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단편]대나무숲 길이 이어지는...

by 유이지유

[대나무숲 길이 이어지는 창가]


너에게 이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모르겠어.

‘몽환 같은 이런 걸 전한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서 말이야.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지면서도 어떤 확신이 자꾸 차 들어서 결국 너에게 전화를 걸기로 했다.


무엇을 근거로 해서 그런 확실한 감정을 느꼈는지는 모르겠어.

다만 내 속에 어떤 빨간 버튼이 꾹! 을 눌렀으며 그것이 나를 어떤 확실한 감정 상태로 이끌었다는 것 정도를 알았을 뿐이야. 눌려진 것은 반동으로 반드시 올라오게 되어있는 법이잖아. 그것이 이치이기에 나는 이치에 맞는 행동하기로 한 거야.


너에게 말을 꺼내기로 한 시점에도, 건네고 난 후에도 그리고 앞으로 오랜동안 이 감정이 무엇에 연유한 것인지를 알아볼 참이야. 너에게 말을 꺼내야 꿈에 담긴 의미에 조금은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아. 해석해낼 수 있을 것 같아.


물론 얘기를 전하는 나와 듣는 너, 전혀 다른 것으로 해석할지 몰라도 그건 그것대로 괜찮다고 생각해.

말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일은 너무도 쉬운 일이잖아.

‘완벽히 같다’는 생각 자체가 착각이고,

그래서 ‘우리는 하나’라고 공감한다는 자체가 망상이고 오만인 거지.


자, 그럼 이제 얘기를 시작해 볼까?

내가 꾼 꿈은 이렇게 시작을 해.


너는 커다란 창가 앞에 앉아 있어.

내가 늘 보게 되는 모습은 창가로 시선이 향해 있는 너의 옆얼굴이었다.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누지만 그럴 때도 너의 시선의 한편은 늘 창가 밖, 열린 풍경을 향해 있었다.


지금은 이렇게 명확히 인지하는데 꿈속에서는 알지 못했다. 이전부터도 너의 시선은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항상 촉수를 뻗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우리는 꽤 얘기가 잘 통하는 사이였고, 다양한 화제로 몇 시간이고 신나서 수다를 떨던 사이여서 너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여겼는데 말이다.


근데 이제 와서 되짚어 보면, 그래서 깨달은 걸 말해보자면 어쩌면 나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 창문 너머에 대체 무엇이 있을까, 얘는 무엇을 보는 것일까?’

감으로는 네가 보고 있는 다른 곳을 이미 알고 있었는데, 내 이성이 문을 닫고 모른 척하고 있었던 거지.


의식이 눈치를 채고 그 너머의 세계를 알았다 한들, 그걸 내가 궁금해하기나 했을까?

‘뭔가가 있다고 한들 그게 뭐 그리 대수로울까?’ 하며 관심을 쏟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을 것 같다.


사람들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할 때,

대체로 그들이 어떤 곳에 머무는지, 어떤 심경이 될지, 나 나름대로 짐작할 수 있었다.

꿈에 방황하며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어긋나는 시선이 향하는 곳, 그런 세계는 위험하다.

불온하다.

일상의 안온을 파괴할지도 모른다.


아주 가끔, 창밖으로 향한 너의 시선을 느꼈을 때, 재빨리 감각을 닫을 수 있었던 것은...

빗겨 난 삶을 사는 네가 창문 너머로 보고 있는 것이 ‘옳은 삶’에 대한 동경! 뭐 그런 거겠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듯이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먼지들로 인해 분산되는 것이겠지.

삶은 그런 거잖아. 관계에 휘둘리고 그러면서 감정에 휩쓸리고...

우리 모두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 그렇게 살아가야 하잖아.

그게 ‘옳은 삶’인 거잖아!


내 주위의 모두는 같은 말을 해.

“삶이란 이렇고 저렇고”,

“저런 식으로 살면 안 되고”,

“저런 식으로 살아야 하고...”

나도 그들과 다르게 생각지 않아.

그렇다면 나의 삶도 옳은 거잖아.


근데 말이야, 어딘가에서 작은 바람소리가 들려와.


그날은 어딘가에서 작은 바람이 세는 소리가 자꾸 들려서 내 신경을 어지럽혔다.

어디가 세는 건지 알 수 없어서 나도 다른 것에 시선을 돌리고 싶어 졌다.


관계 속에서 옳은 삶을 추구하는 나는 문득 너는 어떤지 궁금해지더라.

왜냐면 너는 외따로 사는 사람이니까.


거슬리는 바람 소리 대신, 다른 소리를 듣고 싶어서 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부 겸 핑계 겸 전화를 걸었고, 조금은 뻘쭘하게 곧바로 너에게 질문을 던졌다.

궁금한 걸 잘 못 참는 나의 성격이 이럴 때 빛을 밝하지.


지금은 뭐라고 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 질문이지만, 나는 질문을 했고, 너는 나만큼이나 주저주저하며 말을 시작했다. 살아오면서 사람들에게 잘 받지 못했던 질문이었을 거야. 너의 생각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네 주변에는 거의 없었고, 있다고 해도 너의 공격의 대상이 될까 겁을 내며 말을 돌리려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 너도 나에게 질문을 했다.

그래서 이제 나도 나의 얘기를 너에게 들려준다.

나는 이야기를 시작해. 몽환 같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이런 이야기를...


“네가 대나무 숲으로 이어지는 창밖을 향해 일어서려고 해.

너의 몸은 검붉은 숯더미처럼 번들거리고 있었어.

어디 가냐고 물었지만 네가 뭐라고 했는지 모르겠어.

다만 나오지 말고 안에 있으라고...

밖으로 나간 너는 굉장한 소리를 내며 내가 있던 집안까지 흔들어댔어.

폭발한 것처럼 열기와 진동이...”


몽환 같고, 모래처럼 부서질 허상일지라도 너에게 이야기했다.

너는 그게 무슨 의미냐고 따지지 않았다.

말도 안 된다는 듯 따지지 않았다.

의미 파악을 위해 물을 뿐이었다.

너 나름의 해석이겠지만, 말했듯 의미는 각자의 몫이잖아.


너에게 말을 하며,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조금이나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내 꿈에 담긴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는 것을 나는 안다.’

라는 걸 알게 되었다.


*

나는 나의 이야기를 했고, 너는 나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하며 나는 내 길을 따라 걸었고,

너는 너의 시선이 향한 대나무숲 길을 따라 걷고 있는 것 같았다.








-대나무의 삶은 두꺼워지는 삶이 아니라 단단해지는 삶.

대나무는 죽순이 나와서 50일 안에 다 자라 버린다.

더 이상은 자라지 않고 두꺼워지지도 않고, 다만 단단해진다.


대나무는 그 인고의 세월을 기록하지 않고,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나이테가 없다.

나이테가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다.


왕대는 80년에 한 번씩 꽃을 피운다.

눈이 내리듯이 흰 꽃이 핀다.

꽃이 피고 나면 대나무는 모조리 죽는다.

꽃 속으로 모든 힘이 들어가서 살 수가 없다.


대꽃은 흉흉하다.

담양의 노인들은 “대꽃이 피면 전쟁이 난다”라고 말한다.

대나무숲은 삶의 모든 국면을 다 끌어안고서도, 그 성질은 차고 단단하다.


[자전거 여행] 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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