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쎄인트의 책 이야기 Jun 02. 2021

이야기가 담긴 식물도감



【 식물학자의 노트 】- 식물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   

   _신혜우 / 김영사          


식물에 대해 먹는 이야기부터 해서 좀 미안하지만, ‘고사리’ 이야기가 새롭다. 고사리는 비빔밥이나 육개장에 빠질 수 없는 식재료이고, 나물로도 무쳐 먹는다. 서양인들은 동양인들이 고사리를 식재료로 쓰는 것을 무척 신기하게 여긴다고 한다. 서양인들은 고사리를 먹지 않을 뿐 아니라 독이 있다는 이유로 가축에게도 먹이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말리고, 불리고, 볶는 전통 조리 과정을 통해 독성을 제거해 섭취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에게 익숙한 고사리를 식물학에서는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다른 육상식물에 비해 아주 오랫동안 지구에서 잘 생존해왔기 때문이다. 고사리는 인간보다 한참 전에 지구에 출현했다고 한다.      


고사리들은 어떤 능력을 탑재했기에 이렇게 널리 오래도록 지구에서 번성할 수 있었을까? 고사리는 ‘양치식물’이다. 양치식물은 꽃 대신 포자를 만들어 번식하고 물관과 체관을 모두 가진 식물을 말한다. 고사리의 생명력은 타 식물과 다르게 매우 강하다고 한다. 원래 물속에 살던 고사리가 땅으로 나와 적응하면서 진화가 되었다고 한다. 지구상 최초의 나무는 고생대 석탄기에 나타나, 지금은 멸종한 와티에자속(Wattieza)에 속하는 고사리였다고 한다. 최초의 나무가 고사리였다는 것이 신기하다. 지금도 많은 나무고사리들이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은 처음 알게 되는 이야기다. “고사리를 보면서 새로운 변화에 잘 적응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천지개벽 같은 환경 변화라도 그것에 맞춰 혁신적으로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힘이 필요하겠지요. 또 옛것을 간직하면서도 새것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지혜와 유연함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우리 인간보다 더 오래 지구에 살고 있는 고사리가 알려주는 장수의 비결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책을 열기 전엔 단순히 식물학자의 식물관찰일지 정도의 내용이리라 섣불리 판단했다. 아니다. 잘못 생각했다. 식물에 대한 흥미롭고 세세한 이야기는 기본이고, 인문학적 성찰도 함께 한다. 책에 담긴 그림들은 세밀화(또는 극사실화)의 식물도감이다. 이 책의 저자 신혜우는 그림 그리는 식물학자이자 식물을 연구하는 화가라고 소개된다. 대학에서 생물학을 공부하고 식물분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식물 DNA 바코딩과 식물 게놈 연구 같은 최신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아울러 식물생태학 분야로 연구 범위를 넓히고 있는 신진연구자이다. 특이한 점은 영국왕립원예협회의 보태니컬 아트 국제전시회에서 금메달과 트로피를 연속 수상한 유일한 작가라는 점이다. 저자의 그림 실력이 이 책에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식물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라는 부제에 걸맞게 다양한 식물들의 속 깊은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이런 이야기도 흥미롭다. 저자가 2011년 개인전을 열었을 때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무심코 전화를 받고 보니, 전화를 건 사람이 자기소개를 하는데 동대문경찰서 강력계 형사라고 하자 갑자기 긴장되었다고 한다. “이건 뭐지?” 하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 형사는 덧붙여서 마약수사팀에 있다고 소개했다. 그 형사는 이어서 말하기를 저자의 전시회에서 식물 그림을 보았는데 혹시 양귀비꽃을 그려줄 수 없는지 묻더란다. 진짜 양귀비와 관상용으로 심는 꽃양귀비나 개양귀비를 구별할 수 있도록 그려서 정확한 지침서를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다. 동료 경찰이나 마약수사를 시작하는 후배 경찰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기에 특별히 부탁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말 좋은 일이라고 생각되어 관심이 생겼다. 그런데 그분이 양귀비는 경찰서 밖으로 반출이 되지 않으니 그리는 내내 경찰서 안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야기는 여기서 그쳤지만, 아마 저자가 시간을 내어 양귀비를 그려주었으리라 짐작된다.      




저자는 독성식물이야기를 이렇게 마무리한다. “식물의 독성을 독이라고 단순하게 명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식물에게는 독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때로는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때로는 공생을 위해 꺼내는 비장의 무기, 비장의 카드이기 때문이죠. ‘독을 품다’가 무서운 말 같지만 우리도 식물처럼 ‘독’. 자신만의 무기 하나쯤 품고 살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복잡다단한 세상을 헤쳐 나가려면 말입니다.”     


청소년 자녀들과 함께 볼 만한 책이다. ‘이야기가 담긴 식물도감’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책을 읽고 식물학으로 전공을 바꾸겠다고 할 자녀도 나올법하다. 아니면 보태니컬 아티스트를 꿈꾸던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한 리뷰"          


#식물학자의노트

#신혜우

#김영사     

#쎄인트의책이야기202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