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도 사람이다 Dec 02. 2024

일방통행

한 번은 더 생각하고 행동하기

어김없이 아들 녀석 학교에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늘 익숙한 곳으로 다니기에 일방통행 길은 훤히 꿰뚫고 있는 나다.

일방통행 입구로 들어서는 찰나 역주행을 하고 있는 차량을 발견했다.

비상 깜빡이도 안 켜고 빠르게 나오는 차량, 뒤로 빠지기엔 도로라 나도 위험한 상황이 될 수 있었다.

사실, 일방통행이라 내가 양보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역지사지, 나에게도 이런 경우가 생긴다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단지 이 생각으로 백미러를 확인해 가며 조심히 뒤로 빠져주니 상대 운전자도 그제야 비상 깜빡이를 켰다.

갑자기 뒤에 차량이 붙으면서 빵빵대는 뒷 차량, 가운데 껴서 난감하지만 일단은 뒷 차량이 양보해 주며 뒤로 빠졌고, 그 틈을 타 역주행하던 차량이 빠져나갈 수 있었다.

앞 차량은 창문을 열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이 길로는 못 간다고 손동작으로 엑스를 만들어 보여준다.






내가 아무리 베스트 드라이버라 할지라도, 내 차가 아무리 이리저리 많이 긁고 박아댄 범퍼카라고 할지라도, 나는 안전 운전자다.

손동작으로 못 간다는 행동을 보고도 일방통행 길로 갈 이유가 나에겐 없다.

그러나 돌아서 가기엔 후진을 더 해야 하는 상황이다.

조심히 차를 뒤로 빼니 뒷 차가 빵빵거린다.

알지, 뒷 차도 위험하지, 그러나 나도 살아야지.

창문을 열어 이 길로는 못 간다고 나 역시도 손동작으로 엑스를 취했다.

그랬더니 창문을 열고 화가 잔뜩 난 얼굴을 하며 고개를 내밀던 여자, "저기요~! 여기는 일방통행이에요!!!!"

소리를 고래고래, 아침부터 샤우팅을 세게 하신다.

좋은 일 하려다 이게 무슨 날벼락인고, 화가 잔뜩 난 뒷 차량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무슨 수로 못 간다는 일방통행 길로 비집고 들어가나, 나 역시도 할 말은 해야 했다.

"알아요~ 이 길로는 못 간대요~!^^"

아주 정중하게, 공손하게 예의를 갖춰 할 말을 하니 화가 잔뜩 난 얼굴은 그대로지만 양보는 해주는 뒷 차량이다.






겨우 차를 돌려서 집 방향으로 움직였다.

어라? 뒷 차량도 어느새 내 뒤로 쫓아오고 있다.

그래, 너도 별 수 있겠니?

이유불문 앞 차량이 역주행을 할 정도면 이유는 있겠지.

그렇게 앞 차량도, 내 차량도, 뒷 차량도 모두 같은 방향으로 향했고, 결국 셋 다 같은 아파트다.

굳이 엮일 이유도 필요도 없었기에 주차만 하고 바로 쏜살같이 올라왔다.

집에 도착하고서야 궁금했다.

왜 일방통행 길인데 못 가지?

왜 못 간다는 일종의 경고 표지판도 없지?

일방통행 길 바로 옆은 대단지 아파트다.

"지아 엄마~~ 혹시 집에 있어요? 그 앞에 일방통행 길 있잖아요~ 지금 공사라도 하나요?"

다행히 주방 창가로 일방통행 길이 보인다고 했던 친구가 떠올라 전화를 해봤다.

"그럴 리가요~ 잠시만요, 아~ 지금 앞에 빌라 이삿짐 빼네요~~ 이사 차량이 서 있어요~~"

"그 옆길로 차들은 다녀요?"

"와, 힘들겠는데요? 저라면 못 해요~"

그랬다. 앞 차량도 안전 운전자였다.






다 내 마음 같지 않다.

이왕이면 뒤로 차를 물러 한 차례 양보했으면, 나도 좀 곱게 양보해 주지.

아침부터 화가 잔뜩 난 뒷 차량을 봤더니 너무나 생생한 그 얼굴이 잊히질 않는다.

만약 내가 역주행한 차량을 가로막고 비켜주지 않았다면, 앞 차량과도 불필요한 감정싸움이나 했을 수 있다.

가운데 껴가지고 이래나 저래나 좋은 일 하려다 욕먹은 기분이다.

물론 뒷 차량도 굳이 일방통행 길을 비켜설 이유도 없긴 하다.

다만, 말이라도 좀 곱게, 표정은 그게 최선이었나? 아쉽다.

역주행하던 차량이 내가 된다면 그것 또한 아찔하다.

누가 됐던, 언제 어디서 어떤 경험을 하게 됐던 한 번쯤은 물러서서 생각하고 행동을 취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괜한 찜찜한 기분이었는데 아파트 친구가 아침부터 김장 김치를 들고 왔다.

역시, 정 하나로, 나눔 하나로 이렇게 또 기분이 금세 풀리는 나다.

잘 먹겠다며 나도 빈 손으로 돌려보낼 순 없었기에 장거리 운전자 친구에게 간식거리와 음료를 건네고 기분 좋게 보냈다.

비록 첫 시작은 사람으로 찜찜했지만 뒤이어 정을 나누는 친구가 있어 기분이 풀린다.

사람, 관계는 역시 일방통행이 아닌 쌍방통행이 훨씬 수월한 인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