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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도 사람이다 Nov 10. 2024

가을아 가지 마, 겨울아 얼른 와.

나만 보기 아까운 거미줄 낙엽 가랜드

탁, 탁, 탁,

아들 녀석의 등산 스틱 활용은 이미 값을 해냈다.

짚어가며 오르고 낙엽과 등산 스틱 합작으로 늦가을에, 낙엽 썰매를 탄다.

바스락 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한참을 걷는 중에 가볍게만 생각했던 낙엽 하나가 머리 위로 툭, 떨어지며 제법 무게감이 느껴졌다.

곧이어 바람이 불고 낙엽은 후드득 떨어지며 흩어진다.

커다란 거미줄 사이로 낙엽이 달라붙으며 자연이 만드는  가랜드가 완성됐다.

가을이지만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가을이 가는 건 서운하고, 겨울이 빨리 왔으면 좋겠는 감정, 이 시간이 오늘만큼은 더디게 흘러갔으면 좋겠다.

삐딱하게 서서 버티는 나무들과 곧게 뻗은 나무들 사이로 사람들의 발걸음이 제각각 다르다.

쉬엄쉬엄 가는 사람들과 재빠르게 지나쳐 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성격이 보이는 것도 같다.

도착지를 알고 가지만 어딘지 모르게 끝이 없을 것 같은 꼬불꼬불한 길과 평탄한 길, 좁은 길과 넓은 길,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걸으며 힘들어도 급할 것 없는 마음, 주말이니까 가능할지 모르는 여유를 가져본다.

뛰어서도 안되고 굴러갈 수도 없는 산의 매력을 느끼며 그저 내 속도대로 숨 고르기 하고 천천히 걷는 것만이 답이다.

인생처럼, 결국 답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자신을 더 들여다 보라는 신호를 이렇게나마 감지한다.






내려와서 흙먼지를 털어내는 과정, 화장실로 들어갔다가 나오는 순간의 개운함까지 느껴져야 등산 좀 했다고 생각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신나게 이동한다. 

거친 숨소리와 힘들게 올랐던 발걸음과는 달리 내려온 이후부터는 순간이동한 듯 맛집에 앉아있다.

오늘은 누룽지 삼계탕으로 입까지 충족을 시켜주고 부른 배를 탁, 탁, 탁 두드려주니 뿌듯함에 만족감을 더한다.

며칠 전 추위는 온데간데없이, 따듯한 가을을 느끼며 주차장까지 도보로 걷는 순간, 적당한 광합성이 주는 비타민 선물까지 누리고 걸으니 소소하지만 감사한 마음에 시간이 멈춰주길 바라는 욕심까지 생긴다.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정상에 올라 감동을 누리게 될 테고, 겸손하면 내려온 평지에서도 흔들림 없이 평온함을 누릴 것이다.

어쩌면 아주 쉽지만 가장 어려운 숙제고 불투명한 운명이자 현실이다.

추위라는 현실에 맞서 싸우고 싶지 않으니 "가을아 가지 말자!" 싶다가도 겨울이 가져다주는 하얀 설렘을 좋아하는 나는 "견뎌낼 준비가 되어있다!"라고 속으로 당당하게 외쳐보기도 한다.

하지만 곧바로 떠오른 겸손이란 단어가 당당함과는 별개의 강한 힘이라는 생각이 들어 잠시 움츠려든 몸이다.

정신 차리고 자세를 펴, 마음가짐이라도 단단하게 잡아보려는 나, 좋아하는 겨울이지만 가을에게 슬쩍 의지하려는 , 모두 나다.

지나가는 순간과 다가오려는 순간이 아닌 나 자신을 알아차리는 것, 무조건 좋은 게 아닌, 내가  좋아하는 걸 찾으며 살아야겠다.

등산을 하고 맛집도 찾고, 날씨까지 따라주면 금상첨화인 게 나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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