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핑크 바이러스]

by 유이지유

[감염-핑크 바이러스]


우리는 서로에게 물들어 갔다. 서로가 서로에게 감염되어버린 것이다. ‘사랑’이라는 정의할 수 없는 무색무취형체도 없는 바이러스에 의한 중증에 걸린 것이다.
이 병은 대게 망막에 핑크빛 렌즈를 씌어 눈에 비치는 모든 것을 밝고 화사하게 만드는 착시효과를 일으킨다. 바이러스를 옮긴 감염원을 중심으로 시공간이 재구성되는 환영 환시를 동반하는 것이 대표적 증상이다. 핑크 증상은 대체로 긍정적 효과를 가져 오지만 주변인들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 바이러스가 반대의 방향으로 작용하게 되면 본인은 물론 주변부까지 매우 처참해질 수 있다. 한쪽만 바이러스가 감염되는, 일방통행 증상이 발생하는 ‘상사병’의 경우가 그렇다. 또한, 쌍방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으나, 완치로 인해 효과가 끝나서 맞이하는 ‘이별’도 그렇다.
아무튼, 이 바이러스로 인한 것들이 어떤 작용을 일으키며, 감염의 단계에서 어떤 다양한 인지적 사회적 증상이 일으킨다.
대표적 증상으로 언어 체계의 변이 증상을 들 수 있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난 두 사람이 상승의 단계에서는 서로의 언어를 모방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지역적인 것은 물론, 국적까지 초월해서 서로의 언어까지 쉽게 익히도록 만드는 마법 같은 작용까지 일으킨다. 같은 국적의 경우 감염의 속도와 파급력은 측정하기 힘들 정도다.


여기서 한 커플의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남자, 27세, 강남 출신의 명문대생, 외국에서 거주한 경험 많음 다국어 능통자.
여자, 23세, 강원도 강촌 출신, 대학 진학으로 서울 거주하나 원조 사투리 능통자.


남자는 여자와 만나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강원도 사투리 능통자가 된다. 인식하지도 못한 사이에 문장 어미와 억양에 변화를 겪지만,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하고 사용한다.
남자의 일방 통행적 증상이 많은 지라 여자가 외국어에 감염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여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텔레비전 속 연예인들이 혀짧베기 말투를 하고 있다.
“서울 것들은 병신같이 와 저래~. 지진아여, 뭐여? 말투가 다 와 저래~”라며 욕하며 자란 여자였다. 남자와 만난 후, 자신이 그런 말투와 그런 톤을 하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성깔이 칼 같은 극단적인 남자의 어휘를 자주 사용하게 되었다. 속으로만 생각했을 것을 툭툭 자신도 모르게 내뱉고 깜짝할 때가 있다.

서로에게 물들고, 감염되어 중증에 시달리던 ‘우리’


어느 한쪽이든 둘 모두이든,

빠르게든 느리게든,
무색무취형체도 없는 치명적 바이러스에서 벗어나는 순간이 오고야 말았다.


서로를 둘러싼 상황이 서로보다 더 크게 보이기 시작한다. 핑크빛 환영 환시가 사라지면서 말이다.
처음에는 당황해서 황금시대로 돌아가려고 노력을 해본다. 사랑의 대상이었던 과거의 자신과 비난의 대상이 된 현재의 자신 사이의 갭을 이해하려 필사적으로 애를 써본다.
지금은 아닌데, 과거에는 했던 것이 무엇이기에 달라졌을까, 어째서 저렇게 반응하는 걸까?

과거에는 그렇게 매력적으로 들렸던 말에서 자꾸 화를 돋우게 하는 것을 발견한다. 주옥같던 우리의 말이 비수로 바뀌어 서로를 찔렀다.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상한 감정 때문에 상대의 말을 꼬투리 잡아댄다. 기분 나쁠 요소를 찾는데 혈안이 돼서, 비난거리를 부풀렸다.


원인이 뭐였든,

그 원인을 알아냈다 한들, 완치 단계에 진입한 병증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면역이 생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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