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단편] 스치는 일상

by 유이지유

늦은 잠에서 깬 나의 방은 엉망이지.


굼벵이가 주말을 내내 보내고 일어난 침대에는 깡통, 안줏거리 과장 봉투, 잡지, 배달 음식의 국물이 묻은 휴지들이 나뒹굴고 있지.


오후의 해도 저물어가는 화장실에서 내려다보는 도심의 풍경이 알록달록 물들어간다.

밖으로 솔이 휙 쟀겨진 칫솔이 맘에 들지 않지만 쟁여둔 것도 끝났군.

음식물 악취를 풍기는 입안을 대충이라도 정리해야겠어서 치약을 듬뿍 짜서 헹구기만 하는 꼴이다.

원래 든 것 없는 냉장고에는 생수도 다 떨어졌다.

하는 수 없이 씻다 만 채로 롱코트만 걸치고 집 근처 마트로 향한다.

카드와 핸드폰만 달랑 들고, 슬리퍼를 쓱쓱 끌면서.


다행이다, 나 같은 이가 즐비하군.

마트 직원이며, 사람들은 아무도 서로를 신경 쓰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가 일상이라 부르는 풍경이다.

일상이라 부를 것이 없는 일상을 사는 나는, 신선고의 소시지며 가공식품을 위주로 카트를 채워간다.

일인 가구를 위한 완전조리, 반조리품으로 냉장고와 식탁을 채울 것이 완벽하다.



같은 공간 마트 안, 유기농 신선 먹거리들로 가득한 카트가 나를 스친다.

너의 카트에는 내가 담지 않은 원색의 자연식품들로 가득하다.

이것만 보더라도 취향 차를 완벽히 드러낸다.

나를 스친 너의 카트가 이번에 멈춘 곳은 제철 과일 코너이다.


그렇게 각자의 필요에 맞게 양손을 채운 우리는 마트의 자동문 앞에 서 있다.

옷깃을 스치는 바람에 잠시 같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늦게 나온 잎사귀들은 아직 제 색으로 물들지도 못했다.

우리를 감싸는 작은 바람이 발치를 스치며 계절을 물들여간다.

옷깃을 여미고 양손의 물건을 추스르고 우리는 각자의 일상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보도블록을 스치는 울림에 다른 이와 발걸음이 겹치는 환상에 잠시 들기도 했다.

잠시 뒤를 돌아보기도 하지만 네온에 물들 거리에 이미 너는 보이지 않았다.

붉고 노랗게 물든 낙엽들이 하늘로 날릴 뿐이다.


키가 길게 늘어난 그림자만이 나를 따라왔다.

누군가가 긴 그림자를 늘이며 뒤따랐던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너는 누구였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착각이겠지.

이곳에서 우리는 함께하지 못한 서로의 일상을 스쳤을 뿐이다.


나뒹구는 잡동사니! 다니는 곳 어디나 일상이 너저분했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나의 일상을 이어지겠지.


눈물의 고장에 사는 주민들은 씩씩하기만 하다.


그저 어제와 같은 일상을 살아간다.

작은 일과들, 매일들이 쌓여간다.

무엇을 놓쳤는지 모르지만 가슴이 시렸다.

바람이 차드는 것 같아서, 애먼 코트만 붙잡아 여미고 걸음을 서둘렀다.

무엇을 잃었는지도 모른 일상이 물들어가는 시간들이다.


돌고 돌아 너의 귀가를 맞이할 계절도 돌아오려나?


서둘러 보자.

무엇을 스친지도 모르지만, 바쁘게 바쁘게 돌아다니다 보면

우리가 ‘안녕’을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서로를 바라보는 순간을 맞이할지도 모르잖아.


그곳에서 그랬듯, 이곳에서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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