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한다 - 남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젊은 시절에는 곱고 멋지게 늙은 노년들을 만나면 나도 저렇게 늙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눈여겨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때는 우리나라 사람보다 외국여행 중에 그런 멋진 노년들을 더 많이 만나거나 본 것 같다. 젊었을 때이므로 자연히 겉으로 보이는 외모가 먼저 관심을 끌게 되는 나이었으므로 상대적으로 겉모습이 세련된 서양 사람들이 많이 눈에 들어왔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나 자신도 환갑을 넘은 나이이므로, 외모도 중요하지만 품위 있고 사려 깊은 태도가 더 많이 마음에 와 닿는다. 젊었을 때 외국 출장 중에 비즈니스 석을 타면 종종 멋지게 차려입은 중년 커플들을 볼 수 있었다. 은퇴 후에 부부가 함께 여행을 즐기며 노년을 즐기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외모도 옷차림도 남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그보다는 품위 있는 태도와 너그러운 마음가짐이 더 빛났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젊은 시절을 얼마나 열심히 열정적으로 살았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철저한 자기 관리 없이 오로지 행운만으로 빛나는 노년의 아름다움을 지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젊은 시절을 치열하고 성실하게 보낸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노년의 아름다움은 비행기의 비즈니스 석을 타야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동네 시장에서도 거리에서도 지하철 안에서도 우리는 우리 노년의 마음속 멘토를 만난다. 늙어도 매력적인 노년의 아름다움은 그러나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은퇴 후에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고 오로지 즐거운 일만 하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제 노년이 되면 혼자 혹은 부부만이 사는 세상이 되었다. 한국 보건사회 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 ‘노인 단독 가구의 생활 현황과 정책과제’를 보면 노인 단독 가구(독거, 부부, 노인 가구)는 2014년 68.1%로 1994년 40.4%보다 1.7배 늘었다. 노인 단독 가구가 보편적 노년기 가구 형태가 된 데는 자녀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2011년 보건복지부의 노인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자녀의 결혼’(19.4%), ‘자녀가 따로 살기 원해서’(8.9%) 등이 노인들이 자녀와 떨어져 살게 된 주요 이유였다.
노인 단독 가구의 삶은 경제, 심리적으로 취약하다. ‘가난하고, 외롭고, 마땅히 할 일이 없는 데다 병까지 들었다.’ 노인 10명 중 7명은 자녀와 떨어져 노인들끼리만 사는 시대에서 ‘빈곤·. 질병. 고립. 무위의 4 중고가 이들을 괴롭히고 있다. 특히 배우자 없이 홀로 사는 노인들이 4 중고에 취약했다. 독거노인가구의 25.2%, 노인부부가구의 14.1%는 4 중고를 모두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4 중고 중 3가지 어려움을 겪는 경우는 독거노인가구 35.7%, 노인부부가구 27.4%였다. 독거노인 4명 가운데 1명은 4 중고를 모두 겪고 있는 위기 가구로 나타났다.
우리의 고령사회 진입은 유례없이 빨랐기 때문에 미처 준비할 시간이 없이 닥친 각 개인의 노후 문제가 우리 사회의 주요 문제가 되고 있다. 그것은 또한 우리 경제상황의 변화와도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다. 20여 년간의 지속성 장만을 계속해온 우리 경제가 단숨에 꺾이면서 잘 먹고 잘 살기만 하면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우리의 삶에 상실감이 끼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지금 사실 역사상 가장은 아닐지라도 상대적으로 부유한 삶을 영유하고 있다. 심지어 가장 가난한 사람들조차도 100년 전에 비하면 훨씬 나은 상황에 있다. 문제는 상대적 빈곤감이며 그것으로 인해 느끼는 불행함, 희망을 버리는 것, 행복에 대한 오해에서 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노년이란 잃어버리는 것들의 연습, 상실의 시대라 생각한다. 오늘 내가 할 수 있었던 일, 기억할 수 있었던 것들, 갈 수 있었던 길, 그리고 함께 할 수 있었던 사람들을 내일은 기약할 수 없다. 그것을 깨닫고 준비하는 시간이다. 아무리 부유한 사람일지라도 죽음도, 질병도 피할 수 없다. 고독도 무의도 피할 수 없다. 그것이 인간의 운명인 것이다. 항공기 일등석에 탄 멋진 커플도 그것들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멋진 이유는 그 모든 인간의 운명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 들을 최선을 다해 지금 이곳에서 행하는 데 있다.
결국 인간은 혼자다. 혼자 죽는다. 인간으로서 인간의 운명을 받아들여라! 누구에게도 무엇에도 기대지 말고 꿋꿋하게 살며,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행복을 길어 올려라!
행복한 나를 위하여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 모두의 인생은 각각 한 권의 책이다. 우리는 지난 세월 성공과 실패, 성취와 좌절, 행복과 불행, 희열과 고통, 사랑과 미움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왔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때로는 위로받고, 때로는 상처 받으며 지금의 시간에 이르렀다. 공자는 15세에 지학, 30에 입문, 40에 불혹, 50에 지천명, 60에 이순, 70에 종심이라 했다. 여기서 ‘이순‘이라 함은 ’ 귀가 순해진다 ‘ 즉 모든 것이 원만하여 무슨 일이든 들으면 곧 이해가 된다’이며 종심은 ‘긴 세월을 살며 적지 않은 수양을 쌓았을 것이니 마음 가는 데로 살아도 괞찮다’는 의미다. 이처럼 모든 나이에는 나름의 ‘도‘가 있는 것이다. 나무는 나이를 먹어도, 해마다 꽃을 피운다.
그러나 자신을 돌아보면, 나이는 60이 넘어 이순의 도를 지킬 수 있어야 마땅하나 ‘이순’은 커녕 불혹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음을 절감한다. 그래도 남은 날이 있다고 믿고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종심은 몰라도 지천명이나 이순에는 다다를 수 있지 않을 가 생각한다. 고래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장수를 최대의 복으로 삼았으니 현대를 사는 우리는 지금 진시황도 부럽지 않은 최대의 복을 누릴 수 있는 여건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마땅히 복을 복으로 받을 수 있게 노력하여 행복하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고 싶다.
문제는 우리가 과도하게 젊음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늙어가는 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한 나머지, 걱정과 시름에 빠져 나이가 주는 즐거움, 깨달음을 소홀히 하고,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아름다움조차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기대수명이 길어진 만큼 우리가 오랫동안 가져왔던 나이에 대한 인식은 바뀐 반면 – 쉰 살이나 예순 살이 늙은 나이라고 생각하는 대신 아직도 젊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도 – 심리적으로는 숫자의 무게에 눌려 미래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기대 수명의 연장으로, 여든이나 아흔에도 자신감 있고 멋진 삶을 살게 되었지만 그것이 주로 신체적 건강이나 외적인 아름다움의 추구에 주로 집중되어 있는 듯하다. ‘안티-에이징’이 최대의 화두가 되고 있고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인위적인 여러 시술로 늙음을 멈추게 하거나 지금도 유행하고 있는 ‘동안’ 열풍이 그 좋은 예이다. 그런 것 들은 전연 개인의 선택의 문제로서, 그것이 정신적 위로나 그 밖의 어떤 도움이 된다면 결코 반대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우리 시대에 허용된 문명의 이기를 즐기고, 활용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나 그런 것들이 일시적으로 도움이 된다 하더라도 정신적으로 충족감을 느낄 수 없다면 우리 앞에 남아있는 생이 축복이 되기에는 다소 부족하게 느껴질 것이다. 오히려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삶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몸을 맡길 때 비로소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싶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자신에게 감사하고 때로는 자신의 결점조차도 사랑하라. 완벽한 인간은 없다. 완벽한 인생은 더더욱 없다. 무엇보다 자신을 비하해서는 안 된다. 어떠한 불운과 실패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스스로를 따뜻하게 격려하고 위로하라. 역사적으로 유명한 야구선수 베이브 루스도 718번의 홈런을 치는 동안, 1330번의 삼진 아웃을 당했다. 내 주위의 누군가는 ‘눈물 총량의 법칙’이 있다고 울고 있던 나를 위로한 적이 있다. ‘모든 사람이 일생 동안 흘리는 눈물의 총량의 합은 같다 ‘.
자신이 자신을 사랑할 수 없다면 다른 사람도 사랑하기 어렵다. 다른 사람의 비방이나 평가를 참고는 하되, 그것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신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허세를 부리거나, 주위의 칭찬을 구걸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장점으로 자신을 평가하라, 자신의 실패나 단점에 집중하지 말고, 자신이 가진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활용하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할 수 없는 일은 체념하라. 그 두 가지를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이제 우리는 지니고 있다.
그리하여 이제 꿋꿋하게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겠다고 생각하자. 가끔은 괴로울 때도 있을 것이고, 공격을 받을 때도 있을 것이며, 마음의 평온을 잃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로 내가 약해지지는 않을 것임을 나는 믿는다. 장기적 계획을 세우고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용기를 내자. 좀 더 다채로운 삶을 스스로에게 허락하자.
법정스님이 생전에 연꽃 그림에 畵題로 써놓았던 ‘숫타니파타’의 한 구절이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