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단편] 향로와 귀로

by 유이지유

*향로.


“왜 태어났니?”

“그걸 알고 세상에 나오는 자가 있어? 알면 좀 알려주라. 나도 좀 물어보게.”


알 수 있는 건,

생을 부여받을 때 우리 운명에는 애초에 선택권이 없다는 것이다.


바꾸고 선택할 수 있는 건,

생을 더 해가는 시간 속에서나 가능하다.




*귀로.


그것은 이제 막, 눈부신 신록을 예고하는 남풍의 계절이었다.

그대가 처음 세상의 빛을 쐬었던 때와 같은 때다.

볕이 손을 뻗지 못한 기슭에는 아직 지난 계절의 잔향도 어우러져 있었다.


그대가 오래 머무른 집은,

볕이 잘 드는 커다란 창과 일부러 볕을 차단하는 구역으로 나눠어져 있었다.

그대의 일상과 꿈꾸는 이상의 세계를 구현하기 위함이었다.


인적이 드물었던 그 집이 오랜만에 사람들로 북적였다.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대의 성향에 비하면 과히 적은 수는 아니었다.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옹기종기 모여 얘기를 나누기에 적당한 정도였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아는 듯 이야기가 이어졌다.


채광이 좋은 거실에 모인 사람들의 곁 이곳저곳에

그대가 좋아하던 백합이며 아지사이(자양화: 紫陽花)가 가득했다.


나는 아지사이의 파스텔 빛깔과 백합의 은은한 향이 어우러진 거실을 지나 그대에게 향했다.

지나며 알던 모든 이들에게 가볍지만 감사가 가득 배인 목례로 인사를 나눴다.

생 중에 한때의 시간을 지냈다고 하는 게 맞을 정도로 짧은 만남과 긴 여백을 함께한 이도 있다.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는 못 했다 하여 관계에 공백이 있었다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랬다면 지인도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 밤 주인공은 나야, 나~!’


명일을 맞이한 그대!

향로를 끝내고 귀로에 들어섰다.


고인은 이방인이었다.

처음부터 자의로 선택하지는 않았다.

보통의 기준을 확실히 알 수 없으나, ‘남들처럼’의 삶을 꿈꿨더랬다.

사연 없는 삶이 없듯, 살다 보니... 살려고 보니 어느샌가 일반에서 멀어졌더라고 한다.

(혹여 사연이 궁금한 이도 있으려나?

사연은 ‘사연이 있다’로 끝내는 게 좋다.

사연팔이는 구질구질할 뿐이다.)


나는 조용한 발걸음으로 고인이 안치된 방으로 들어섰다.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조명이 고인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다.

가지런한 복장에 긴 머리칼을 곱게 정돈한 고인에게 다가간다.

오래되지도 그렇다고 젊다고도 할 수 없는 주검이 누워 있다.

생의 수선스러움을 모두 삼켜버린 얼굴.

깊이 파인 주름에 고통의 흔적은 역력했으나,

낡지는 않아 보여 다행이다 싶다.


그대의 생 중에 가장 낡지 않았던 것,

철이 물들지 않아 호기심으로 반짝이던 눈동자는 이제 깊이 닫혔다.

정박자로 뛰지 못하고 갈팡질팡 하던 가슴 박동도 명을 다해 고요하다.


나는 고인에게로 몸을 숙인다.

그러자 내 긴 머리칼이 고인의 얼굴로 흐드러졌다.

상관없다. 그대는 더 이상 아무것도 느끼지 않을 것이니.

나는 더 깊숙이 다가가 그대의 입술을 내 입술로 덮는다.

더 이상 삶을 불어내지도 들이키지도 않는 입술은 차디 찼다.


‘내가 그대를 얼마나 미워하고 증오했는지...’

그대도 알겠지, 그대도 그러했을 테니.


이것은 우리의 첫 입맞춤이자 마지막 입맞춤이다.


어느새 내 볼을 타고 내린 눈물 한 방울이 고인의 덮인 눈가 위로 떨어진다.


이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드디어 족쇄 같았던 육신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시원함일까?

생을 붙잡고 이루고 싶었으나 이루지 못한 많은 것들에 대한 회한일까?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이제 와서 안들 무엇할까?


그대와 나 사이에 너무 오래되어서 잊고 있던 무수한 기억의 파편이 휘몰아졌다.

곧 흩어질 것들이다.

아쉬울 것도 없다.

다만 한 가지가 맴돌아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묻고 싶은 한 가지,


‘그대는 어떤가? 우리는 생전에 제대로 화해를 했나?’


나에게도 묻는다. 나는...


모르겠다.


이것으로 끝이니, 지금에라도 말해주고 싶다.


많이 미워했다. 미웠던 만큼 많이 사랑했다.

그리고, 어깨를 내어주지 못해서 미안했다고...


“사느라 고생 많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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