽉 막힌 지론이었지만
그 시절엔 아버지 말씀이 법이었잖니.
그 기준대로라면,
키다리는 벌써 두 번 만났으니 아웃 직전.
천하장사는 친구 소개라는 명목으로
세 번째 만남이 코앞이었어.
사실상, 결론의 문턱에 서 있었던 거지.
카페에서 이미 키다리랑 나의 조합은
‘무리수’ 그 자체였어.
아무리 좋아한들 키 190
남자 겨드랑이에 파묻혀 다닐 순 없잖아.
사람들 구경거리 될 일 있니?
그런데 더 웃긴 건,
키다리가 자꾸 전화를 걸어오는 거야.
특유의 저음으로,
"ㅇㅇ씨, 밥 드셨어요? 웩!"
심지어 천하장사도 전화를 하기 시작했어.
근데 정작 자기 얘기는 안 하고
계속 키다리 근황만 묻는거야.
"키다리 친구 연락 자주 해요?"
"요즘 연락 오죠?"
이 남자 왜 이러니?
아니, 소개했으면 빠지는 게 예의 아닌가?
그 이유가 뭔지 모르겠더라구.
그렇게 묘한 일주일이 지나고
드디어 약속한 날이 됐어.
천하장사 바람대로
까맣고 진한 눈썹에 큼직한 눈,
얌전하긴 롤러도 못 따라올 내 친구를
소개해 주기로 한 날이었지.
장소는 '흑과 백'이라는 카페였어.
인테리어도, 조명도, 메뉴판까지 흑백.
딱, 두 쌍 커플의 대비를 보여주는 무대랄까?
마침내,
천하장사와 키다리,
나와 내 친구
정말 흑과 백의 구도 속에서 네 명이 마주 앉았어.
천하장사는 사람 좋은 얼굴로 인사했고
내 친구는 특유의 수줍은 표정으로
"피식…"
살짝 고개만 숙였어.
얌전한 그 모습에 천하장사 표정이 사르르 풀리더라.
그걸 보며 내 마음은
괜히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어.
그런데 그때
"ㅇㅇ씨, 오늘 더 예뻐 보이십니다. 웩!"
키다리는 내 속도 모르고 웩웩거렸지.
나는 이미 마음을 접은 상태라
마음 놓고 웃었더니,
그걸 또 키다리가 오해한 모양이야.
내가 웃으니까
자기한테 마음이 있는 줄 아는 거 같더라고.
진심은 천하장사 쪽인데
왜 나는 키다리랑 마주 앉아 있는 건지…
속이 좀.. 불편했겠니?.
신기한 건,
말 없던 천하장사와 내 친구였어
의외로 대화가 잘 이어지는 거 있지?
둘 다 조용조용한 스타일인데도
왠지 찰떡처럼 술술 잘 통하는 분위기였어.
그걸 지켜보는데,
내 친구가 괜히 더 예뻐 보이는 거야.
큰 눈도, 웃을 때 손으로 입 가리는 모습도
내가 봐도 예쁜데
남자들 눈에는 오죽할까 싶더라.
괜히 나는
'삐삐니 뭐니, 나대기나 하고... 어휴!!'
김칫국만 원샷하던 지난날이 떠오르더라고.
역시, 친구처럼 조신해야
남자들에게 어필하나 보다 싶었지.
그 와중에 키다리는 또
"ㅇㅇ씨, 이것 좀 드셔보세요 웩!"
계속 이것저것 챙겨주는데
속으론 울고 있었어.
'제발 고만하셔요… 우린 안 될 사입니다…
제발,우리.. 거울 좀 봅시다…'
그러던 중,
천하장사와 내 친구는
급기야
여행 얘기까지 진도가 나가기 시작했어.
바닷가 모래사장이 어떻다느니
여름엔 역시 바다라는 둥
이런 대화까지 오가는 거야.
그러더니
천하장사가 내 친구 돈가스 접시를 가져다가
스윽스윽 잘라주는 거야.
'아니, 이 싸람들이..
벌써 커플 모드야 뭐야?'
그 광경을 키다리도 봤어.
그러더니 내 돈가스 접시에 손을 뻗더라.
그래서 재빨리 접시를 사수했지.
"아, 아뇨! 제가 할게요!"
그 말에 키다리가 멈칫
무안한 기색이 역력했어.
그 장면을
천하장사랑 친구도 다 봤거든?
그 둘이
우릴 보고 멋쩍게 웃더라.
이쯤 되니
천하장사랑 친구는 거의 커플 분위기.
키다리와 나는 어정쩡한 줄다리기
‘그래, 너넨 잘 어울린다…’
싶으면서도 괜히 마음이 씁쓸했어.
그때 갑자기
키다리가 툭 한마디 던졌어.
"우리 넷이 바닷가나 갈까요? 웩!"
"뭐라고요???"
나는 반사적으로 외쳤어
‘키다리랑 수영복 입고 바닷가를 걷는 상상…?’
으...
이건 그냥 '고목나무에 매미'
생각만 해도 열받지 뭐니
그런데 천하장사랑 내 친구는
"가도 괜찮지 뭐~"
이런 눈빛이더라
'그래, 잘들 해봐라.
나는 아니다.'
허공을 보며 허허거리는 키다리를 보며
‘이걸 어떻게 마무리 멘트를 날리지?…’
속으로 고민하고 있었어.
천하장사와 내 친구는 커플 당첨
나는 키다리와 이별!
'아. 내 짝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거냐...?'
생각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천하장사가 내 친구에게
정색하며 물었어.
.....
"혹시… 영규 동생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