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맛있는초코바 Feb 04. 2019

일본에서의 첫 연극 관람과 팬과의 첫 만남

색다름이 많았던 긴 하루

생애 첫 9일 동안의 여행.  
주목적은 일정 중간에 잡힌 덕질 관련 연극 관람이었다. 한국에서도 일본어를 배우기 이전엔 뮤지컬을 많이 봤다. 하지만 일본어로 하는 연극을 보게 되리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설레었다.

일본에는 연극이나 뮤지컬 이외에도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장소가 생각보다 많았다.  우리나라의 개그맨인 게닌이 하는 개그쇼나 일본 전통극인 가부키 쇼라던가 혼자서 하는 만담인 라쿠고까지에 드라마 ost나 애니의 ost를 테마로 여는 음악회에 최근 알게 된 성우들의 낭독극까지. 지역 시민회관이나 이벤트를 열수 있는 홀도 시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너무 부러웠다.

내가 간 곳은 시부야에 있는 시어터 분카무라라는 곳이었다. 유명 쇼핑몰이 즐비한 관광지에 자리 잡은 극장이라 어떤 모습일까 꽤 궁금했다. 이곳은 중, 소, 대극장이 한꺼번에 자리 잡고 있어서 모여드는 관객들도 상당했다. 더군다나 이 극장 앞에는 백화점! 관심 없는 사람들이라 해도 극장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보였다.

이때 당시 일본어 대화는 둘째치고 듣기도 여전히 부족했다. 간단한 질문이라고 해도 못 알아듣는 말은 무조건 "모우 이치도 오네가이시마스"(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를 입어 달고 살았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이다. 이 말도 속성으로 들었던 교재의 대화문을 통으로 외운 결과였다.

연극은 내가 응원하는 배우를 비롯해서 쟁쟁한 티브이 배우들이 나왔다. 지금이라면 아, 그분! 하면서 눈을 반짝이며 알아봤을 텐데. 오로지 응원하는 배우만을 보러 갔으니 눈에 들어 올 리 없었다.

티켓은 배우의 팬클럽에서 구할 수 있었다. 보통 일본 국내의 주소가 없는 이상 팬클럽에 가입할 수 없었다. 일본 배우를 좋아하게 되면서 늘어난 스킬 중 하나는 일본 대행을 부탁 하는 일이었다. 그전까지 해외에 뭔가를 구매하거나 그것을 대행하는 일은 생각지도 못했다.

우연찮게 일본 워킹비자 만료일 안에 생긴 배우의 공연 소식은 정말 기막힌 타이밍이었다. 배우가 연극을 한다는 생각도 못했고 그 첫 번째 관람을 이대로 놓치기 싫었기에 검색을 통해 이러저러한 수단을 물색했다.

일본은 극장 관람시간과 극장 개장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었기에 개장시간이 되기 전까진 극장 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 문 앞에 기다리는 사람들은 이미 줄을 맞춰 서 있는 상태 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긴 해도 티켓 또한 편의점에서 스스로 발권할 수 있는 시스템이 준비되어 있어서 우편으로 기다리거나 극장서 예약 확인을 할 필요가 없었다.

입장 후 입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극장은 생각보다 작아 보였다. 더군다나 구석이긴 해도 맨 앞자리! 배우를 초접근 거리서 볼 수 있다니! 덕질에 그만큼 기쁜 일도 없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이 진정될 리 없었다.

응원하는 배우를 보러 가기 전,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배우에게 팬레터를 보냈다. 그 일을 꼬박 1년을 했다. 팬레터는 번역기를 돌려서 썼다. 맞는지 틀리는지는 여전히 구분이 가질 않았지만. 팬레터에 연극 티켓 좌석이 나왔을 때도 앞자리라고 쓰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극은 상당히 진지했다. 미리 조사했던바에 의하면 이번 연극은 시리즈물의 하나로 그 후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었다. 야쿠자에 관한 이야기였다고 밖에 기억나는 게 없지만 응원하는 배우는 작은 역할이래도 중요한 역할임은 틀림없었다.

역시나 알아듣기에는 너무 말이 빨랐다. 응원하는 배우의 대사도 말 그대로 일본어일 뿐 뜻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2시간 반 동안 그 배우의 얼굴을 볼뿐이었다. 그중 배우가 혼자서 무대에 있는 씬이 딱 하나 있었는데 착각이지만 관객석을 천천히 살펴보는 듯했고 구석에 있는 나와도 눈이 마주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중간 휴식시간에 뜻하지 않은 만남도 겪었다. 일본 배우의 일본 팬과 인사를 나눴다. 일본 배우의 정보는 트위터를 통해야 했다. 계정은 만들어두긴 했으나 본격적으로 사용한 건 배우를 통해서였다. 정보를 위해서 긴 했으나 일본 팬과 교류도 필요했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팔로우를 한 결과가 이런 형태로 나타났다.

배우의 일본 팬은 한국의 가수를 좋아했다. 한국인임에도 한국의 가수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으나 일본 팬은 한국어에 관심이 있다 했다. 물론 내가 알아듣는 일본어 수준보다는 못 했지만.

공연이 끝나고 배우의 일본 팬은 내게 배우가 예전에 살던 지역에 함께 가자고 했다. 동영상으로밖에 본 적이 없는 배우의 단골 라면 가게나 빵집이 있는 동네가 공연장 근처라고 했다. 어색했지만 뭔가 말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 가수에 대해 이야길 해봤지만 내 일본어는 이상했기에 뜻이 정확히 전달되지 않았다. 굉장히 속상했다.

배우의 일본 팬과는 배우가 살던 옛 동네에서 라면을 먹고 빵을 사는 걸로 작별인사를 나눴다. 일본 팬은 좀 더 함께 있어주려 했으나 결국 내가 용기가 없어서 다음을 기약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내내 속상했다.

작가의 이전글 9일간의 두 번째 일본 여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