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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희 Aug 09. 2020

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습관의 힘


거의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난다. 잠이 없어서는 아니고 오래전부터 평생 아침형 인간으로 살아왔다. 근데 그 시간에 일어나서 뭐해?  뭐가 달라져?

오랫동안 해 온 습관이라 뭐가 달라진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미당의 표현을 빌리자면 나를 만든 것은 ‘팔 할’이 새벽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일어나면 차를 끓인다. 상큼한 라임향을 좋아해 라임 차와 커피를 준비한다. 간단한 과일과 함께, 먹으면서 명상과 기도를 하고, 책을 읽고 일기를 쓰며, 내가 좋아하는 대부분의 일을 그 시간에 한다. 가끔 끄적거리며 마칠 기약도 없는 글을 쓴다.  끈기도 없고 계획도 없이.


어렸을 때부터 혼자였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처음으로 내 동생이 태어났고, 중학교에 입학할 때 그 아이가 조등 학교에 입학했다. 처음 보는 동생이 귀엽고 예뻤지만 정신적 교류는 성인이 거의 되어서야 가능했다. 주위의 대부분의 친구들은 적으면 3 많으면 7-8명의 형제들이 복닥거리며 살던 시절이었다. 상황도 경험도 많이 달라, 공감이나 호감이 가는 친구들이 별로 없었고 여러 형제들 틈에서 자란 산만한 아이들에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왕따였으며 (자발적) 쓸쓸하고  고독한 시간을 즐겼다.  그러다 보니, 책이나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평생의 습관이 되었다.  


사춘기 때에는 그런 나에게 호기심을 보이며 좋아해 주던 아이들도 있었다. 너는 좀 특별한 것 같아~ 너는 왜 우리랑 좀 달라? ~하며 관심을 보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조금 나르시스적인 면이 있는 나는 나름 즐기면서 잘난 척을 하기도 했었지만 친구가 소중한 시절이었다. 금방 친해져서 함께 몰려다녔다. 학교 끝나고 영화를 많이 보러 다녔는데, 지금 추억의 명화 리스트에 있는 영화는 거의 섭렵하기도 했다.  영화를 보기 전이나 끝난 후에 고려당 빵집이나 태극당에 가서 버터빵이랑 단팥방 먹으면서 들떠서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하곤 했다. 또 그 친구들 중에는 음악이나 미술을 공부하는 아이들이 많아 음악회 표를 공짜로 얻어 오곤 해서 덕분에 세종문화회관을 자주 드나들면서 유명 오케스트라의 연주회를 즐기기도 했다.


남들은 머리가 터지게 공부할 때, 우리는 좋아하는 영화와 책, 음악을 마음껏 즐기며 질풍노도의 시절을 보냈었다. 집안 형편도, 성격도, 모든 것이 다르고 다들 나름 개성이 강한 쉽지 않은 성격이었는데도 어린 나이의 순수함에서 오는 단순함과 예술을 사랑하는 뜨거운 열정 하나로 우리는 마냥 즐거웠었다. 그러나 입시가 다가오자 어쩔 수 없이 우리 모두는 각자 자신의 길을 찾아 헤어졌고 다시는 만날 기회가 없었지만 그 시절의 귀한 추억과 경험이 평생의 재산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면에서 내 인생의 많은 것은 그때 결정되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마법이 풀려 집으로 돌아온 신데렐라처럼, 현실로 돌아오자, 입시는 코앞에 다가와 있었고, 공부는 준비가 안되어있고, 가난한 집의 장녀로 집안 형편상 대학을 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 처지였다.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야 했다. 대학을 못 갈 경우 취업을 하기 위해 영어공부에 전념하기로 했다. 그 당시의 유망직종으로는 미 대사관 비서직이 있었는데 고액 연봉으로 웬만한 좋은 대학을 나와도 들어가기 힘든 자리였다.  그런데 주위의 누군가가 영어와 속기만 잘하면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있다고 알려줬다. 그래서 학교가 끝나면 학원에서 영어 속기공부를 했는데 함께 배우는 사람들이 거의 현직에 있는 대사관이나 외국회사 비서들이었다. 처음에는 내 교복을 보고 용기가 장하다고 칭찬해주거나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지만, 며칠이 지나자, 아무도 내게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 질풍노도의 시절에도 공부는 등한히 하면서도 하루에 한 번 내 시간을 갖고 내 공부를 한다는 원칙을 지켜왔었는데 그 덕분에 영어는 실력을 유지할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때 내가 느낀 것은 하고 싶은 일은 하자! 대신 해야 할 일은 더 열심히 하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즐거움이 커질수록,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열정이나 집중의 밀도가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도 나는 왠만해서는 현실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결코 희생시키지 않는다. 언제나 뜻이 있는 한 길은 있으니까.


아침형 인간이 아니라도 열등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새벽 4시거나 한밤중인 1시이거나 상관없이 홀로 깨어 자신만의 오롯한 시간을 갖고 그 시간과 더불어 조금씩이라도 성장해 나가는 사람은 나이에 관계없이 그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높은 성취 욕구를 가진 세속적 탐욕의 소유자와 나태하고 게으른 허무주의자,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고 영적인 인간이 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진 3개의 인격이 1:1:1 비율로 함께 공존하고 있는 나 자신이란 사람은 일단 일은 잘 벌리지만 급속 시들해지는 변덕쟁이로, 일상에서는 다소 무능하지만 현실주의자로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 나아갈 길 보다 지나온 날이 많아지면서 남아있는 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제라도 저 질풍노도의 어린 시절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다시 돈키호테처럼 돌진하고 싶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며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참고

닿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딸 것이다.


 지금 내가 새벽에 일어나 맞이하는 오롯한 영적인 시간은 나의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이 되어 나를 성장시킬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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