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으로 더럽혀진 죽음. 이어서
맡겨진 임무는 학부형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일이었다.
쏟아내는 한탄을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토해내는 게 한계였다.
“그 애들이 얼마나 착한데요. 우리 애가 그랬다면 그 상황에 그런 평온한 얼굴을 했을 리가 없어요.”
그들은 역정을 내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했다.
나는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 말을 이로 씹어 삼켜야 했다.
‘모르시는 말씀! 그 애들이 얼마나 악마 같았는 모르시는군! 실체를 본다면 절대 그런 말 못 뱉을 걸!’
당신들이 상식으로 생각해왔던 것을 그 애들에게 대입해선 안 된다.
당신들의 세대는 적어도 남의 눈을 신경 쓰며 살자는 인식은 있었다.
그대들의 부모 세대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당신 세대는 그 애들의 뇌에는 무엇을 새겨 넣었나?
‘남의 눈은 신경 쓰지 마라, 네 할 바를 해라, 남 따윈 무시하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승리를 쟁취해야 해라.’
‘짓밟아서라도 너의 말을 듣게 해라.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다. 이 세상의 승리의 방법이다.’
그 애들의 귀에 못 박히게 외쳤던 말들을 그새 잊었는가.
깡그리 기억상실당한 사람들처럼 내 책임이 아니라 발을 빼는가.
닥치고 듣게 하고 싶었지만 나에겐 그럴 힘이 없었다.
그들은 진상을 알려는 게 아니다. 진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내게 맡은 역할은 그들이 토해내는 감정을 처리하는 배수구일 뿐이었다.
*
그 애들의 일탈은 당연했다.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 애들은 일그러진 자신들의 세계를 유지할 규약을 만들었다.
자신들이 틈새를 벌린 세상이 진실이 아닐 지라도 더한 진실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회의 안정화 시스템을 파괴하는 자들의 짓거리를 하고 다녔다.
피기도 전에 떨어지려는 것은 세상의 룰을 위반하는 행위였다.
세상살이에 풍파를 겪기도 전인 그 애들에게 세상은 태평성대와도 같을 진데 세상을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어리석은 짓거리로 보였다.
그 짓거리들을 벌이는 이유를 당신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실 그 애들은 운이 나빴다.
현명한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나름의 태평성대를 누리다가 나이 들어가며 팍팍함에 적응하면 되었다.
그런데 그런 기회도 갖기도 전에 밀려난 것이다.
빼앗겨서 알지 말아야 할 것을 알아버린 탓이다.
누구를 탓해야 할까?
탓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 세상에서 그들은 탓할 것이 너무도 많았다.
손가락질받아야 할 대상들이 모두 자기 탓이 아니라 했다.
울분만 쌓이게 했고, 쌓이는 울분을 풀 곳이 없었다.
울분 하나에 꽃잎 하나.. 눈물이 방울방울 하늘하늘 떨어져 내렸다.
처음에는 꽃잎으로 떨어졌고, 꽃잎이 지고 꽃술이 떨어졌다.
이파리마저 떨어지고 나니 비쩍 말라비틀어진 가시가 되어 제 심장을 찔렀다.
그 애들은 그렇게 깨어졌다.
감춰진 것들이 조각나서 정체를 그 애들 앞에 드러냈다.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날카로운 것들에 이들 들어냈다.
수십 개의 톱니바퀴를 한데 묶어놓은 아가미가 머리부터 집어삼켰다.
그 머리에 수십 개의 이빨들이 파고들어 검붉은 액체를 분출한다.
단단해서 한 번에 부서질 것 같지 않은 둥근 것이 와지끈 부서졌다.
물컹한 것들이 목덜미를 타고 내렸다. 이내 나머지 몸뚱이를 잘근잘근 씹어 삼켜 들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씹어 먹히는 몸뚱이는 고통 속에 죽어갔다.
위액에 섞이고 녹아내려 세포 하나하나가 저 너머로 분해됐다.
죽음과 사람의 경계에 걸쳐 있었다.
생을 빼앗겨 반쯤은 살았고, 반쯤은 죽어있는 상태이다.
*
감염된 것들이다.
그것들이 숙주가 되어 저 세상의 통로를 잇는다.
그 애들의 생을 타고 저 세상 것들이 기어오른다. 지옥의 문을 여는 여리고 어린 것들.
뺏는 것에는 익숙해도, 뺏기는 것엔 익숙하지 않은 현명한 자들은 고통의 화근이 될 싹을 자르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남들의 생은 주저할 거리가 되지 않는다.
안정화 시스템을 파괴하는 싹은 먼저 쳐내야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