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마음을 보여줘!
"아. 이게 무슨 일이니?"
돌고 돌아,
내가 천하장사랑 사귀게 될 줄 누가 알았겠니?
그날 이후,
출근길에도 천하장사가
퇴근길에도 어디선가 나타나는 거 있지?
카페 들렀다 집까지 바래다주는...
그렇게 내게도 태어나 처음 연애라는 것이 시작되었어.
아버지 말씀에
"남자는 세 번 안에 정해라"
늘 그 선을 넘지 않았는데,
그 선을 넘은 건 처음이었지.
어느 날
천하장사가 키다리랑 만나자고 해서
카페에서 셋이 만났어.
천하장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키다리가 슬쩍 말하더라.
"둘이 사귄다면서요.
장점만 보지 마시고... 자세히 보세요. 웩!"
뭐?
응원도 충고도 아닌...
그 눈빛도 이상하게 슬퍼 보이지 뭐니?
며칠 뒤,
회사에 외부 출장 있는 날이었어.
회장님 차를 타게 됐는데
기절할 뻔했잖니.
운전석에 천하장사가 앉아 있는 거야!
뭐야, 이 남자...
그 순간,
회장님이 태연하게 한마디 하셨지.
"어, 여기는 우리 아들 서로 인사해!."
헉!!
천하장사, 회장님 아들이었어?
"아. 안녕하세요?"
우리는 처음 본 듯 인사하고
그날 하루 종일,
둘 다 입틀막 하고 있었지 뭐야
그 뒤로 회장님께서 나에 대해 종종 이야기하셨다는 걸 듣게 되었지.
근데,
사랑이란 게 그런 거니?
회장님 아들이고 뭐고 순탄하지만은 않았어
천하장사를 만날수록 말이 없으니
도통 속내를 알 수가 없으니
점점 지치더라고
나도 연애가 처음이잖니
이 사람이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답답하기 그지없는 거야.
어느 날은
"제주도 미스코리아 출신이 나 좋아한대요."
"학과에 귀여운 후배가 자꾸 연락하네."
아니, 이건 무슨 심리인 거니?
연애가 아니라 감정 고문이더라.
심지어 주말엔,
"소개팅 나가도 될까요?"
묻기까지 하는 거야
아니,
누구 인내심 테스트하는 거니?
사귀자고 하고선 소개팅을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다니
그래서 쿨한 척 대답했지.
"네.. 뭐, 마음껏 만나보세요~"
그러고선 열불이 터져서 밤잠을 설치지
않았겠니.
하지만,
그가 몰랐던 게 하나 있었지.
이 남자랑 만나는 그 시점부터 신기하게
내 주변에 남자들이 메뚜기 떼처럼
몰려들었다는 사실 말이야.
아버지 직장 총각은 우리 부모님을 공략하고,
거래처 남자는 나 보겠다고 하숙까지 얻고,
병원장 부인은 건물주 소개한다고 난리,
심지어 나 모르게 출근길에 날 지켜보는
훈남도 있었어.
정말 드라마 같은 현실이었거든?
그리던 어느 날이었어.
천하장사와 점심 먹는데 또 한마디 하더라
"눈이 예쁜 여자랑 결혼하려고 했는데..."
그러면서 나더러
"못난이!!."
그 전날,
하숙까지 잡고 쫓아다닌 남자를 거절하려고
딱 한 번 만났거든?
그 남자,
해인사 법정 스님 아래서 공부한 사람이라는데
점퍼 지퍼를 확 내리더니
"이렇게 제 마음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러면서 울더라고.
그러더니 팔만대장경 인쇄본처럼 반듯한
글씨로 쓴 5장짜리 손 편지를 내밀더라.
그래도 단번에 거절하고 왔는데...
그런데, 이 천하장사란 사람,
정작 본인은 거드름만 피우고
미스코리아가 어떻다느니
소개팅을 한다느니 염장을 지르더니
끝내 "못난이"라고?
어이가 없어서
마침, 핸드백에 편지가 보이더라
홧김에 그 편지를 툭 내밀었지.
"좋은 사람 있으면 미련 없이 가세요!."
천하장사,
눈이 동그래져서 편지를 읽더라
그러더니
얼굴이 벌겋게 변하는가 싶더니
벌떡 일어나서 그대로
찻집을 박차고 나가버렸어.
'아, 이렇게 끝나는가 보다!' 싶었지
그런데, 그 순간 누가 지켜보기라도 한 거니?
민방공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렸어.
호루라기 소리에
차량 방송에.. 밖이 소란스러웠지.
'도로 통제 중인데 갔나?'
한참
멍하니 앉아 있다가 복도에 나가봤어.
"아, 있었어"
창밖을 보고 있는
천하장사 넓은 등판을 보이더라.
나도 웃기는 여자야
조금 전 화난 일은 잊고
와락, 반가운 건 또 뭐니?
다른 남자들이
모두 내 앞에 조아려도 하나도
마음이 가지 않은데
왜 저런 무심한 남자에게만 마음이 가는지
나도 도통 모를 일이었어.
그런데 자꾸 나를 후벼 파니 충격요법을
쓸 수밖에 없었잖니?
그래도
너무했나 싶어서
조심스레 옆모습을 슬쩍 올려다봤어.
맙소사!!
천하장사 눈에서
눈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