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사회의 시민으로서의 책무]
돌아가기 전에 생활 잡화를 파는 곳에 들렀다.
딱히 필요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길들여진 개 마냥 무언가를 소비해야 할 것 같았다.
소비되어지는 정신보다 물질을 소비하는 것이 죄의식이 덜하기 때문이다.
쇼핑 카고(바구니)를 들고 자질구레한 것을 채웠다.
바구니에 쓸어 담기에 좋은 사이즈의 것들, 적당한 쓰임새에 대한 고려도 없는 잡화로 금세 가득해졌다.
주로 이런 것들이었다.
새로 출시된 스마트폰 충전기, 이와 세트이지만 별매인 2미터 코드선, 소금맛 치약, 칫솔, 혹시 모를 때를 위한 휴대용 필기구 세트, 무밍 캐릭터가 들어가 500미리 보틀, 살색 반창고, 고추냉이 맛이 난다는 목캔디 등등.
필요한 물품을 고르기 위하거나 가족 단위의 손님들이 대부분이었다.
최근에는 나 같은 손님을 위해서도 매장 곳곳에 친절함이 배려되어 있었다. 주로 잡스러운 것을 쓰러 담는 손님을 위해 매장 곳곳에 놓여 있는 카고들.
들어설 때에 카고 하나면 되겠다 싶지만, 금세 가득 차서 카고 하나로는 턱이 한없는 사태가 벌어진다. 매장 안의 사람들이 대부분 양팔에 카고가 들려 있었다.
나도 '하나 더 들까' 벌써부터 고민이 됐다.
매장의 전면 거울에 내 모습이 비쳤다.
문뜩 덮쳐온 자각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카고를 집어 올리려던 동작을 멈칫했다.
'확 미쳐 보기로 했으니... 그럴 작정으로 들어선 매장이지만 1부터 10까지 똑같은 패턴으로 할 필요는 없잖는가.'
'똑같든 말든 그게 무슨 차이가 있고, 누가 신경이나 쓴다고 마지막 자존심을 세우나…'
'그렇다고 이들과 내가 뭐가 다른데?'
멈춰 있던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럼에도 그대로 셀프 계산대로 향했다.
카고 속의 물건을 우르르 쏟았다.
쓸어 담은 것들을 가만히 내려다보니 필요가 없는 것뿐이었다.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내 주변에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이 이미 존재했다. 새 제품인데 오히려 기존의 것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것도 있었다.
애써 거부해온 이들의 패턴을 따르기로 했다.
자본주의 사회의 시민으로서 소비의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지. 지금 나는 충분한 역할을 한 것이다.'
이 사회에 대한 부채를 조금은 덜었다는 자만심에 입꼬리가 올라갔다.
방금 지불하고 입에 문 껌에서 화학 바닐라 향이 확 올라왔다.
"싸구려가 그렇지 뭐..."
한 번 쓰고, 한 번 씹다 버리면 그만인 데, 뭐!
납득의 고갯짓을 했다.
이 끄덕임에는 곧 이와 비슷하거나 거의 차이가 없는 자지레한 것들을 또 소비하겠다는 뜻이었다.
망설임도 없이 봉지를 가득 채우고, 가득해진 양 손으로 매장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