私話 ▶ [ 일상과 변화 ]

당연한 것 - 익숙한 것의 변화

by 유이지유

집에 매일 방문하는 사람, 우편배달부.

2~3시경 매일 같이 방문을 한다. 무슨 우편물이 그리도 많은지... 쇼핑 잡지, 지역 관공소나 은행에서 보내는 자질구레한 공고문, 고지서 등등. 새 모이를 나르듯 매일 같은 시각 입구의 우편배달함에 우편을 넣고 사라진다.

등기나 택배가 아니면 집 안쪽까지 들어오지 않는다. 그가 이 구역 배달업무를 맞은 지가 몇 년째이던가? 시간의 흐름에 둔해져서 몇 년째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도 그가 몇 년째 이 구역을 담당하고 있는지 퍼득 기억해 낼 수 있을까? 물어보지 않았으니 알 수가 없지.


그는 업무가 너무 익숙해서 누구네 댁이 어떤지 사정을 빤히 알 것이다. 민 씨 댁에 도착한 그가 오늘은 조금 당황했을 것이다. 조금 다른 그의 다른 행동을 지켜봤다.

여느 때처럼 기세 좋게 오토바이를 몰아 입구에 도착한 그는 일단 입구에서 멈췄다.


‘맞게 왔는데, 어라, 입구가 두 배로 넓어졌네!’


있어야 하는 것들이 사라져 버렸다.

입구에 터주대감처럼 버티고 서 있던 목련 나무 ‘몽돌이’가 그 푸르던 나뭇잎 한 장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그 옆에 허술하게 버티고 서 있던 푸세식 화장실도 사라졌다. 그 벽에 걸려 있던 우편함과 명패도 물론 사라져서 우편물을 넣을 곳이 마땅치 않아졌다. 그러니 평소와 달리 안쪽까지 들어와서 우편물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 고개를 한 번 갸웃한다. 곧 가장 눈에 띌 만한 고무 다라를 뒤집어 놓은 우물 위에 우편물을 턱 하니 던져놓고는 오토바이를 돌린다. 평소보다 시간을 소모하고 말았는지 기세 좋게 민 씨 댁을 뒤로한다.


익숙하고 당연한 일에는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다. 인지와 판단을 발휘할 필요가 없다. 당연한 위치에 넣고 사라지면 끝이다. 그러나 마땅한 곳이 사라지고 나면, ‘그것은 어디로 갔는가’라는 의문을 가져야 하고, ‘그렇다면 이건 어디에 놓아야 할까.’를 판단을 해야 한다.


‘일상’은 시간의 축을 둔하게 만든다.

짧았던 건지 길었던 건지, 그게 언제 어느 때 무렵이었는지 흐리멍덩하게 만든다.

감각이 들어 있지 않기 때문에 선명하지 않다. 일상과 달라질 때는 감각을 발동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더 선명한 점을 찍는다. 선명한 기억을 만든다.

‘변화’는 일상에 비해 피곤하다.

에너지 소모가 일상에 비해 크기 때문이다. 에너지 효율을 최소화하는 생명체로 진화해온 인간의 속성에 반한다.


에너지 효율 면에서 일상은 편하다.

생명 유지와 평온에 이득인 일상. 적응하느라 피곤한 변화무상.

무엇을 쫓을지는 선택하기 나름이다.

그러나 삶이라는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며 어디론가로 나아가려면 변화를 마주해야 한다.

일상 속에서조차 변화로 인지하는 순간순간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한다.


일상 속에서 변화를 변화 속에서 일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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