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는 중심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도로가 있었습니다. 가로수가 늘어선 거리는 잘 정돈된 상점과 아기자기한 주택들로 가득했습니다. 거리 끝의 광장에는 괜찮은 식당도 여럿 있어서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가족과 이웃의 소소한 일상 얘기를 나눴습니다. 사람들은 급속도로 발전하는 지역 얘기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오래된 산업용 건물들이 이제는 테라스와 아파트 공간으로 변신하여 원주민들과 이주민들 사이에 충돌을 일으킨다며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도시는 반도의 맨 끝이었지만, 여섯 개의 산맥에 둘러싸인 북쪽 도시 중에서 최대를 자랑했습니다. 수도에서 들어오는 최신의 것과 지역의 옛 것들이 어우러졌습니다. ‘검은 장막’이라 불리는 산맥에서 냉기가 불어오지 않은 계절까지는 말이에요.
사계절 중 대부분은 내륙지방과 크게 다르지 않은 온화한 날씨였습니다. 그러나 겨울이 몰려오는 10월 무렵에는 도시에서 나고 자란 원주민조차 감당하지 못할 정도였지요. 하루에도 몇 번이나 눈 폭풍에 뒤덮이곤 했습니다. 산맥에서 불어온 냉기는 도시 전체를 얼려버렸습니다. 시간조차 얼어붙는 듯했습니다. 도시에 발을 들인 사람들은 언제 체류를 시작했는지 머문 시간을 기억할 수 없게 되어버리곤 했습니다.
그런 도시에서 신입 경관은 큰 사건도 없고, 주민들과의 마찰 없이 첫해를 보냈습니다.
첫해의 마지막 날에도 창밖으로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습니다.
신입 경관은 지구대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별일 없이 일 년이 다 갔네요. 내년에도 별일 없겠죠?”
신입 경관의 말에 선배 경관은 표정을 미묘히하며 갸우뚱거렸습니다.
“그러면 좋은 데 말이야…. 그러려나…?”
선배는 신입 경관보다 몇 년 앞서 이 도시에서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경관답지 않은 풍성한 몸집에 평소 호탕한 성격의 선배답지 않은 표정이었습니다.
“자네 아직 보지 못했겠군. 성냥 파는 소녀를 말이야.”
“성냥팔이 소녀요?”
처음 듣는 얘기였습니다.
신입 경관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얘기라, 농담이라도 하나 싶어 선배의 설명을 기다렸습니다.
선배는 말은 꺼내 놓고는 딴짓을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서류를 뒤적이는 둥 커피를 홀짝댔습니다.
그러는 중에도 눈보라는 점점 짙어져 갔습니다.
그때, 광장의 종탑이 시간을 울렸습니다. 신입 경관이 마을을 돌아볼 시간이었습니다. 눈이 심해서 서두르지 않으면 새해가 밝아도 일을 끝내지 못할 게 분명했습니다. 선배 경관도 망토를 두르고 랜턴을 들었습니다.
“결국, 마지막 날까지 눈이군요.”
지구대의 문을 열고 선배를 따라 나섰습니다.
선배의 발걸음이 평소보다 느릿해 보이는 것은 착각일까요?
선배는 한참을 눈 속에 파묻히듯 그림 같은 마을을 끝에서부터 거리의 끝까지 쳐다보았습니다.
광장에는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가 형형색색으로 빛났고, 걸음을 서두르는 주민 몇몇이 보였습니다. 가족끼리, 혹은 혼자인 사람들의 양손에는 선물 보따리로 가득했습니다. 파스텔 색조로 물든 거리에는 익숙한 멜로디가 흘렀고, 사람들의 얼굴은 새해의 안녕을 바라는 기대로 가득했습니다.
이런 날에 무슨 특별한 일이 있겠습니까 싶은 신입 경관이었습니다.
“알겠지. 오늘은 특별히 잘 살펴야 한다네.”
당부를 하는 선배의 목소리가 조금 무겁게 들렸습니다. 아까 하려던 이야기인가 싶었습니다.
“뭘 말입니까? 성냥팔이 소녀 말입니까?”
“그래, 이런 날 밤에는 꼭 검은 장막에서 저주가 내린다고 하니까….”
선배 경관은 도무지 알 수 없는 말을 하고는 눈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요즘 세상에도 저주니 하는 말을 하다니!
도무지 알 수 없는 얘기였지만, 선배의 말은 이상하게 신입 경관의 신경을 거슬렀습니다. 도시의 느긋한 풍요로움과 구분되는 낮게 깔린 소음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성냥 사세요~, 성냥 사세요~” 하고 말이에요.
소음에 섞여 이런 말이 들리는 것 같았어요. 아무래도 선배의 말에 홀렸나 싶었습니다. 둘러봐야 할 곳은 한두 곳이 아닌데 왜 이러나 싶어 평소보다 꼼꼼히 거리거리를 살폈습니다.
그러나 신입 경관은 거리 어디에서도 성냥팔이 소녀를 만나지 못했답니다.
*
그렇게 그해의 마지막, 눈보라가 펑펑 나리던 추운 밤이 지나갔어요.
힘겨운 해를 무사히 이겨냈다는 안도감과 희망찬 새해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처럼 눈부신 햇살이 거리거리를 찾아들었습니다.
눈부신 햇살에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집 밖으로 나왔습니다.
“올해는 분명 좋은 일이 있을 거야. 작년은 너무 지독했어.”
“올해는 좋은 복 많이 받고, 좋은 일 많으시길 바랍니다.”
이미 알고 지냈던, 모르는 사이였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미소와 덕담을 했습니다.
거리를 뒤덮었던 함박눈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한순간에 녹아내렸습니다.
햇살이 잘 들지 않은 눈 쌓인 길모퉁이까지 금세 녹아내렸지요.
광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 냉기를 몰아내고 빛났습니다.
모퉁이 바닥에 타다 남은 성냥이 여기저기 드러났습니다.
덕담을 나누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딱 멈추고 말았지요.
성냥이든 바구니와 벽에 기대앉은 소녀의 모습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얼어 죽었나 보네. 어휴~, 어린 것이 불쌍해라~”
잠시 주저주저하던 사람들은 누군가 신고하는 모습을 보고는 평소처럼 걸음을 옮겼습니다.
“부모를 잘못 만났으니 어쩔 수 없지…. 안 됐어. 쯧쯧”
사람들은 서둘러 소녀로부터 멀어졌습니다.
희망찬 새해를 불운과 불행의 그림자로 덧씌우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구조대가 도착했을 때는 신고자조차 자리에 있지 않았습니다. 죽은 소녀는 지역의 여느 소녀들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습니다. 좀 낡은 옷가지에 신발이 없는 행색인 것을 빼고는요.
“얼른얼른 처리하세. 새해 첫날부터 이게 무슨 일인가….”
구조대도 자주 겪는 일이라는 듯 움직였습니다. 안타깝기보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들도 가족과의 단란한 시간을 바랐고, 소녀와 같은 불운을 느끼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소식을 들은 신입 경관이 광장으로 달려왔습니다. 선배 경관도 벌써 도착해서 소녀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정말 성냥팔이 소녀가 있었단 말입니까? 아무리 둘러봐도 보지 못했는데요.”
“못 보는 게 당연하지. 검은 장막의 저주라고 했잖은가.”
“그게 대체 무슨….”
“곧 알게 될 테니 조급할 필요 없지.”
수습은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사고사로 말이에요.
우선 소녀의 유일한 가족이자 보호자인 아버지를 아동학대로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소녀의 소식을 전하자 아버지는 까무러졌습니다.
“그럴 리가 없어. 우리 애가 죽다니!”
비명을 지르고 물건을 던져댔습니다.
“내가 아동학대라니! 애가 고집이 센지. 하나라도 더 팔려다 그런 변이 생긴 거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을 사지로 내몰았다는 게 말이 됩니까?”
하지만 아버지의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소녀의 이웃들에게도 물었지요.
“얼마 전에 키워주던 할머니 돌아가시고부터 애 꼴이 말이 아니더라고요. 집 안에서 물건 부서지는 소리도 나고 계속 났었고….”
주변 사람들의 증언이며, 집안에 즐비한 술병들이 증거가 되었습니다. 처음엔 거세게 반항을 했던 아버지도 소녀의 주검을 보고는 입을 다물어 버렸습니다.
선배 경관의 재촉에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습니다.
“성냥만 팔러 보내면 빚을 탕감해 준다고…. 근데 이런 몰골로 죽기까지….”
아버지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말을 잃어갔습니다.
외부 상처는 없었지만, 신발도 신지 않은 아이의 발이며 손이며 차마 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아버지도 푸르뎅뎅한 소녀의 모습에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자신이 소녀를 성냥팔이로 밖으로 내보낸 것은 사실이었으니까요.
“아이를 성냥팔이로 내보내서 동사에 이르게 한 것을 인정하십니까?”
“저는…. 저는….”
아버지는 무슨 말인가 하고 싶은 듯 몇 번이나 멈칫했지만 끝내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소녀의 죽음은 아버지의 아동학대로 인한 것으로 마무리 지어졌습니다.
납득가지는 않았지만, 신입 경관에게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조사가 끝나가도록 신입 경관은 이상함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소녀의 죽음은 되돌릴 수는 없다고 해도,
선배가 말한 검은 장막이니 저주는 무엇이었을까요?
“동사로 인한 죽음이 맞습니까? 이것 좀 보세요. 아이가 웃고 있어요.”
죽어가는 사람의 얼굴에 핀 미소를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어요. 부검해 보자는 의견을 냈지만, 소녀의 아버지는 원치 않았습니다. 담당자들 모두도 말이에요.
몇 번을 물어도 선배는 말해 주지 않았습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말도 안 되는 게 일어나는 게 세상이라네. 이런 세상이라서 있는 성냥팔이 소녀도 있을 수 있는 거지….”
“그럼, 검은 장막의 저주는요?”
“저주받는 자는 예나 지금이나 같지 않나….”
들어도 모를 말들이었어요.
신입 경관은 의문을 떨칠 수 없어서 탐문에 나섰습니다.
소녀를 목격했다는 사람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사람들을 붙잡고 물었어요.
“성냥팔이 소녀를 보셨습니까?"
"소녀가 성냥을 팔고 있던 게 맞습니까?”
선배처럼 모두가 말하길 주저했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게 분명했습니다. 선배처럼 알면서도 말해 주지 않는 게 분명했습니다. 경관에게 답해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탐문에 실패하고 돌아서는 경관에게 늙은 부인이 손짓했습니다.
마을에서 점쟁이로 불리는 여인이었습니다.
걸음도 불편하고 한쪽 눈은 멀어서 경관을 아닌 다른 곳을 보는 듯 보였습니다.
경관은 이것저것 물었습니다.
“잘 생각해 보슈, 젊은 양반. 그 함박눈 밤에 당신은 성냥 파는 소리를 들었수?”
‘성냥 사세요~. 성냥 사세요~’
환청을 들은 듯도 했지만…. 들었던가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그랬다면 누구든 하나라도 사줬겠쥬? 신발도 없이 헐벗은 아이인데….”
그러고 보니 아무도 성냥 파는 소녀를 봤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죽은 소녀 앞에 성냥이 든 바구니와 타다만 성냥이 놓여 있어서 성냥팔이 소녀라고 생각했던 걸까요?
그날 성냥팔이 소녀가 성냥을 팔지 않았다면 대체 무엇을 팔아야 했던 걸까요?
“성냥은 뭔가요? 아는 대로 말씀해주십시오.”
오랜 침묵을 깬 점쟁이 여인의 한쪽 눈이 먼 곳을 향해 있었습니다.
“그 성냥에는 특별한 마법이 걸려 있답니다. 자신이 원하는 걸 볼 수 있는 마법 말이우. 그래서 웃으며 죽어가는 거라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십니까!”
“안 믿어도 할 수 없지만 사실이라우.”
경관의 얼빠진 얼굴에 여인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주름이 쳐진 미소였답니다.
“소녀의 아버지는 빚의 대가로 성냥을 받았을 거유. 검은 장막 너머로 갔다 오라며 소녀를 내보냈겠지요.”
부인의 말을 믿고 싶지 않았지만, 신입 경관도 소녀의 아버지가 엄청난 빚에 시달리고 있는 걸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