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으로 더럽혀진 죽은...이어서
나는 세상을 알지 못하는 철딱서니였다.
철딱서니로 있을 수 있던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 것이었는지 이제 와서 되돌아본다.
삶이 일순간에 물꼬를 틀어버렸다. 한 번도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그토록 쉽게 생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언제까지고 철딱서니일 줄 알았던 시간이 일순간에 지워져 버렸다.
생이 얼마나 쉽게 방향을 틀어 사의 길로 가버릴 수 있는지 나는 그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 알지 못했다.
생과 사의 갈림길이 바로 눈앞에서 벌어지고서야 깨닫는다.
일상의 평온은 일순에 무너져 내렸다.
무너져 내린 일상이 매일 같이 뉴스를 장식했지만, 나와의 상관성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타인의 종말에 불과했었다.
내 삶에는 존재하지 않는 글이나 말속에만 존재하는 죽음일 뿐이었다.
슬픔으로 더럽혀진 죽음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우리는 그 종말들을 너무도 쉽게 입에 올렸다. 또 너무도 쉽게 던지고 잊어버렸다.
기사는 있지만 그들의 삶은 어디에도 없었다. 통계일 뿐, 그들의 삶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누구도 타인의 감정을 제 감정처럼 느낄 수는 없다.
그것이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이치에 누구보다 잘 길들여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 분명했다.
그에 대한 의문은 없었다.
왜 그래야 하는가?
평안과 평온을 보장하는 계약서를 거부할 이유 따위는 없었다.
그런데 반대로 내가 거부받는 대상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보았더라면 조금은 더 신중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조금은 타협이라는 걸 생각해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날 내게 발생한 일은 어떠한 타협도 용납할 수 없는 것으로 나의 세상을 무너뜨렸다.
처음에 그것이 무언지 몰라서 주저앉은 자리에서 들여다보고 있었다.
얼마를 그렇게 있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알고 있는 감각은 그것이 무엇인지 분명한 답을 내렸지만 내 이성이라는 것은 그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어떤 장치를 발동시켰다.
나는 손등에 적힌 그 문장을 분명히 알아봤다.
불과 며칠 전에 그 애가 신이 나서 자랑을 하던 타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이성은 나에게 이렇게 말을 걸고 있었다.
“아니야. 같은 타투이긴 해도 그건 네 친구의 팔이 아니야. 살점이 찢기고 팔뚝이 잘린 고깃덩이일 뿐이야. 그런 게 너와 점심을 먹는 그 애 일리가 없잖아. 너의 의심처럼 만의 하나 그 애의 것이었다 해도 일부일 뿐이잖아. 꼭 죽었다고 단정할 수 없어. 어서 의심을 지우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 고깃덩이 꼴이 나고 싶지 않으면 정신 차리고 몸을 움직이란 말이야. 가까워져 오는 총소리가 안 들리니? 너는 내 말을 따라야 해. 그래야. 이 살덩어리처럼 되지 않을 수 있어...”
끝도 없는 말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하나인 줄 알았던 소리는 수 십, 수백의 목소리가 되었다.
내부에서 울리는 소리가 내 발목을 잡으며 신음하는 소리, 터져 나오는 비명소리로부터 진공의 상태로 만들어갔다.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된 나는 피의 웅덩이가 된 복도를 팔꿈치를 세워 기었다.
내 움직임을 따라 피의 물결이 생겼다. 이따금 내 팔이나 다리를 잡는 손길이 느껴졌지만 그것들은 내 생명을 위협하는 또 다른 장애물일 뿐이었다.
들러붙는 손길을 그나마 움직임이 자유로운 오른 다리를 이용해 걷어냈다.
그래도 들러붙는 것은 잡히는 집기들을 이용해 떨궈내며 기어갔다.
바닥이 성한 곳이 없는 농구 코트의 풀 속에 몸을 숨기고야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것이 비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그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핏자국을 지워준 비 때문이었다. 그들의 눈길에서 빗겨 날 수 있었고, 그 빗겨 난 잠시 덕분에 건물이 폭파되기 전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없었어야 할 죽음이 흩뿌려진 곳에서 나는 살아남았다.
그들과 같은 방향의 길로 사라지지 않은 것에 감사했지만, 무엇에 감사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남겨짐이었다.
남겨짐이 대우받지 못한 채 고개를 떨구어야 했다. 생과 사로 구별 지어졌지만 그 어떤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사회였다. 그들의 발밑에서 뒹구는 생사가 초라해서, 그들의 죽음에 보태지 못한 피 대신에 나의 눈물을 더했다.
의미를 부여받지 못한 죽음이 나뒹굴었다.
슬픔으로밖에 어떤 것도 표현할 수가 없어서 눈물만 보탰다. 슬픔으로 값싸게 그들의 죽음을 더럽힐 뿐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이런 게 아닐 것이다.
그날 우리가 흘려야 했던 피의 이유를!
때 이른 죽음을 납득할 수 있게 해 달라 울부짖는 소리에 머리가 먹먹했다.
세상은 우리에게 대답을 해야만 했다.
반드시 그래야만 했지만 아무도 우리에게 답하지 않는다.
오히려 묻는다.
왜 자신들이 대답을 해야 하느냐고?
답을 찾을 수가 없다. 실제로 그곳에서 살아남은 자들조차도 당시의 참혹함으로 인해 진실로부터 등을 돌렸다. 대부분이 사건으로부터 빨리 멀어지는 길을 선택하고 만다. 눈을 돌려 되도록 빨리 잊는 것이 그 자신의 삶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잠시 사회를 혼란으로 빠뜨리긴 했지만, 반복된 사건들에 이목이 쏠리며 우리의 죽음은 곧 잊혔다.
대답한다고 해도 이제 들을 귀를 갖지 못한 이들의 죽음이 학교 옆 공동묘지에 누워 있다. 같이 누였어야 할 죽음들 앞에 나는 홀로 서 있다.
그들이 손짓을 하듯 그날처럼 하늘이 눈물을 쏟아낸다.
그러나 그날처럼 나의 눈물은 흐르지 않는다.
그들의 죽음을 애도할 자격이 없다.
내 발길질에 떨어진 그 애와 내 손길에 신음하던 얼굴이 지금에서야 더욱 선명해진다.
죽음을 보탰던 내가 가식의 눈물을 흘릴 수는 없다.
슬픔으로 더럽히는 대신에 고개를 들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보상할 길 없는 내 죄에 대가는 그들을 대신해 저들에게 묻는 것이다.
더 이상 발언의 기회조차 남겨지지 않은 이들을 위해 입을 열어 물어야 한다.
우리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를 향해 걸어 들어가, 목이 갈라 터지게 외쳐야 한다.
슬픔으로 더럽혀진 우리의 이야기를 노래해야 한다.
그대의 죄가 무엇이며, 나의 죄가 무엇인지 계속해서 물어갈 것이다.
발길질로 대신해서 얻는 생의 값을 치르기 위해!
속죄할 길이 없는 죄를 더는 더 하지 않기 위해!
죽음을 슬픔으로 납득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49명의 사망자와 22명의 중상자를 낸 그날의 사건이 일순에 생의 물꼬를 틀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