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단편]억척스러운 인생

하여간 사건 사고.

by 유이지유


아침에 눈을 떴더니 비가 억수로 쏟아진다.

눈만 말똥말똥 뜬 채로 머리가 복잡하다.
‘이불 밖은 위험한데…?’


올여름 홍수 때 만큼은 아니어도 오랜만에 내리는 비의 기세가 장난이 아니었다.

바람에 천둥에 밖이 요란했다. 이런 날 자전거를 타고 도서관에 나간다는 건 완전 미친 짓이다.


일본에서야 이상하게 보일 것도 없는 일상이지만 한국은 사정이 다르다.

비 오는 날 자전거를 타는 행위는 ‘또라이나 할 짓’이란 눈총을 받는다.

(아니라고? 한번 타보면 아실 걸!)

사람을 위한다기보다 차를 위한 도로라 평소 때도 위험하다.

자전거 도로라는 것도 높낮이가 제각각 턱을 만들어두고 타라고 한다.

내가 사는 이 지역의 도로 상태는 서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천만하다.

아예 자전거 도로가 없다.


백수라서 벌이도 없고, 그렇다고 대중교통비까지 들여서 꼭 나가야 할 필요도 없는 도서관.

“이런 날 하루쯤은 빠져도 되잖아. 집에서 해도 되잖아.”

기분파인 ‘유짱’은 집에서 하자고 눈을 부릅뜬다.

자기를 쿨한 타입이라 믿는 ‘지유’는 그래도 도서관에 가야 한다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이 둘의 소리 없는 배틀이 시작된다.

파이토!

“그래, 좋아. 그럼 자전거 말고 차 타고 가자.”
“한 푼 못 벌면서 5천 원을 쓰자고? 5천 원이 뉘 집 애 이름?! 그 돈이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사고….”
‘저번에 봐둔 다이소 다이어리도 살 수 있고, 펜을 몇 개나 사는데….’
“사긴 뭘 사. 하루에 한 푼도 안 쓰는 주제가! 점심 한 끼 사준 적 있어?”
“사 먹기 뭘 사 먹어. 집에서 먹을 거 왕창 챙겨 가는데. 사 먹는 것보다 더 좋은 거다. 돈까지 써서 위장을 안 좋은 거 채울 거야? 또 얼마나 아프려고?”

유짱도 햄버거다 피자다 치킨이다 막 먹으며 살고 싶다. 하지만 지유의 말에 반박할 수 없는 처지다. 조만간 정기 검진도 받으러 가야 한다. 그래도 억울한 건 억울해서 주먹 불끈 쥐고 눈을 부라린다.

“무튼! 그래서 어쩌라고?! 이 빗속에 쥐새끼 될래?”
“좀 젖으면 어때, 히터에 금방 말라?”
“우라질! 마르기 전에 감기 든다. 이 시국에!”
유짱의 말도 일리는 있다. 코로나로 오해받아서 더 못 나오면 손해…. 소탐대실일 수 있다.

“글고, 이런 날 가다가 죽을 수 있어! 앞도 안 보이잖아.”
“후후…. 사람 그렇게 쉽게 안 죽는다. 한 방에 가면 오히려 다행이지. 불구 되면 그게 더 골치….”
‘허흠, 가기 싫다 징징대는 애한테 뭔 소릴 하는겨!’


항상 집을 나서는 8:45분까지 내적 배틀이 계속된다.
쏟아지는 빗소리에 깜짝깜짝, 조금이라도 잦아들기를 바라면서.

출퇴근해서 월급을 받아야 하는 처지도 아니다.
월급쟁이라면 차라리 갈등이 없다. 무조건 무조건이니까.
내 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반기는 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휴관일을 뺀 매일을 15분 거리의 도서관으로 자전거로 출근한다.
집에서는 아무래도 한 자라도 덜 쓰게 된다.
한 번이라도 더 딴짓을 하게 된다.
집에서는 글거리가 아니라 생활거리만 들어오기 때문이다.

유짱의 말처럼 자동차나 대중교통으로 나갈 수도 있다.
그러나 교통비를 들여서까지 나가서 뭔가 대단한 걸 쓸 수 있을지 회의가 든다.

‘플러스 + 마이너스 = 제로’는 나름 괜찮다. 익숙하니까.
소득 없는 날이 어디 하루 이틀이었겠는가?
그러나 ‘플러스 + 마이너스 = 마이너스’는….
좀 그렇다. 재화를 들였는데 아무 소득이 없다는 건 참기가 힘들다.
나 자신과 타협이 힘들다.
그럴 거면 “차라리 집에서 퍼질러 잠이나 자지 그랬냐!” 타박하고 싶어 진다.

나는 나를 갈등하게 하거나 핀잔 맞을 짓을 만들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하려고 하는 것뿐이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독립운동하겠다 작정한 것도 아닌데…. 상황 따라 그때그때 바꿀 수도 있는 거지!”
유짱이 타박을 해댄다. 그런데도 지유는 루틴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의지가 강해서가 아니다.
의지박약이라서이다.

하루는 어찌저찌 속일 수 있어도 2~3일 지속되면 금세 길을 잃고 헤맨다.
어떻게 했는지 모른다며 이때다 싶게 기억상실증에 걸린 척 연기가 뛰어나다.
한번 무너진 것을 다시 세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알기에 최대한 루틴을 지키려고 애쓸 뿐이다.

또한, 철 모르는 이상주의자이기 때문이라서다.
‘무지개 너머에’ 무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꿈꾸는 철부지이다.
구질구질하고 싫은 날에도 꾸역꾸역하던 걸 계속하다 보면, 뭔가 다른 것과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꼬득인다.

지속하는 생활 속에서 변주를 꿈꾼다.
그렇게 나를 충동질해 빗속으로 나서게 한다.
일상의 지루함에 대한 보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새로운 일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내가 기대하는 해피한 이벤트가 아니라는 게 문제긴 한데….

돌풍과 폭우가 쏟아지는 이런 날이니,
도랑에 구르는 경험을 하지 않았겠는가!






하여간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도로에서 인도의 턱으로 올라가려다 자전거 채로 넘어졌다.
도랑에 미끄러져 무릎이 까졌다.

눈 감고도 타는 자전거라 아무리 능숙해도 이런 날은 위험하지.
나만 조심하면 된다고 되는 게 아닌데.

역시나 여기저기에서 ‘또라이’란 시선이 느껴진다.
흩어진 짐과 아픈 곳을 대충 수습하고 얼른 자리를 피했다.
도서관에 도착해서 홀라당 젖는 옷과 뒤처리에 1시간을 가볍게 날려 먹었다.

대체 뭐 하자는 짓인지…. 이럴 거면 그냥 집에 있든가, 아님 그깟 돈 몇 푼! 좀 쓰든가!

나의 억척스러움에 짜증이 난다.
기막히고 코 막힌 데 문뜩,
‘이러고 돌아다니기도 참 쉽지 않은데...’란 생각에 헛웃음이 났다.

*
당면한 것은 당면한 것이다.
닥친 것을 원망해도 소용없다.
거지 같은 ‘불운’으로 여기면 돌아보고 싶지 않고 싹 잊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도랑에 구른 아픔과 쪽팔림을 곱씹으면 쓴맛 속에서 미묘한 맛도 느껴져서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하는 것이다.

“크게 안 다쳤으니 다행이지! 내가 워낙 자전거 기술이 좋잖아.”
흠뻑 젖고 거지 같은 기분에 휩싸이긴 했어도,
별의별 일이 생기는 험난한 세상에서 이만하면 불행 중 다행이란 긍정적 마인드와 그동안 갈고닦은 기술력에 감탄할 수 있다.

“이렇게 보기 좋게 또랑에 구르는 인간이 나 말고 또 누가 있겠어!”
나름 자만심도 품을 수 있다.

자신의 억척스러움이 구질구질해서 짜증도 난다.
하지만, 내가 나이기 위해 정한 룰을 어떤 때라도 지키려 아등바등하는 나를 쓰담쓰담 해주고 싶어지기도 한다.

닥친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가 내 글쓰기의 힘이 된다.
이렇게 오늘의 글쓰기 아이템 겟!

“그래도 말이야, 이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으니 값 좀 하자.
늙어서 상처도 잘 안 아무는데 좀 적당히 적당히~ 하자고~.
너의 막무가내에 요즘 좀 쎄가 빠지거든!”
지유가 푸념을 한다.

*
오늘도 유짱과 지유의 내적 배틀은 계속된다.
누가 최종 승자가 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마도 더 억척스러운 쪽이 되겠지.



아무튼, 도서관에 나오긴 나왔느니

퇴근(?)할 때는 비가 잠잠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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