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가격]
그 사람의 능력이나 값어치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간단하다. 그 사람이 지닌 것의 총합으로 가격을 매기면 된다.
사람을 외견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말이 통용되던 시절이 있었다. 외견으로만 판단할 수 없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있을지도 모를 희망을 자신에게도 역투사하던 시절이었다.
“불모가 아니라 아직 환금성의 발견 전인 미지의 땅!”이라고.
우선 거시적 관점에서 인간의 값어치를 짚어보고 가자.
동물의 본성을 뛰어넘어 지구별의 절대 종족으로 우뚝 선 인류. 그 호모 사피엔스의 일원인 자신이 특별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인간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함과 특별함을 기대했다. 근거 없는 신념이 만든 미신에 지나지 않았음이 곧 드러났다. 자신들이 이룩한 기술 발달이 자신들의 속살을 훤히 드러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유기체의 생명 메커니즘 벗어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철저하게 자연 원칙에 매인 생명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런 사실과 진실을 수용하기에 인간은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이토록 찬란한 자신들이 개돼지와 동급일 수는 없었다. 자연적 메커니즘을 벗어날 수 없다면 무엇으로 인간의 값어치를 올릴 수 있을까? 모든 생명의 신으로 군림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심을 거듭했다.
답을 내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도 인간이 역사를 써온 방식이 있었다.
종과의 경쟁에서 인간이 써먹은 방식이다. 지배와 피지배로 구별 짓는 방식 말이다. 이 방식을 인간 개개인에게 적용을 하면 되는 거였다.
이제 이 지점에서 인간 개개인 값어치를 매기는 미시적 방식이 적용된다. 바로 자본주의!
‘가진 자는 없는 자를 착취할 수 있다.’라는 논리와 원칙이 인간 사회를 성장시키고 확대시켰다.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결이 자본주의의 꽃을 활짝 피웠다. 누구도 이 원리원칙 아래 자유로울 수 없었다. 더 이상 인도주의의 가면을 쓸 필요가 없는 시절을 맞이했다. 그러니 이제는 대놓고 ‘없는 자를 더 착취하라!’가 가장 인간적인 문구임을 인정하기로 한 것이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기댄 헛된 망상을 할 필요가 없게 됐다. 이 시대에는 그 자가 지닐 수 있는 것들이 그 자의 신분을 나타낸다. 신분을 나타낼 수 없는 것들을 기대하며 가치판단을 유보할 필요가 없어졌다. 자신의 신분에 맞는 물건을 반드시 몸에 지녀야 한다. 지니지 못한 자는 그만큼의 능력밖에 갖지 못한 자이다. 능력이 없는 자이다.
너무 비약이라고 비방하고 싶은가?
희망을 버려선 안 된다고 말하고 싶은가?
일례로 이런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프리티 우먼’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리처드 기어를 아시나?
할리우드 최고 배우의 유명세와 엄청난 자산가인 그가(배우이니 얼굴 잘 생긴 건 말할 것도 없고!) ‘타임아웃 오브 마인드’라는 영화를 촬영할 때의 에피소드이다. 뉴욕 노숙자 역할을 맡아, 리얼 영상을 위해 쓰레기통을 뒤져 음식물을 먹고 있었다. 수많은 이들이 그를 스쳐갔지만, 노숙자로 빙의한 그에게 선행을 베푼 이가 딸랑 한 명이었다고 한다.(분장이 뛰어나서? 연기력이 뛰어나서?) 그 한 명 이외의 사람들은 더럽고, 허름한 행색으로 그의 값어치를 판단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인생에서 '엮여서 좋을 게 없는 종류의 인간!’이라며 눈길조차 줄 필요가 없었다.
피자를 건넨 이 프랑스 관광객은, 한 번의 선행으로 인생이 뒤집히는 경험을 한다. 뉴욕 언론 1면에 실리고, 인터뷰 등 매스컴을 타며 화제에 오른다. 이 사람이 보인 선행이 인간 사회에서 얼마나 드문 경우인지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선행 대상과 만나는 게 얼마나 더 특별한 건지도 (하여튼 반전이 있는 억수로 운 좋은 에피소드. 그래서 여러 번 회자되기까지 하는...자세한 내용은 ‘서프라이즈’라는 방송을 참고하시길.)
아무리 잘 생기고, 돈이 많고, 재능이 있을 지라도 그런 행색을 하고 있으면 그 정도의 값어치로 밖에 매겨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경우처럼 혹여, 정말 그 자에게 ‘미지의 땅’이 있을지도 모른다. 거지 같아 보여도 뜨문뜨문 거지로 보지 말고, 자세히 값어치를 매겨봐야 할지도 모른다. 위의 억수로 운 좋은 일례도 있었으니.
하지만 이런 로또 맞을 일이 우리네 인생사에도 발생할까?
그런 걸 기대하느니 뜨문뜨문 보며 자기 값어치 올리기에 열중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그래야 옳을 것이다. 이 사회는 그 자가 미지의 땅을 개간할 기회를 제공하지 않을 테니까. 도구를 갖춰 경쟁의 대상으로 올라설 수 없을 테니까. 뜨문뜨문 보며 내 가격의 총합을 올리는 게 현명한 처세일 것이다.
이로써 복잡하고 종잡을 수 없는 세상이 조금은 편해졌다. 요즘 시대의 사람의 가격이란 이런 것이다. 이제 원칙이 확실해졌으니 경쟁에 집중할 수 있다. 현재의 내 값어치를 알고, 더 있어보는 것으로 포장하는 스킬을 늘여야 히다. 자신의 가격을 올리는데 온 에너지를 집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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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세상 줄타기에 늘 서툴기만 한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