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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무 Dec 21. 2023

다리를 가지고 싶은 이유

아이와 함께 인어공주를 보러 영화관에 갔습니다.

내가 아이의 나이였을 때부터 나도 숱하게 보아 모든 스토리를 알고 있는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실사버전이었는데 할리베일리가 인어공주 역을 맡아 논란이 있기도 했습니다.

논란의 이유로는 피부색이기도 하고 개성 있는 외모 때문인 것 같기도 합니다.

인어공주에게 정해진 외모란게 있을까요.

오히려 반인반어이니 너무 인간과 비슷하게 생기지 않았을 확률이 더 높을 것도 같은데 말입니다.

디즈니 버전은 실제 동화와 다르게 해피엔딩이어서 좋았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고 난 후 너무 여운이 남지 않는 게 좋아서 해피엔딩이 좋습니다.

여러 결말들이 뒤섞여 있는 현실을 보고 있자니 영화에서만큼은 행복한 끝을 보고 싶습니다.


영화의 전체 스토리, 결말을 알고 보았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벅찬 감정이 들었습니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두근거림, 희열, 기쁨, 공감


인어공주 ost를 좋아합니다.

특히 다니엘이 부른 '저곳으로'를 처음 들었을 때

실제 인어공주가 노래를 부른다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할 정도로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는 노래를 들을 때 가사에 집중을 합니다.

'저곳으로' 노래를 듣는데

마치 인어공주가 저같이 느껴졌습니다.

가사 전문입니다.




"이것 좀 봐 신기하지

내가 모은 것들 대단하지

내가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것 같겠지

이것 좀 봐 아름답고 신비한 물건들 바라보면

넌 이렇게 말할걸

어쩜, 모두 네 거니

내겐 재밌는 것들도 많지

아주 귀하고 별난 것도

너도 한번 볼래? 정말 많아

하지만 이걸론 부족해

사람들이 사는 덴 어떨까

보고 싶어 춤을 추는 연인

걸어 다니는 걸 뭐라고 불러? 오, 다리


지느러미로는 멀리 못 가

다리가 없으면 춤도 못 춰


돌아다니는 곳을 뭐라 그러지? 거리

걷고 싶고 뛰고 싶어

저 태양 아래 어디서든

자유롭게 살고 싶어

 저곳에서

저 밖으로 나가려면 어떻게 하나

햇빛 아래 모래 위에 눕고 싶어

그곳에선 이해할걸

나같이 혼나지 않겠지

두 발 딛고 설 수 있게 해 줄 거야

난 알고 싶어 세상 모든 걸

궁금한 모든 걸 묻고 싶어


대체 불이란 뭘까? 뜨겁다는 건?


언제일까 자유로운 세상 만날 수 있는 그날

자유롭게 가고 싶어

저곳으로"





"이것 좀 봐 신기하지

내가 모은 것들 대단하지."


인어공주가 모은 물건들은 구부러진 포크, 깨진 접시, 찢어진 신발 같은 것들이었을 겁니다.

누군가에 눈에는 바다쓰레기일지도 모르지만

인어공주의 눈에는 이 물건들이 무엇일지, 어떻게 쓰였을지 무한한 상상을 하게 해주는 육지를 향한 통로일지도 모릅니다.

인어공주의 눈에는 얇은 선이 길게 뻗어 있는 포크의 조형미가 느껴지고 바닷속을 뚫고 들어온 빛에 반짝이는 포크가 보였을 것 같습니다.


모든 것들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람에도 빛깔이 있고

햇살은 매일 다른 아름다운 모습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줍니다.

나뭇잎은 이슬을 반짝이는 보석처럼 보이게 합니다.

정신없고 시끄럽고 매연 가득한 시장통에는 각자 자신의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있습니다.

아이는 그 순수함 자체로 아름답고

사춘기 청소년들의 깔깔거림은 나의 청소년기를 떠올리며 미소 짓게 됩니다.

낙엽만 굴러가도 웃는 시기라고도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 아이들에겐 빛이 나고 아름답습니다.


"걸어 다니는 걸 뭐라고 불러? 오, 다리

돌아다니는 곳을 뭐라 그러지? 거리

대체 불이란 뭘까? 뜨겁다는 건?"


어린아이들은 질문이 많습니다.

'왜? 지옥'이라는 말이 붙을 정도로 끝이 없는 질문을 합니다.

(미취학) 아이들의 아직 자신의 삶에 의무와 책임이 없습니다.

그저 하고 싶은 거를 하며 부모의 무한한 지지아래 가감 없이 감정을 드러냅니다.

우리 인생에서 그 '존재' 자체로 존재해도 되는 환경이 되는 유일한 시기 같기도 합니다.

유치원이든 초등학교든 취학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역할을 하기 위해 교육을 받고 학습을 합니다.


저는 이 과정이 마치 풍선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람을 불기 전 풍선은 일정한 크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풍선을 처음불 때는 크게 힘들이지 않고 불 수 있습니다.

동그란 풍선의 모양이 됩니다.

하지만 더 크게 불고자 하면 있는 힘을 다해야 합니다.

초반에 모든 힘을 짜내 풍선이 한 번 더 커지면 그때부터는 좀 더 불기 수월해집니다.


아이들은 눈앞에 보이는 세상이 궁금합니다.

처음 보는 것들이 가득하고

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습니다.

내가 알고 싶은걸 직접 선택하고

행여 그것들이 위험한 것일지라도 위험한지 모르니 두려움이 없습니다.

힘이 들기는커녕 늘 즐거움의 연속입니다.


취학을 하고 배워야 하는 것들이 많아집니다.

흥미가 없는 것도 이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의무적으로 배웁니다.

더 이상 아이 쪽에서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자리'에 앉아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누군가는 여기서 배움에 대한 흥미를 잃고

누군가는 배움이란 게 눈앞에 있는 세상을 벗어나 더 넓은 세계로 가는 통로라는 걸 알게 됩니다.

그 통로로 향하는 길이 마냥 편하지는 않지만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기쁨과 희열에 힘듦이 잊힙니다.


어른이 돼서는 많은 의무와 책임감이 생깁니다.

이 사회에서 해내야 하는 역할도 주어집니다.

하나의 역할을 해내는 것도 대단한 일인데 대부분 여러 개의 역할이 생깁니다.

그 역할에 충실하다 보면

나의 '존재'가 점점 지워집니다.


학생 때는 '의무'였던 배움이

어른이 된 누군가에는 '사치'라는 말을 들을 만큼 어려운 일이 됩니다.


저는 제 풍선을 부는 것을 좋아합니다.

왜 좋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냥 좋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것 같습니다.

제가 불 수 있는 풍선의 크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한숨 한숨 불어내는 게 점점 더 쉬워지고 즐겁습니다.


"지느러미로는 멀리 못 가

다리가 없으면 춤도 못 춰."


인어공주는 다리를 가지고 싶었습니다.

바다와 육지의 경계를 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저 경계너머 육지에 있는 모든 게 궁금했던 같습니다.

포크 하나만 봐도 이토록 아름다운데 얼마나 더 많은 아름다운 것들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바다 위 배갑판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을 보며 인어공주도 춤을 추고 싶었습니다.

리듬에 손과 발을 맞출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대체 뭐가 저렇게 좋길래 인간은 다 같이 모여 춤을 추는 걸까 알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 모든 걸 알기 위해서는 다리가 필요했습니다.

다리를 가지게 되는 그 길이 비록 고통스럽고 인어공주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할지라도

그 벅차는 세계를 스쳤고,

잠시 스쳤을 뿐인데 이토록 즐거우니 그 세계에는 얼마나 멋진 일들이 가득할지 궁금합니다.


인어공주는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바다를 동경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마녀에게 다리가 아닌 물고기 꼬리를 달라고 했을 수도 있겠지요.

인어공주는 가보지 못한 세계가 궁금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누군가 인어공주의 삶에 대하여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고 '스스로를 괴롭히는 삶'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어공주에겐 끊임없이 영감을 받는 그 여정이

자신의 인생의 의미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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