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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희 May 05. 2020

나의 시작, 나의 도전기

아직도 시작할 수 있을까?

나는 은퇴 후에 작은 구옥을 하나 매입해서 세를 놓아 임대업을 해서 그 수입으로 생활해왔다. 공적 연금이 충분하지 않은 나 같은 지금의 은퇴 세대들에게는,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의 생계수단이라고 생각했다. 나이 들어 근로소득이 가능하지 않은 경우의 최선책이었다. 작지만 검소하게 살면 그런대로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했다. 그러나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상권은 더욱더 빠르게 진화한다.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어제의 화려했던 상권이 오늘은 어두운 골목이 될 수도 있다.

세금은 나날이 오른다. 집값이 오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집값은 건국이래 계속 우 상향이다. 작은 땅덩어리에 많은 사람이 살아가기 때문 만이 아니라 은퇴하는 많은 사람들이 나 같은 생각으로 집을 산다. 앞으로도 계속 살 것이고 세금은 계속 오를 것이다. 기본적인 생활이 위협받게 된다.

그러자 시내의 아파트를 세를 주고 외곽의 작은 아파트를 전세 내어 살게 되었다. 이것은 일종의 ‘아비트라쥐’라고 하는 금융기법의 일종이다. 이자가 낮은 데서 자금을 빌려다 이자가 높은 곳에 빌려주어 그 이자의 차익을 얻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외곽의 전세가도 올라갔다. 이자의 차액이 줄어들면서 수입도 줄었다.

은퇴 후에도 적당하게 찰랑거리던 내 경제적 자유의 샘이 조금씩 말라갔다. 서서히, 가뭄에 시냇물이 말라 가듯. 일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이 나이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 인가를 알아내려고 많은 생각으로 시간을 보냈다. 해보고 싶은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있었지만, 그림의 떡이었다.  젊고 유능한 인재들도 구직이 어려운 세상인데. 남은 분야는 자영업. 자영업의 뜻은 영어로 self-employed business, 말 그대로 스스로를 고용하는 직업, 혼자 모든 것을 하는 사업이다. 내 맘대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물론 그만두는 것은 내 맘대로 가 아닐 가능성이 높지만.

결국 나는 세 들어 살던 우아한 아파트를 떠나 허름한 내 집 2층으로 와서 게스트하우스를 시작했다. 다니던 직장이 외국계 기업이라 외국 문화와 어학에는 다소 경쟁력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야말로 생각은 생각일 뿐. 알량한 어학실력만으로 게스트하우스를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은 나의 환상이었다.


30년 넘은 구옥이었으므로 집수리부터 시작했고 시행착오의 지난한 날들을 겪었다. 연금처럼, 매달 받는 임대료로 생활하던 내게, 적은 규모의 현금으로 시작한 집수리는 마침내 빚까지 남기고 끝났다. 돈이 모자라 공사 마무리가 제대로 안된 터라, 직접 공구를 들고 하나하나 아이 돌보듯 부족한 부분을 채우느라 분투했다.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정신도 차리기 전에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터졌다. 모든 예약은 취소되었고 들어오는 예약도, 감염이 무서워서 문을 닫고 폐업 상태가 되었다. 당장의 생활이 난감했다. 대출로 늘어난 이자부담은 덤이었다. 해서 생각해낸 것이 내가 경험한 게스트하우스 창업에 대한 지식을 다른 이들에게 공유하고 얼마간의 수입을 얻는 것이었다. 창업 한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거의 1년 반 동안 준비해온 기간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을 가 생각했다. 


요즘 유행하는 전자책을 만들어 재능 플랫폼에 올려 보기로 했다. 커다란 수입을 기대할 순 없지만 일단 ‘코비드’ 사태로 거의 대부분의 일상이 멈춰지고, 집에 머물라는 사회적 권고로 ‘집콕’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냥 한번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물론 3일 만에 만들어 올렸다는 젊은 경험자의 말을 그대로 믿은 것은 아니었지만, 삐걱거리는 머리와 허둥거리는 손으로, 만만치 않은 시간과 발 품에, 하~ 하는 후회와 자괴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그런 시간이 지나가고, 우여곡절 끝에 플랫폼에 올렸다.  


말라르메는 한탄했다
"아`아` 육체는 슬프다!
우리는 만권의 책을 읽지 못한다!"

말라르메가 살았던 19세기의 평균수명은 40세를 넘지 못했고, 20세기 초 까지도 45세에서 50세 정도였다고 한다. 이제 누군가는 만권의 책을 읽을 수 있겠지만, 예전 사람들의 전체 생애에 해당하는 시간을 한번 더 살아내야 하는 의무와 권리도 생겼다.  

얼마 전 다녀온 속초의 해변에서 강풍이 몰아치는 파도 속으로 망을 던져 고기를 잡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얼마 후 그곳을 떠나는 그의 망 안에는 해변가에서는 볼 수 없는 커다란 물고기가 두 마리나 있었다.  강한 파도에 해안으로 떠밀려온 물고기와 어부와 세상을 온통 집어삼킬 듯한 강풍과 거센 파도 앞에서, 내 안의 깊은 속에서 잊고 있었던 뜨거운 감정이 서서히 올라왔다.

그래! 나는 이렇게 살겠다.
해가 지는 텅 빈 해변에 홀로 서있는 내 삶처럼,
두렵지만 용기를 가지고,
소소하고 평범하지만 의미 있는 일들로

내 삶을 채워가며, 

읽고, 배우고, 쓰고, 일하며,
으르렁거리는 바다에 그물을 치는 어부처럼,
죽을 때까지 도전하고, 성장하며, 재미있게 살겠다.



어쩌면 아직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자, 가슴이 뛰었다
마치 어린 시절,
 무지개를 보았을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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