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행성]삑사리 데이

유짱의 지구별 표류기

by 유이지유

이상하게 자꾸 '삑사리('어긋남'이라고 순화를 해 보자.)'가 나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눈 뜰 때부터 조짐이 다르다.


평소보다 훨씬 일찍 눈이 떠진다던가, 아예 알람도 못 듣고 퍼질러지던가. 아무튼 평소에 하던 일을 마구마구 거부하고 싶어지지!


평소에는 신경조차 쓰이지 않던 일이 세상 심각하게 보이기도 하고, 그 반대이기도 하고. 이런 날에는 우주의 기운도 도우사~ 날씨도 어긋나 있고,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생각지도 않던 연락을 받기도 한다.


새벽 3시에 눈이 반짝!
‘다시 자 볼까?’

잠이 올 리가 없지. 일어나서는 갑자기 모자를 만들기 시작한다. 날씨가 너무 추워져서 뭔가를 뒤집어써야겠단 생각이 들었나 보다. 의식의 흐름대로 행동을 한다. 비는 주룩주룩 쏟아져서 본격적인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다. 한파의 시작이지.


어차피 오늘은 '망필'인데 집에 처박혀서 몸조리나 해야겠다! 싶은데 언제 신청했는지도 모르는 ‘강연’ 알림 문자가 띵똥~

판교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하는 ‘김민식 PD 인문학 강연’ 그게 오늘이었다.


완전 까먹고 있었음.


‘새벽부터 헛짓하느라 제대로 한 일도 없고, 날씨도 구질구질하고, 바람은 쌩쌩 부는데 거기까지 가야 하나?’


인생 최대의 고민이 또 시작된다.

기복이가 들락날락 왔다갔다 정신없게 만든다. 이런 고민하며 인생 낭비하느니 차라리 나가는 게 낫지. 또 ‘안 갈래!’의 기복이가 오기 전에 쏟아지는 비를 뚫고 지하철로 Go!



조금이라도 덜 젖겠다는 일념으로 달려 보아요~ 37분 차를 타려면 시간이 아슬아슬!

달리는 와중에 어딘가에서 들리는 소곤거림.
“미친 거 아냐?”
‘나?!’ 우산 너머의 두 할머니가 날보고 하는 소리였다.


빗속을 달리면 안 되나?

미친 듯이 달린다고 자기네한테 피해 준 것도 아닌데, 왜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지? 빗물이 튀었나? 아닌데... 그럴 거리가 안 나오는데.

비 오는 날 뜀박질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들의 눈에는 ‘미친 행위’인가. 폭이 좁은 도로에서 혹시 부딪힐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받게 했나? 그럴지도 모르지. 할머니들의 세상은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보다 더 위험천만한 것들로 가득할지도 모르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머리는 납득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한 마디가 오래 가슴에 남는다. 계속해서 말이 맴돈다. 어쩌다가 이런 새가슴, 새심장이 됐을까? 언제부터인가 눈빛, 말 한마디, 몸짓 하나에서 의미를 찾고, 쉬이 넘겨버리지 못하게 되었다. 적당하게 넘길 줄도 알아야 하는데... 쓸데없이 민감하고, 예민해져서 스스로를 감옥 속에 가두기도 한다.


나만 이런 걸까? 다른 이들은 어떨까? 이런 상태로 나 잘 버틸 수는 있을까?


홀딱 젖긴 했어도 아무튼 37분 지하철에 무사히 안착!

자리 앉아서 사람들을 둘러본다.

이곳에서도 뭔가 미묘한 ‘어긋남’을 느낀다. 뭐라고 표현을 해야 할까? 안온한 얼굴들을 하고 있는데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이 꾹꾹 누르고 있는 분위기. 잘못 건드렸다가는 폭발할 것 같은 아슬아슬함.

내가 이상해서일까? 이들의 무료함 무표정에 내 감정을 덧씌우고 있는 걸까? 평안보다는 불편을 가까이하고 있기에? 그럴 수도 있지. 오늘은 시작부터 ‘삑사리 데이’ 조짐이었으니까.


나는 때때로 사람들의 얼굴에서 이런 어긋남을 느낀다. 평온의 얼굴을 뒤집어쓰고 있지만, 우리 안에, 사회 안에, 이 세상에 꿈틀거리는 어긋남을 말이다.

이 ‘어긋남’에 대한 생각은 어제오늘이 아니었다. 요즘 뉴스의 사건들을 듣고 있으면 너무 말도 안 돼서 형용할 수가 없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사건들이 차고 넘친다. 적어도 내 상식의 기준으로는 그렇다. 그래서 자꾸 더 세상에 움추러 드나 보다. 겁이 난다. 길 가다가도 살해될 것 같고, 말 한마디 잘못 건넸다가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집어 먹는다. 그래서 꾹꾹 참고 만다. 내가 정당하다고 생각해도 상대는 전혀 정당하다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다.


모르겠다.

불가해한 세상이다.

모르는 것 투성이라 감정을 누르고 눈만 끔뻑거린다. 내가 이상해진 건지, 내 밖의 이 사회가 이상해진 건지...알 수가 없다.


자주 혼자여서 그런가 보다.



그래서 빗속을 뚫고 달린다.
사람들의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려고.

표정과 몸짓이 뜻하는 게 뭔지를 알아보려고.



*강연! 참석하길 잘했다.

빗속을 뚫고 달린 보람이 있는 강연이었다.
주제 ‘생각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인문학을 만나다’ 강연자-김민식, mbc 드라마 PD 답게 ‘인피니티 스톤을 찾아서’라는 영화 콘셉트를 적용한 강연이었다. 열정적으로 진심을 전하려는 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