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타실래요?(2)

사람은 망각의 동물

by 김사임



스무 살 무렵, 봉고차에 한 번 잘못 올라탔다가
뼈저리게 후회한 뒤로 다짐했었다.

"내 인생에, 낯선 차는 없다."

살면서 그 일은 까마득히 묻혔다.






결혼 후, 운전면허를 따겠다고 결심한
어느 여름,
노란 셔틀을 기다리며 도로를 살피고 있는데,
갑자기 검은색 번쩍이는 세단 한 대가 내 앞에 ‘슥’ 멈춰 선 거다.

‘나랑은 상관없겠지’ 하며 시선을 피해 셔틀이 오는 길을 굽어보는데
고급 세단의 창문이 천천히 내려가더니
말끔하게 차려입은, 잘생긴 신사가 나를 불렀다.

“저기요?”

“저요?”

의아한 얼굴로 되묻자, 그는 약간 머뭇거리더니


“저… 커피 한 잔 뽑아주시겠어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어머 별꼴이야… '


'아니, 자기는 손이 없어?'


'차가 좋다고 사람이 시다바리로 보이나?’

“아니 왜요… 직접 뽑아 드세요”

살짝 불쾌한 말투가 나왔다.

그랬더니 그의 표정이 순간 당황했다.

“아, 그게… 죄송합니다. 제가 몸이 좀 불편해서요.
부탁드립니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지갑을 내미는 거였다.

‘몸이… 불편하다고?’

그 말에 놀라서 살짝 바라보니
정말 얼굴이 핼쑥한 것 같기도 했다.


태도도 정중하고

정말 몸이 불편한 사람이라면

'차 한 잔인데 어때'

얼떨결에 지갑을 받아 들고
자판기로 향했는데, 지갑을 열어보니 웬걸, 지폐하고 동전이 묵직하게 들어 있는 거다.

‘뭐야… 저 사람, 나한테 지갑을 맡기고
내가 지갑 들고 튀면 어쩌려고…
푸하하, 순진하기도 하지.’


순간, 경계심을 늦추며 커피를 뽑아 건네는 순간


아뿔싸…


그 순간 운전면허 노란 셔틀버스가 휙~ 지나가버렸다.

“아, 어떡해 셔틀버스 가버리네~”

당황해서 말했더니,


“아…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이걸 어쩌죠…”
잔뜩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괜찮아요. 걸어가면 되죠 뭐.”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타는 여름날 땡볕에 걸어가려니 막막하긴 했다.

서둘러서 걸어가기 시작했는데...
커피를 받아 든 그의 세단이 내 걸음에 맞춰
내 옆을 천천히 따라오는 거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자기 때문이라고...

몇 번이고 거절했지만,


“정말 죄송해서 그래요. 나쁜 사람 아닙니다”


그 말에 잠시.. 흔들렸다.

생각해 보니,
운전 연수받으러 가는데
한여름 땡볕에 땀으로 범벅이 되어서
연수받으려면 강사님께도 민폐겠구나.
거리도 십 분 남짓.

‘타? 말아?’
망설이는 내게 그가 마지막 한 방을 날렸다.

“에이~ 잠깐인데요, 어서 타세요.”

'그래, 나쁜 사람 같지 않아 '


나는 또 그 말에 넘어가고 말았다.


타고나니 살짝 두려웠지만
차로 움직이니 빠르게 운전학원에 도착했다.

십여 분남짓 그 짧은 시간에
자기는 결혼은 했지만 공부하고 있다느니
아내가 나가면 오전에 시간이 있다느니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그런가 보다 하고
지각할 걱정만 앞섰다.






그렇게 어색한 시간도 잠시
운전면허 학원에 무사히 도착했다.


‘타길 잘했네!.’


고맙다고 인사하고 내리려는데
문이 안 열리는 거다.

“어? 문이 왜 이러죠?”

당황하는 나에게,
그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고맙기도 하고… 잠시지만 정말 제 스타일이세요.
혹시, 저랑… 알고 지내면 안 될까요?”

'아. 이건 또 뭐란 말인가?'

마음은 바쁘고 운전면허 강사들이 모두
세단을 주시하며 먼발치서 보고 있었다.

갑자기 자기 신상을 줄줄 읊어대는데,
나보다 다섯 살 연하다.

문이 열리지 않으니
이대로 출발하면 나는...
뭐라고 말하는 그 사람 말은 안중에 없고

그저 숨이 콱 막혔다.

이성 문제만큼은 무지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란 나에게는 텍도 없는 소리였다.

“안 됩니다! 열어주세요, 뭐 하시는 거예요?”
하며 펄쩍 뛰었다.

설득을 계속하던 그는
내 완강한 거절에 풀이 죽은 얼굴로 말했다.

“너무 아쉽지만… 이것도 인연인데
저랑.. 악수 한 번만 해주면 열어드릴게요.”


'뭐, 악수라고?!!'


어이없었지만
어서 이 상황을 탈출이나 하자 싶어
손끝만 툭 내밀었다.


그런데 그 손이 어찌나 가늘고 힘이 없는지,
‘진짜 어디 아픈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갔다.


그러고선 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갑자기 예전 봉고차 기억이 떠오르면서

아이 참, 또 이런 일이...






그러나 마나
정신없는 상황에서 벗어나
운전학원 장내 주행장에 도착하니
할아버지 강사님이 소리치신다.

"아니 오늘 왜 이리 늦었어요?"

"그러고 저 차는 또 뭐여~"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단호하게 야단을 치신다.

“이 아줌마가 겁이 없네.
앞으로 모르는 차 타지 마요!
알았어요?"

"험한 세상에 정신 차려요.
이런 나쁜 놈이 있나!"

할아버지 강사님이 그렇게 야단치는데 너무 든든하고 기분이 좋았다.

“예, 이제 안 그럴게요~” 하고
무사히 강습을 마쳤다.



그렇게 정신없는 하루에 지쳐서
아파트에 도착했는데...

아니, 이건 또 뭔가??

우리 아파트 단지 입구에,
아까 전 그 검은 세단이

떡! 주차돼 있는 것이다.

머릿속이 하얘지며
혼잣말이 새어 나왔다.



"뭐야… 희멀건이 우리 아파트 주민??"


그 당시
우리 아파트와 우체국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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