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邊雜記▶ 오늘의 질문.
우선 ‘변한다 안 변한다’의 기준을 뭐로 보느냐에 따라 얘기가 달라진다.
습관이나 눈에 보이는 것, 감각적인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변화가 가능하다 아니다로 를 말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인간이 확 바뀌었다고? 그렇다면 죽었다 살아났거나 사랑을 하거나 아냐?
아님, 그 둘 다이거나...”
이 대사는 내 소설 <너의 첫사랑에게>의 상똘아이 남주가 인간화할 때,
쓰려도 적어둔 거였다. 사랑에 빠진 남자 주인공이 죽다 살아나서 180도로 바뀐다.
인생의 노선을 완전 갈아타기로 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꼭 완성할 거다. 대체 언제 구상한 거고, 대체 언제나 끝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소설이다. 마침표를 찍는 날이 오긴 오겠지? 능력도 턱 없는 데다가, 현재로는 왜 이야기를 이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무튼 나는 사람은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변화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쎄가 빠진다. 얄팍한 동기를 품었다 해도 변화를 실현시킬 노력을 하지 않는다.
현재 끌어안고 있는 불만족으로 부글부글~ '변하고 싶다'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입버릇처럼 달고 살면서도 변화 의지를 실제로 표출하는 게 무엇이 있나?
그 행동을 일주일, 최소 3일이라도 지속해 보았는가?
‘작심삼일’로 끝났더라도 작심삼일을 꾸준히 반복하고 또 반복하면 조금의 변화라도 있을 것이다.
이런 시도라도 해보았는가?
본위 아니게 극적인 경험으로 사고방식이나 행동이 바뀐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인의 눈에는 완벽히 180도로 완벽히 바뀌었다고 여겨질 정도로 말이다.
그렇다고 그 사람의 본성까지 바뀌었는가에 의문이다.
나는 사람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생각한다. 아니 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지닌 본성, 타고난 기질, 환경, 경험, 시간이 쌓아온 취향의 문제 등에서 완벽히 자유로울 수 없다.
(그 증거가 뭐냐, 뭘 근거로 주장하냐 따져도 할 말이 없다. 근본 없는 확증 편향이라도 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불편함과 고통을 감수하면서 변하려고 하는 이를 만난 적이 없다.
‘변하고 싶다’는 오히려 편해지고자 하는 욕구의 표현이었다.
현재의 불만과 불편함을 감수하며 어디론가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 아니었다.
게다가-,
'내 속엔 수많은 내가 있어~!'
'나도 나를 어쩔 수 없어.'
흔히들 뱉는 말이다.
진담으로 여기는 이 말을 나도 농담으로 던지곤 한다.
정말 나를 알 수가 없어서.
*
친해지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나'라는 애가 있다.
이런 애가 있는 줄도 몰랐던 때도 있었다. 인사를 나눴고, 친해지는 노력을 했고, 그래서 이제 정체를 알았나 싶었는데, 그러다 뒤통수를 얻어맞을 때가 있다. 화들짝 놀라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같이 묵어온 세월이 얼만데 아직도 왜 이 모양 이 꼴인진...
사정이 이런데... 이런 존재를 100% 알고 컨트롤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물론 일시적으로 가능할지도 모른다. 습관이나 패턴 같은 건 말이다.
변화를 부정하지 않는다. 사람은 감정과 사고, 행동, 경험 등등으로 변화해 갈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차라리 다시 태어나는 것이 빠른 일이다.
밑장 빼기 기술을 시현할 수 없는 시간을 쌓아왔으니.
이미 칠해진 캔버스에 새로운 색을 아무리 덧대도 결코 흰색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환골탈태!
뭐라도 조금씩, 쥐똥만큼이라도 바꾸려면 살과 뼈를 갈아내야 한다.
매일같이 매일같이.
변화를 위한 최소의 전제 조건!
덧칠하고 뭉개는 숨 가쁜 손놀림이 있어야 한다.
실패하고 좌절하더라도 어느 날엔가는 원하는 색에 가까워져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