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
인권은 자율적인 인격을 가정하여 실행됩니다. 18세기 여성, 아동, 정신병자, 하인은 자율성이 없는 사람으로 간주되었고 따라서 권리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1776년에 선언된 미국 독립 선언문 2장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 즉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창조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
하지만 이 독립 선언문의 기초자였던 토머스 제퍼슨이 당시 노예 소유주였다는 사실은 당시 인권을 소중히 여긴 사람들 조차 그다지 보편적으로 사고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권리의 평등이 자명한 진리가 되었을까요?
사람들은 자신의 선호를 뒷받침해주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자신의 의견에 반박하는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확증편향'이라고 말하죠. "자기주장을 할 때는 자신이 옳다는 태도로, 남의 의견을 경청할 때는 자신이 틀리다는 태도로 임하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의 의견을 경청하지 않고 자기주장만 고집하는 순간 우리는 '꼰대'가 되어버립니다. 이 확증편향을 줄여주는 방법으로 'Devil's Advocate(악마의 변호인)'이 있습니다. 악마의 변호인은 일부러 상대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고 반대함으로써 상대방이 균형잡힌 시각을 갖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지칭합니다. <인권의 발명>의 저자 '린 헌트'는 18세기에 등장한 서한소설이 악마의 변호인 역할을 해냄으로써 인권이 자명한 진리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인권은 자기 자신을 소유하고, 모든 타자가 평등하게 자기를 소유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모든 타자가 평등하게 자기를 소유한다는 인식에 대한 요구는 '공감'이라는 감정에 호소할 수 밖에 없습니다. '린 헌트'는 이 역할을 18세기 서한소설이 했다고 말합니다. 서신교환의 형식으로 서사를 펼쳐나가는 서한소설은 독자들이 '하인', '여성' 등 당시 사회적 약자들에 공감함으로써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게 만들었습니다. 서한소설이라는 새로운 독서는 새로운 개인적 경험(공감)을 창출했고 그것은 새로운 관념을 낳았습니다. 이 관념이 바로 모든 사람의 내면적 감정이 근본적으로 같다라는 생각, 즉 인권의 출발이 되었습니다.
결국 소설, 영화들은 독자로 하여금 타인을 더 많이 동정하게 하고 그럼으로써 더 높은 도덕성을 고취하게 만듭니다. 이런 점에서 영화<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는 소설과 영화가 어떻게 악마의 변호인 역할을 하는지 잘 보여줍니다.
10대 소년 마이클은 30대 한나를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그러던 어느날 한나는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8년 뒤 법대생의 신분이었던 마이클은 법정에서 한나를 만나게 됩니다. 제2차 세계대전때 감시인으로서 일했던 한나는 교회에서 사람들이 타죽는 것을 방관했다는 죄로 기소됩니다. 한나는 재판중에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아니,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신은 감시원이라는 역할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이 역할을 충실히 실행해야 했다고 말하면서 판사에게 "판사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 거에요?"라고 반문하기도 합니다.
한나와 함께 일했던 감시원들은 한나를 총책임자로 몰아갑니다. 법정은 필체대조를 통해 감시원들의 주장이 사실인지 검증하려고 합니다. 글을 읽지도 쓰지도 한나는 자신이 문맹인임을 숨기고 싶어 결국 자신이 총책임자였다고 말하고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맙니다.
한나는 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인입니다. 때문에 마이클과 연애할 때 한나는 마이클에게 매일 희극과 소설들을 읽어달라고 합니다. 변호사가 된 마이클은 책을 낭독하여 녹음한 뒤 음성테이프를 수감생활 중인 한나에게 주기적으로 보냅니다. 이 테이프를 바탕으로 한나는 글을 공부하고 교도소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기도 합니다. 세월이 흘러 늙고 초라해진 한나는 가석방이 되고 마이클은 한나를 마중나갑니다. 연인으로서 어릴적 자신을 떠난 것에 대한 배신감과 변호인으로서 문맹인인 한나를 변호하지 못한 죄책감, 그리고 자신의 죄를 모르는 한나에 대한 원망에 휩싸인 마이클은 한나를 쌀쌀맞게 대합니다. 한나의 출소일, 꽃다발과 함께 한나를 마중하러 간 마이클은 한나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한나는 책상 위에 책을 쌓아두고 그 위에서 목을 매달아 죽었습니다.
안타깝게도 한나에게 배움의 끝은 과거 자신의 행위에 대한 잘못의 깨달음이었습니다. 소설을 통해 타인에 대한 공감을 경험한 한나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겠죠. 그리고 한나는 자신이 수감생활을 하면서 모은 돈을 자신이 감시원으로 일했던 수용소의 생존자에게 전해달라고 유언을 남깁니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저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유대인 학살에 동조한 사람들을 비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라면 내면의 가치체계가 있어야 하고 그저 명령만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도덕적인 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영화 속 한나는 너무나 순수했습니다. 한나에게 무슨 죄가 있을까요? 무지의 죄? 한나와 수용소 수감자들을 죽인 건 사회의 무관심이 아닐까요. 적절한 교육을 받지도 못할 정도로 주변부로 밀려난 사람들이 저지르는 '무지의 죄'에 대한 책임은 사회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나와 마이클의 첫 만남은 열병으로 힘들어하던 마이클을 도와주는 한나의 타인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합니다. 한나는 누구보다 순수하고 착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