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본질
고독이란 말의 유래는 맹자 양혜왕장구 하편에 나오는 환과고독(鰥寡孤獨)에서이다.
이것은 각각 홀아비, 과부, 고아, 자식 없는 노인을 의미한다. 비슷한 용도로 천애고독(天涯孤獨)이 있다.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이라는 사전적 뜻에서도 알 수 있듯, 열등감과 함께 사람을 괴롭히는 부정적인 감정임을 알 수 있다.
고독한 감정 상태란 보통 우울과 사회성의 결여된 소외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결여란 교류하는 가족 친구의 있고 없고가 아니라 친밀도와 관계한다. 인기 절정의 연예인이나 성공한 자들의 일탈과 자살도 고독과 관련이 크다 할 수 있다. 고독은 관계의 양이 아니라 질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이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영혼을 갉아먹는 부정적인 감정의 고독에 대해서가 아니다.
'Loneliness'와 'Solitude'는 둘 다 고독으로 쓰인다. 하지만, 의미와 용도의 쓰임이 다르다.
'Loneliness'는 한국의 사전적 의미와 같이 '의지할 데 없이 혼자 떨어져서 소외감을 느끼는 고통스러운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다.
이에 달리 'Solitude'는 '혼자 있어서 홀가분하고 조용하다'라는 긍정적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다. 긍정적이라 함은, 어원을 풀어보는 것으로 알 수 있다.
*‘Soli-’는 ‘단일의(alone), 유일한(solitary)’의 뜻의 결합사. sole의 복수형이다.
solo [sóulou] n. ① 〖樂〗 독주(곡); 독창(곡). ② 〖空〗 단독 비행. ③ 일인극(一人劇); 독무(獨舞)...
━ɑ. 혼자 하는; 독창〔독주〕의; 단독의 ┈┈• a ~ flight 단독 비행. ━ɑd. 단독으로, 혼자서(alone). ━vi. 혼자 하다; 단독 비행하다.
*‘-tude’는 형용사에 붙여서 ‘성질, 상태’란 뜻의 명사를 만든다.┈┈• 'attitude' 태도. ‘단독자로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어떤 상태’라 할 수 있겠다.
고독은 ‘사회성’과 반대되는 ‘단독자, 개별자’를 나타내는 말이다.
연결해서 퍼뜩 떠오르는 단어가 구약의 솔로몬'Solomon' 왕이다.
어진 이의 대명사로도 쓰이는 이름이다. 솔로몬이 현명한 판단과 결단력으로 ‘지혜의 왕’일 수 있었던 것은 고개를 비딱하게 하고 오래 홀로 있는 자였기 때문이 아닐까?
혼자 있는 자는 자신에게 침잠하여 다른 세상을 보게 된다.
Solitude라고 말해지는 고독은, 오히려 창의성의 원천이란 뉘앙스를 갖는다.
고독을 통해 사회에서 굴레 지어진 자신을 벗어나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계기로 삼는 것이다.
고독하다는 것은 고독을 껴안고 있는 인간 그 자체가 사회적 불일치를 경험하고 있다는 말이다.
'Loneliness'는 특히나 가족 집단의 끈끈한 공동체를 중요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용서받지 못하는 고독이었다.
이미 우리에게는 고독할 권리가 없다.
고독해서는 안 되고 발설해서도 안 된다.
이는 낙오자로 고발 되어지는 것이다.
혼자 있는 것만으로도 손가락질당하는 부정적인 것이라 교육받았다.
외로움은 적극적으로 회피해야 하는 대상이자 감정 상태였다.
그나마 최근에는 이러한 아니꼬운 시선이 줄어들기는 했다.
그러나 이런 인식의 변화는 'Solitude'의 추구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벗어날 수 없는 'Loneliness'의 상태를 무마시키기 위함에서이다.
많든 적든 누구나 우리 모두는 각자의 고독을 끌어안고 산다.
인간이 벗어던질 수 없는 굴레 인지도 모르겠다.
필연적으로 그런 조건 속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부모 자식, 가족 간에조차 관심을 가질 여유조차 허락받지 못한 사회를 살아간다.
고독사조차 드물지 않은 시절이다.
사람은 누구나 섬이라 한다.
제 섬인데도 세입자로 산다.
남의 섬만 크고 좋아 보이고 흔들림 없어 보인다.
이 섬 기웃 저 섬 기웃, 섬과 섬 사이를 부유하다 빠져 죽느니,
아무리 초라해 보여도 섬의 주인으로 살아보는 건 어떨까?
고독은 눈치를 늘게 한다고 한다.
고독을 느낄 때 상대방들이 풍기는 부정적인 행동이나 감정을 더 잘 캐치하는 것이다.
자신이 부정적인 상태이기 때문에 평소보다 민감하게 반응한다.
고독을 통해서 느는 것이, 주변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않기 위한 처세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를 아는 눈치이길 바란다.
그러려면 서 있는 그 땅을 두 발 굴러 감촉도 느껴보고, 토질이 어떤지도 손끝으로 살펴봐야 한다.
거기에 무엇을 심을 수 있을지, 무엇이 자라날 수 있을지 오래오래 들여다보기도 해야 한다.
'Solitude'의 고독이려면-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의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 정호승,《수선화에게》
이러한 고독을 견딜 줄 아는 자만이, 이숙영이 말하는 '행복한 변화'를 맞이하지 않을까?
“가슴 뛰는 삶은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에게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흥미 있는 대상에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고, 흥분한 힘과 에너지를 쏟고,
충분한 관심을 기울인 후에야 얻어지는 것이다.
하루하루 주어지는 삶에 미침이 없으면 열정도 없다.
그리고 열정이 없는 삶은 시시하고 늘어질 수밖에 없다.
만약 당신에게 열정이 남아 있지 않다면, 그것은 당신의 성격 때문이 아니다.
그 진짜 이유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신이 무엇을 하면 좋은지,
제대로 된 자신의 한계를 몰라서 그런 것이다.
무엇인가 빠질만한 미칠 대상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 행복은 강력한 속도로 타인에게까지 전염된다.
기억하라.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상은 타인으로부터 받는 상이 아니다.
바로 자기 스스로에게서 받는 상이다. 물론 타인에게서 존경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되어야 할 것은 스스로에게 존경받는 삶을 사는 것이다.
가슴 뛰는 삶을 자신으로부터 시작하라!”
- 이숙영, 《행복한 변화》 중에서
고독과 마주하는 것은 얼마나 힘든 것인가?
밀려왔다 밀려가기를 반복하는 서슬 퍼런 고독의 파도에 늘 주춤하고 한없이 작아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인간이기에.
그러나 고독은 외면해야 하는 병균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 정신을 파괴하지 않게 하는 면역체계이다.
섬과 섬 사이를 표류하는 정신은 바다라는 넓은 세계를 향해 나아간다.
개별자로의 인간성이 부정당하는 이 사회에서 고독으로 인해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계기를 갖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 고독이라는 현상의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