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아직 시차 적응이 되지 않은 탓인지, 어제는 초저녁부터 기절을 하고 잔 것 같다.
새벽 5시경, 눈을 떠보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오늘은 바티칸 PLUS 투어를 가는 날이다.
8시까지 만남의 장소에 가야 하는 탓에, 어제 미리 받아온 조식과 떼르미니 역에서 사온 샌드위치와 오렌지를 먹기로 한다.
바티칸 투어는 미리 한국에서 예약을 해두었다.
시간도 돈이라고 생각해서, 기꺼이 비용을 더 주고 대기 시간이 없는 PLUS투어로 예매했는데,
엄마가 예상치 못하게 다리를 다쳐버렸다.
엄마는 일행의 걷는 속도를 맞출 수도 없고, 계단을 오르내릴 수가 없으므로,
민폐가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예 가지 말까?"
아.. 하늘은 내 속도 모르고 비까지 내린다.
엄마가 혹시 빗길에 미끄러져 넘어질 수도 있으니,
숙소에서 쉬는 것이 어떻겠냐고 넌지시 물어보았다.
그러자 엄마는 "너는?"이라고 되물으신다.
"나? 나는 가야지."
그러자 엄마 표정에 짧게 서운한 기색이 엿보인다.
에이, 여기까지 와서 엄마 혼자 두고 가기도 뭐하고,
어떻게든 될 대로 되라지 라는 심정으로, 엄마한테 일단 가자고 했다.
입장만 같이 하고, 그 이후에는 우리끼리 보자는 심정이었다.
투어 만남의 장소는 Cipro역이었고,
메트로로 떼르미니 역에서 7 정거장, 30분 정도 소요된다.
그러나 우리는 깔끔하게 우버를 불렀다. (25유로, 한화로 33000원 정도 지불)
택시에서 내리니, 저 멀리 한국인 무리가 보이는 것도 같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투어 받으려는 사람들이 정말 많더라.
그리고 이내, 뒤통수가 너무 따갑기 시작했다.
"저 목발을 짚고 투어에 간다고?"라는 믿을 수 없다는 눈빛.
투어 담당자도 흠칫 놀라며, 같이 투어 진행하기는 어렵다고 말해서,
입장만 시켜주면, 그 이후로는 따로 다니겠다고 말했다.
일단 투어 담당자를 따라, 바티칸 입장하는 곳까지 따라가기로 한다.
그런데 목발 짚은 사람한테 집결지에서 바티칸 입구까지의 거리는 참 멀더라.
차라리 미리 택시 타고 가있을 걸 그랬다.
투어 담당자는 이미 저기까지 갔지,
엄마는 못 쫓아오지,
투어 담당자가 잠시 걸음을 멈춰주면,
나는 엄마에게 세차게 손짓하고, 엄마는 거의 미친 듯이 쉬지 않고 쫓아와야 했다.
그 거리가 어찌나 멀게 느껴지던지,
엄마가 고생하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깝고,
사람들 보기에도 어찌나 민망하고 미안하던지 모른다.
아직도 얼굴이 화끈 거리는 것 같다.
그렇게 힘들 게 도착했다.
바티칸 박물관.
입장은 함께 하고, 바로 투어 담당자와 헤어졌다.
그리고 곧바로 박물관 입구 오른쪽 방향의 인포데스크에 가서,
여권을 맡기고 휠체어를 빌렸다.
그리고 엄마 탑승!
엄마는 무척 만족스러워하셨다. ㅎㅎ
휠체어 미는 것이 육체적으로 고되기는 했지만, 마음이 무척 편했다.
엄마가 다리 아플까 신경 안 써도 되고, 시간에 쫓길 필요도 없으니 말이다.
박물관 바닥은 휠체어가 이동하기 편하게 되어 있었고, 층간 리프트 이동 시에도 직원들이 기꺼이 도와주었다.
박물관이 워낙 넓다 보니, 어디를 보아야 할지 예측할 수 없었지만,
어떤 곳을 보아도 모두 탄성이 나오는 작품들 뿐이었다.
박물관 직원이 먼저 다가와, 라파엘로의 방에 가는 길을 알려주기도 했는데, 참 고마웠다.
여행 할 때는 이러한 도움이 무척 고맙고 기억에 남는 듯 하다.
유명한 아테네 학당 작품도 정말 멋있었다.
바티칸 박물관 내, '솔방울 정원'에도 들렀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날씨는 환하게 개어 있었다.
파란 하늘에 아름다운 정원을 거닐고 있으니, 신선이 따로 없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는 언제 또다시 오겠느냐며,
정원 한 바퀴를 둘러보고서도 풍경에 눈을 떼지 못했다.
우리는 정원에 있는 커피숍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카푸치노, 아메리카노와 크루아상을 맛있게 먹으며, 여유롭게 쉬어본다.
엄마와 나 모두 직장 생활로 바쁘게 지내오다, 이렇게 여유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좋았다.
이제 좀 쉬었으니, 시스티나 성당을 가기로 한다.
박물관과 붙어 있어서, 휠체어를 타고 이동했다.
"엄마, 천지창조! 천지창조!"
사람들이 모두 천장에 한 곳을 바라보고 있다.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걸작인 '천지창조'다.
천장이 높아서 그림 크기가 생각보다 작게 느껴졌다.
열심히 두 눈에 담고 왔다.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발 디딜 틈도 없고 정신도 없었다. 사진도 못 찍게 하더라.
이제 볼만큼 봤으니, 성 베드로 성당과 광장을 가기 위해 이곳을 나가기로 한다.
출구에서 휠체어를 반납하면서, 맡겨 두었던 여권을 찾았다.
정말 휠체어 밀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더라.
사람들 부딪칠까 길 막을까 신경 쓰느라, 미술작품 구경하기도 사진 찍기도 어려웠다.
여하튼 이젠 탈출이다.
성 베드로 성당과 광장은 택시 타고 10분 거리라고 하던데,
날씨도 좋고 거리 구경도 할 겸 걸어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올드 브릿지 젤라또는 필수다.
세가지 맛 2개에 6유로 지불했다.
딸기맛/파스타치오맛/요거트맛이 유명하다고 한다.
날씨도 좋고, 사람 구경도 하면서 걷다가 '성 베드로 광장'에 도착했다.
멀리서 언뜻 보아도, 입장 줄이 꽤 긴 것 같았다.
입구를 찾기 위해 열심히 걸어가는데
갑자기 앞에서 걷고 계시던 외국인 할아버지가 뒤를 홱 도시더니, 나한테 뭐라 뭐라 말씀하신다.
너무 빠르게 말씀하셔서 못 알아 들었는데,
저쪽 어딘가를 가리키면서 빠르게 본인 말을 마치고 가버리신다.
"뭐지?"
벙쪄서 걷다가, 이윽고 알게 됐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을 위한 입구가 따로 있어서, 바로 입장이 가능하더라.
이럴 땐 나도 엄마 덕을 톡톡히 봤다.
그리고 입장!
광장에 들어서니, 입이 떡하고 벌어졌다.
건축물이 정말 아름답다.
조각상이 나란히 서있는 모습이 정말 장관이다.
광장의 규모와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 성 베드로 성당으로 입장했다.
유리창 속에 갇혀 있는 피에타와 전시되어 있는 작품을 관람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은 베드로의 유해가 있는 곳이라 하더라.
기도할 수 있는 장소도 따로 마련되어 있어, 엄마와 함께 기도했다.
성당에 있는 전시물과 그림은 정말이지 예술이었다.
작품의 모든 면에 디테일이 살아있었다.
특히 피에타는 내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영광스러울 정도 였다.
아름다운 성 베드로 성당까지 모두 돌아보고 나니, 피곤함이 확 몰려온다.
이제 됐다 싶은 마음에,
우버 택시를 불러, 숙소로 돌아가기로 한다.
숙소에 도착 후, 첫 날 갔던 Elettra에 들러 봉골레 파스타, 삶은 연어 요리, 오렌지 주스를 시켜 먹었다.
삶은 연어 요리는 속에 풀떼기 같은 게 들어 있었는데, 맛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는데 양이 좀 적었다.
이렇게 엄마와 나는 로마에서의 셋째날을 무사히 마감했다.
오늘 깨달은 점은 "걱정스러운 상황이 있더라도 일단 실행해보자!" 라는 것이었다.
비가 온다고, 투어 사람들에게 민폐일 거라고 숙소에만 있었으면 어땠을까?
로마에 있는 5일 중의 하루를 너무 아쉽게 날려보냈다는 생각에, 짜증이 많이 났을 것 같다.
나에게는 우버 택시라는 수단이 있으니 편하게 목적지까지 갈 수 있고, 투어를 포기하는 대신 휠체어를 얻었고 여유롭게 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었다.
특히, 휠체어를 미는 과정에서 유럽 사람들이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을 참 많이 배려한다는 점을 경험할 수가 있었어서, 과연 선진국이라는 점을 깨달을 수도 있었고, 그 과정에서 소소한 추억들도 생겼다.
오늘, 용기 내서 바티칸에 참 잘 갔다.
4/25 D+3 엄마의 일기
어제 일찍 잠자리에 들어서 12시 넘어서는 시간마다 깨서 시간보고 또 자다가 깨보니 5시 경에 딸도 일어났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가야 되는지를 고민해보고 하다가 가기로 결정했다.
우버 택시타고 치프로역까지 8시 전에 도착해서 합류했다.
투어 여행객이 20여명이 넘어보였다. 우리는 합류하지 못하고 입구에서 헤어졌다.
입구까지 가는데 엄청 힘들었다. 바티칸 박물관 앞에서 검색대를 통과하여 유경이와 둘이 바티칸 입장권을 받고 그 후로 둘만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휠체어를 빌려서 리프트를 물어물어 라파엘로의 방, 시스티나 성당, 솔방울 정원을 잘 다녀왔다.
솔방울 정원에서 크로와상과 커피와 먹으니 맛이 좋았다. 아메리카노, 카푸치노 시켜서 간식으로 배를 채웠다.
휠체어 빌린 곳을 물어물어 도착해서 여권 맡겨놓은 것을 찾고 반납했다.
시스티나 성당은 사진촬영을 못하게 했다. 천지창조 그림을 보고 라파엘로의 방은 금빛장식과 여러 그림이 많이 있었다.
바티칸 박물관의 아테네 학당 그림을 보고 천장, 벽면 그림, 기타 등등 너무 많이 보았다.
휠체어 반납하고 성 베드로 성당과 광장을 보았다.
리프트를 이용해서 계단을 사용하지 않고 나름 편하게 다녔다.
내 다리가 성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도 해보았다. 딸이 정말로 고생을 많이 했다.
성베드로 성당은 너무 웅장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특히 입구 첫번째 피에타상의 모습이 유리관에 있었다. 마리아가 예수 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기도하는 공간에 들어가서 기도도 하고 내 발에 휴식을 주었다.
베드로 유해가 있다고 하는 곳에 사람들이 많이모여서 보고 있었다.
광장에 앉아있다가 장애 있는 사람들 위한 화장실, 리프트를 보며 선진국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피곤해서 죽을 정도였다. 젤라또 올드 브릿지에서 3가지 종류의 젤라또를 먹었다. 성 베드로 성당까지 걸어갔다. 택시타면 15분 걸린다고 했지만, 가는 길이 너무 좋아서 걸어갔다.
젤라또가 양이 많고 맛이 최고였다. 다음기회가 생기면 컵에다 먹어야 겠다.
그리고 성베드로 광장까지 다 보고난 후 우버택시타고 숙소에 도착했다.
내일은 남부투어 7시까지 산타마리아 마조레 성당에 가야한다.
짐은 숙소에 맡기고(5유로), 찾을 때 준다고 한다. 내일 아침 조식도 미리 갖다 주었다.
딸과 나는 멸치를 쌈장에 찍어먹고, 어제 먹고 남은 오렌지 3개를 마저 먹었다. 맛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