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도 사람이다 Dec 29. 2024

손톱깎기 도전은 성공했지만

서운하다 아들아..

화장실이 두 개다 보니 늘 나는 나대로 씻고 신랑은 아들과 함께 씻는다.

씻고 나와보니 어느새 씻고 나온 아들 녀석이 머리에 물기도 제대로 닦지 않고 고개를 푹 숙여 꼼지락 거린다.

가뜩이나 비염을 달고 사는 아들 녀석이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숨소리가 심상치 않다.

딱, 딱, 끊어지는 익숙한 소리도 신기하게 들리는 것이, 한편으로는 대견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이다.

지난주에 이어 다시 도전해 보는 8살 아들 녀석의 호기심 천국, 바로 손톱깎기다.

점점 스스로 하려는 게 많아질수록 성장하는 모습에 감탄도 해보고 그야말로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모습이지만, 괜스레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걸로 보아 나는 아직 아이가 크고 있음을 부정하고 싶은, 그저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상태로 머물고 있는 느낌에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아직은 스스로 하기엔 위험하지 않을까?"

신랑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는 하지만 스스로 해보겠다고 해서 지난주에 처음 맡겨봤고, 결론은 대견하지만 아직은 혼자 하기엔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들 녀석이 더 이상 시도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방심이고 착각이었다.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은 오늘, 다시 도전해 보려는 모습에 기특해서 응원하지만 조마조마한 엄마 아빠의 의심 어린 눈빛을 경이로운 순간으로 바꾸는 마법을 해내는 녀석이다.

작디작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움직이더니 제법 꼼꼼하게, 바짝 깎아냈다.

엄마의 도움이 전혀 필요가 없을 만큼 완벽하게 잘라낸 손톱을 바라봤을 뿐인데 심장이 두근두근 요동친다.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며 자세를 바꿔 깎아내는 모습을 보았을 땐 아슬아슬해 보이고 도움이 필요해 보였지만, 도움을 거절하는 아들 녀석을 믿고 끝까지 지켜봤더니 결과적으로 바짝 깎아낸 것 빼고는 예상했던 것보다 정말 잘 깎았다.

"아들~ 엄마가 다듬어 줄 필요가 없는데?^^ 제법이야~ 위험한데 용기 내서 잘 깎았네~ 잘했어~^^"

배시시 웃는 아들 녀석, 손톱깎기 성공했다며 좋아하더니 아빠에게도 두 손을 내밀어 확인시킨다.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신랑도 나도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음을 인지하는 순간이다.




어쩌면 아주 당연한 성장, 자연스러운 흐름이겠지만 엄마인 나에겐 굉장히 서운한 일이다.

엄마한테 의지하지 않고 하나라도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생긴다면, 그만큼 성장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번거로운 일에서 하나씩 하나씩 해방되는 느낌이라고 생각했던 순간이 후회되는 오늘이다.

지난주엔 손톱 하나하나 다듬어주며 아직은 멀었다고 생각했는데, 일주일 만에 어떻게 이렇게 잘 깎아냈을까.

다시 생각해도 기특하고 대견한 마음이지만, 아무래도 서운한 마음이 더 앞선다.

엄마의 마음도 같이 성장하면 좋겠는데, 부쩍 크는 아들을 보고 느낄 때마다 설명하기 힘든 묘한 마음의 변화가 받아들이라고 요동친다.

겨우 한 순간인데, 앞으로도 쭉쭉 클 일만 남은 아들인데, 벌써부터 서운한 마음을 숨길 수 없는 나 자신이 왜 거꾸로 작아지고 어려지는지 모르겠다.




비록 받쳐내어 깎으라며 깔아준 휴지 위는 깨끗하지만, 어딘가 사방팔방 튀어 날아간 손톱이라도 치워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끝까지 응원하고 칭찬한다.

엄마의 서운한 마음은 모를 테지만 아들 녀석이 이렇게 성장하고 있음을 알려주니 스스로 뿌듯한가 보다.

손톱을 보고 또 보고 웃으면서 만족스러워하는 모습이다.

사랑스러운 녀석, 아직 내 눈엔 솜털 가득한 아가아가한 얼굴인데 형아의 길로 들어서는구나.

"이 자식이~ 좀 컸는데~^^"

장난을 시도하며 옆구리를 쿡 찌르니 함박웃음으로 작은 두 팔을 뻗어 엄마를 감싸 안아준다.

이쁜 녀석, 엄마는 많이 커야겠지만 아들 녀석은 좀 천천히 커주길 바라는 이기적인 생각을 해본다.

"고생했어 아들~ 다음 주엔 힘들면 엄마가 깎아줄게^^"

"아니에요~! 힘들어도 제가 할래요~!^^"

웃으며 "네~^^"라는 대답이 듣고 싶었으나 확인 사살이라도 해주 듯 끝까지 자기가 하겠단다.

그냥 좀.. 서운하고 서운하고 또 서운하다.

쳇.

그래, 아들 네가 다 해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