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처럼 계절을 앓는다.
우리가 함께 했던 계절이 찾아올 때마다 너를 앓는다. 매번 빠짐도 없이 앓이를 한다.
있어야 할 것이 사라져 버려서, 그럼에도 그리움을 놓을 수 없어서 너를 앓는다.
흩뿌려졌던 꽃비가 너의 머리카락을 장식하던 계절.
살랑이는 꽃잎들이 초라한 너의 교복을 수놓으며 누구보다 환희 물들였던 그 봄이 나를 앓게 했다.
영원히 돌아갈 수 없던 시간 속에 아로새겨진 우리의 만남이었다.
너와 재회한 여름날은 참으로 눈이 부셨다.
눈을 두는 곳곳마다 햇빛으로 가득해서 너를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네가 서 있던 천변에 부서지던 윤슬과 파릇한 잎들 위에 미끄러지는 빛들이 온 세상을 물들였다.
나를 향해 돌아서던 그 붉디붉은 댕기가 싱그러움으로 가득한 너의 생을 담고 있었다.
밤하늘을 물들이던 풍등과 모종교 아래로 부서지던 불빛들.
연등제의 그 밤거리를 우리는 두 손 맞잡고 걸었다.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으리라 여겼던 풍요롭던 그 계절은,
너를 흔적도 없이 데려가 버렸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일지도 모르겠다. 꿈꾼 것을 이루었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온몸과 온 마음, 모든 생을 바쳐 사랑하고 꿈을 꿨기에 우리는 잃게 만들었다.
너는 너의 시간 속으로, 나는 나의 시간 속으로 우리를 흩어 놓았다.
네가 바랐던 시간을 여기서 나 홀로 영위하게 만들었다.
너만 없이 모든 것을 이룬 시간 속에서 나는 홀로 매번 너를 앓는다.
너를 앓지 않는 계절이 겨울이다.
너와 함께 하지 못했던 계절이었다.
눈꽃이 내릴 때 붉게 물들어 갈 너를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너는 서둘러 나를 떠나보냈다.
네가 홀로 스러질 그 계절을 영원히 보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너와 함께 하지 않은 계절이 돌아올 때마다,
하늘이 차가운 꽃잎을 흩뿌릴 때마다 나는 너를 올려다본다.
그래서 너를 앓을 수조차 없다.
겨울앓이는 나에게 사치이다.
너를 지키지 못한 나를 향해 하얀 벌이 뼈 마디마디 스며든다.
함께한 계절이 돌아올 때마다 너를 앓는 나는, 함께하지 못했던 이 계절이 가장 서럽다.
보글보글 수증기에 하얀 성애가 낀 창가에는 알록달록 아기자기한 장식품들이 삼나무길을 향해 놓여있다.
너를 위한 모닥불을 지피고 안락의자 위에 무릎담요를 올려놓았다.
어둑새벽을 헤맸을 몸을 녹일 향긋한 차도 준비해 둔다.
원목 탁자 위에는 몇 번의 시도 끝에 완성한 털가죽 부츠와 플리마켓에서 산 너에게 꼭 맞을 보넷이 있다.
겨울앓이조차 할 수 없는 나는,
네가 길을 잃지 않고 따라 걸을 꼬마전구로 밤을 밝힌다.
언젠가 올 너를 매 계절마다 앓는 나도 언제까지나 그 길을 향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