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思적인후기]레슨인케미스트리/보니가머스

용기가 필요해? 그렇다면 조트의 이야기가 필요해

by 거창하지않은

주인공 조트의 MBTI는 NT일 거야


유난히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들은 나의 맘속에 깊이 자리 잡곤 한다. 영화 히든피겨스도 그랬고 헬프도 그랬다. 부조리한 사회에 염증을 느껴 뒤엎어 버리고 싶은 ENTP의 종특 때문에 과몰입이 가능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만난 작품 ‘레슨 인 케미스트리’ 또한 한 장 한 장 넘어가는 게 아쉬울 정도로 한 줄 한 줄 곱씹으며 읽게 되었다. (레슨인케미스트리도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다.)


”봐요, 인생은 원래가 불공평해요. 그런데 당신은 마치 인생이 공평한 것처럼 행동하고 있잖습니까. 몇 가지 오류만 고치면 나머지는 알아서 잘 맞아떨어질 것처럼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고요…. 시스템대로 움직이지 마요. 시스템을 뛰어넘어버려요.“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어쩐지 지금 들은 제안에 마음이 갔다. 하지만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시스템을 굳이 뛰어넘어야 한다는 전제 자체가 싫었으니까. 애초에 시스템을 바르게 만들면 안 되는 거야?

-레슨인케미스트리 중에서-


나는 엘리자베스 조트의 MBTI는 분명 INTJ일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사회를 바라보면서 가졌던 ‘인생은 불합리하다.’는 시선, ‘사회는 더욱더 큰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들은 조트의 속마음과 너무나도 많이 닮아있어 마치 영혼의 단짝이라도 만난 느낌이었다. 심지어 조트의 일부 발언은 내가 써놓은 일기를 훔쳐본 게 아닐까라는 착각을 일으키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각자 자기만의 차별의 상처가 있다


몇 년 전 82년생 김지영을 읽었을 때가 생각난다. 그 책은 일기장 속에서 잠자고 있던 학창 시절의 기억을 소환해 주었었다. ‘여자애가 참 드세다.’는 꼬리표가 따라다녔고 성적은 전교일등에 전교회장이라는 완장도 차고 있었지만 그 앞에 ‘남자애들을 제치고’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던 그 과거를 말이다.


안타까운 건 1960년대를 배경으로 살아가던 그들의 마음을 60년이 지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후세들 또한 매우 공감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세상이 균형을 맞추기 위해 변해왔고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약자의 위치를 역이용하는 여성들도 존재한다는 사실 또한 부정하지 않는다.


경험하고 생각하고 책을 읽으며 내린 결론은 ‘영원한 우위는 없다.’

사람은 언제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서 강자의 위치에 있기도 약자에 위치에 있기도 한다. 내가 강자에 위치에 있다는 착각에 차별을 용인한다면 내가 약자의 위치에 서게 되었을 때 나를 구제해 줄 수 있는 장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나는 그때부터 차별이라는 개념을 지양하기 시작했다. 차별은 성별, 종교, 인종, 경제, 나이 많은 곳에서 존재한다.





집단에 적응하려 본연의 너 자신을 너무 버리지는 말아 줘


나는 이 책이 비단 ‘성’ 차별에 집중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 모든 차별에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의 가능성을 스스로가 막고 있는 사람들에게 알을 깨고 나오라고 알을 깨고 나올 용기를 가지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다.


”적응하지 못한다는 느낌은 끔찍합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 하는 게 자연스러우니까요. 생물학적 현상입니다. 그러나 사회는 우리가 소속감을 느끼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죠. 우리가 자신을 쓸모없는 잣대에 맞추려 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성별과 인종, 종교와 정치, 학연 등등, 심지어 신장과 체중도ㅡ
반면 [6시 저녁 식사]는 인간의 공통점인 화학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 시청자들이 이제껏 배워온 사회 규범, 즉 ‘남자는 이렇고 여자는 저렇다.’ 식의 케케묵은 관념에 저도 모르게 얽매여 있더라도, 우리 방송은 문화적 단일성을 넘어서 생각하도록 격려해주는 겁니다. 분별력을 갖추고 과학자처럼 생각하라고 말입니다…. 당신은 사회 규범을 강화하는 방송을 바라고 있어요. 그건 개인의 능력을 제한하죠.“

-레슨인케미스트리 중에서-


사람의 능력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사람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최근 몇 년간 직접 눈으로 보았고 경험했다. 나는 사람은 모두 잠재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다만 발휘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특히 ‘변화’의 가능성에 대해 집요하게 좇는 사람이다. 여초 집단 그리고 위계질서의 집단에 오래 몸담고 있으면서 그 특유의 집단적 분위기에 혐오와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며 변화를 이끌어 냈던 사람 중에 하나이고, 그 변화를 경험했던 장본인이기 때문에 변화의 가능성과 힘을 믿는다.


나는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모두에게 같은 경험을 겪게 해주고 싶었고, 열심히 설득하였다. 레슨인케미스트리는 많은 여성이 조트의 이끌림과 설득에 매료당한 진취적인 여성 등장인물들이 다수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인물들이 공포에 사로 잡혀 있는 상황에 너무 익숙했고 자신의 재능을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 배제하고 있었다. 결국 그렇게 스스로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제일 어려운 일은 학업을 다시 시작하는 게 아니라 그럴 용기를 갖는 거란 사실을요.” 그녀는 종이를 얹은 이젤로 성큼성큼 걸어가서 마커를 쥐고 ‘화학은 변화다.’라는 문장을 쓰고서 방청객을 돌아보았다.

“자신에 대한 의심이 들 때마다, 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이것만 기억하십시오. 용기는 변화의 뿌리라는 말을요. 화학적으로 우리는 변화할 수 있게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그러니 내일 아침 일어나면 다짐하십시오. 무엇도 나 자신을 막을 수 없다고. 내가 뭘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더는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라 규정하지 말자고. 누구도 더는 성별이나 인종, 경제적 수준이나 종교 같은 쓸모없는 범주로 나를 분류하게 두지 말자고. 여러분의 재능을 잠재우지 마십시오.”

-레슨인케미스트리 중에서-




용기가 필요해? 그렇다면 조트의 이야기가 필요해


나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조트와 같이 말하곤 했다. 그렇게 말하기를 몇 년, 최근에는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변화하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게 그 사람들에게 또 다른 폭력이 되지는 않을까라고 생각에 머물기도 했다. 그런 어려운 이야기를 소설로써 감동적이고 위트 있게 풀어준 작가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과연 내가 변화할 수 있을까? 내가 머문 세계에서 한 발자국 나아갈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의문이 드는 사람에게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물론 한 발자국 나아 선다고 해서 환경이 더 나아진다는 보장은 없다. 더 나아진다고 할 순 없다. 그럼에도 나아가야 하는 이유는, 그렇게 한 발자국 나아감으로써 내 주변을 둘러싼 ‘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을 믿어준 나를 향한 나의 믿음, 그 경험 때문이다. 나를 믿어준 ’나 자신‘이 변화했다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경험치가 쌓이다 보면 그 무엇보다도 단단해진 나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꼭 경험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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