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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지유 Nov 05. 2019

[소행성]안녕, 김치!

유짱의 지구별 표류기

<안녕, 김치!>


김치는 우리 집에 5년을 있었다.

김치에게 ‘김치’란 이름이 생긴 것은 불과 몇 주 전이었다.

5년을 함께 살고도 몇 주 전에야 이름 지어졌던 김치가, 오늘 죽었다.


몇 번 불려보지도 못한 김치였다.
  
김치가 5년을 살았던 집은 아직 책상 위에 놓여 있다. 주인 없는 집은 파동 하나 없이 고요하기만 하다. 그 옆의 다른 녀석들이 사는 집들은 참으로 소란스럽다. 김치의 집 이외에도 여러 종류의 집들이 붙어 있다.


김치가 언제 어떻게 우리 집에 왔는지, 어쩌다 오게 된 건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어느 날인가부터 내방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이것만 봐도 내가 얼마나 김치에게 관심이 없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옆집에 사는 장수풍뎅이처럼 김치도 외갓집에서 데려왔던 걸까?


앞으로는 곤지암천이 흐르고, 뒤로는 산골을 바짝 등지고 있는 동네에 외갓집이 있다. 소나무 우거진 산 바로 아랫집이라 벌레와 곤충이 많았다. 갈라진 붉은 벽돌 틈새로 시도 때도 없이 각종 벌레들이 방문을 해댔다. 도감에도 나오지 않을 벌레들까지 만날 수 있어 자연학습장이 따로 없었다. 외할머니가 뒷산에서 잡은 장수풍뎅이며, 굼벵이 같은 녀석들을 선물로 받곤 했다. 이렇게 이런저런 녀석들이 책상 위를 점령했다.
꿈틀거리고 꼬물거리는 녀석들과 함께 사는 게 싫지 않았다. 나에게 해를 끼치는 녀석도 없었고 큰 신경을 쓸 일도 없었다. 꿈틀거릴 때 밥을 넣어주면 그만이었다. 학교에 가지고 가면 반 애들이 신기해하기도 해서 자랑거리가 됐다. 며칠 관심을 쏟다가 가끔 밥 주는 걸 잊기도 했지만 굶어서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엄마가 줬을 테니까, 음, 아마도…….


여하튼! 책 상 위에서 녀석들은 살만큼 살다가 알아서 갔다. 언제 갔는지도 모르게 가는 게 태반이었다. 그게 녀석들이 우리 집에 있다가 가는 방식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주름진 몸통으로 바지런히 물장구를 치던 김치도 그랬다. 다른 녀석들처럼 그렇게 갔구나 여겼다. 떠난 녀석들을 다시 떠올리지 않는 나였다.


김치가 떠난 집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뭔지 알 수 없는 생각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뭔가를 말하고 싶은데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아! 이건 말해두어야겠다. 김치가 왜 김치가 되었는지를 말이다. 이름 짓던 날의 기억이 또렷하다.
  
'감자'와 함께 길을 걸었다.

오르는 것만으로도 숨이 찬 길인데 자꾸 말을 시켰다.
감자는 말을 하는 것도 듣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이다.


"걔를 뭐라고 부르고 싶어?"

지치지도 않고 물어 대서 툭 내뱉은 게 김치였다.
힘이 들어서 생각난 대로 말해놓고 보니 그럴듯했다. 녀석의 집게발톱은, 사진을 찍을 때 "김치~" 하는 모양 딱 그거니까. 툭 떠올랐던 건데 이름 붙이고 나니 딱 어울렸다.

이외의 다른 완벽한 이름은 생각나지 않았다.
  
김치가, 김치가 되고부터 신기하게도 매일 인사를 건네게 됐다. 톡하고 수조의 가장자리를 건드리면 둥그렇게 말고 있던 마디마디를 쭈욱 폈다. 더듬이를 바삐 움직이며 탐색을 하기도 했다. 주름 잡힌 몸을 바지런히 움직여 댔다. 김치도 나에게 인사하는 하는 것 같았다. 피하려고 돌덤이 속으로 쏙 사라지던 때랑 분명 달랐다. 내가 있어도 숨지 않고 여기저기를 누벼댔다.


나는 김치를 더 잘 알고 싶어 졌다. 도감을 찾아보기도 하고 검색도 해보았다.


김치는 사진 속 다른 애들과 참 달랐다. 삶이 좁은 수조에서 여러 번의 탈피를 해서 그런가 투명할 정도로 하얗다. 오래 홀로 지내느라 딱딱한 외골은 없어지고 말랑했다. 그래서 색이 옅은 외골격 마디에 접힌 주름들이 훤해졌다. 주름이 겹친 곳은 다른 곳에 비해 짙었다. 속살 다 보이도록 투명했지만 씩씩한 김치가 나는 좋았다. 가끔씩 주던 멸치를 더 열심히 챙겨 주었다.
  
아침에 "김치야, 안녕~"하고 인사를 건넸다.
오후의 김치는 내가 인사를 해도, 마디를 쭉 펴지도 더듬이를 움직이지도 않았다.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이미 둥둥거리던 김치였다. 둥글게 주름 잡힌 마디에 짙은 그늘만 드리우고 있었다.
‘이름을 붙이지 말 걸 그랬어! 내가 귀찮게 해서 네가 많이 힘들어했던 건 아닐까? 너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아른거리는 생각들이 방울져 내려서 자꾸 고개가 수그러졌다.
  
귓가에 파닥이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자는 시간에 활발해지는 녀석들이 방에 아무도 없는 줄 알았나 보다. 창밖에는 이미 가로등이 환했다. 불빛에 그늘 드리워진 눈이 부셨다.
  
‘안녕, 김치’ 내 마지막 인사에 김치도 집게발로 ‘김치~’하고 인사를 한다.
나는 넓은 세상에서 신나게 물살을 가르는 김치를 상상하며, 빛이 쏟아지는 곳으로 나아갔다.
  



P.S.

너를 그늘 드리우게 하는 순간들도 눈부시게 바래져서,
주름진 기억들도 소중하게 간직하는 아름다운 눈빛으로 피어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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