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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도 사람이다 Dec 30. 2024

영화관에서 김치볶음밥

아들은 흘리지 않았다.

CGV 영화관을 찾았다.

라이온킹을 보기로 했지만 막상 영화관에 도착하니 짱구는 못 말려가 그렇게 보고 싶다는 아들 녀석이다.

계속 아쉬워하는 아들인데 어쩌나.

결국 또 아들 녀석이 원하는 짱구는 못 말려 극장판을 보기로 예매한다.

사실 같은 돈이면 라이온킹을 봐야 한다고 아들 녀석과 입씨름을 하던 신랑이 끝내 엄마마저 아들 편을 들었으니, 나름 삐쳐있던 아빠를 향한 아들의 눈빛이 소심해지는 순간이다.

영화와 함께 동반하는 팝콘과 콜라를 어째서, 웬일로 안 먹겠다고 한다.

원래 보려던 영화를 바꾸고 나니 그제야 아빠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다.






"아들~ 팝콘 먹어도 돼~^^"

엄마의 말이 들리지만 아무 말 안 하고 계속 삐친 척하는 아빠의 눈치를 살피며 시무룩해진 아들, 팝콘은 포기하되 콜라는 포기할 수 없다는 듯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콜라만 마시겠단다.

라이온킹을 보는 줄 알고 큰 영화관을 찾았던 신랑, 평소랑 다르게 처음 찾은 영화관이어서 그런지 매점도 다르다.

키오스크로 메뉴를 둘러보는 중에 김치볶음밥을 발견한 아들, 시력도 좋다.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 중에 하나가 김치볶음밥이다.

기어들어갔던 목소리가 흥분하며 커진다.

"엄마!! 김치볶음밥~!! 영화관에서 밥 먹어도 되는 거였어요?!"

피식, 웃음이 터진 아빠를 보고 아들 녀석이 멋쩍게 웃으며 안긴다.






사실 나도 신랑도 처음 알았다.

언젠가 영화관에서 맥주가 가능했던 것도 놀랄 노자였는데 언제부터 밥이 가능했을까?

"이래서 여기저기 다녀야 해. 나도 몰랐네~"

신랑의 말을 듣고 보니 매번 가던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환경을 바꿔보는 것도 나름 나쁘지 않다는 것을 새삼 또 느껴보는 순간이다.

영화관에 들어서자마자 김치볶음밥을 달라는 마음 급한 아들 녀석으로 인해 정신이 없다.

아직까지 옷에 양보하듯 여기저기 흘리고 먹는 아들인 걸 알기에 김치볶음밥을 건네며 휴지를 들고 대기하고 있었다.

웬걸, 영화 시작하기 전에 먹겠다고 서두르면서도 어째 밥  한 톨 흘리지 않는다.

기가 막혀.

한 톨도 흘리지 않겠다고 다짐한 본능의 순간일까, 아니면 하룻밤 사이에 성장한 모습일.






"올~ 안 흘리네? 잘하고 있구먼~?^^"

어쨌든 칭찬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날려보는 멘트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깜깜해진 영화관, 영화가 시작되고 어수선한 틈을 타 슬쩍 엿보니 보겠다던 짱구는 안 보고 김치볶음밥을 뚫어져라 보는 녀석이다.

"아들, 짱구 봐야지?"

장난스럽게 던진 말에 김치볶음밥부터 먹어야 한다고 말 시키지 말란다.

먹으면서 보라는 말도 안 들리는 녀석, 따듯할 때 먹어야 한다고 집중한다.

엄마 아빠만 동심으로 돌아가 웃으며 보는 짱구는 못 말려.

아들이 못 말린다.

아들 녀석은 여전히도 고개를 푹 숙여가며 김치볶음밥을 없애고, 야무지게 먹은 트레이 위로  한 톨 흘리지 않았음에 감동한 엄마다.

아들 녀석의 대단한 집념으로 봐야 할까?

김치볶음밥을 따듯할 때, 배부르게 먹고는 콜라로 입을 헹구며 본격적으로 영화를 관람한다.






순식간에 내용에 빠져들며 건강한 웃음을 빵빵 터트려주는 아들 녀석을 보는 것도 바로 옆에서 직관할 수 있는 나름의 기회이자 포인트다.

아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느라 여기저기서 폭소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뒤늦게 알아차린 나는 다시 스크린으로 시선을 옮긴다.

아빠의 라이온킹은 다음을 기약하고 짱구는 못 말려를 안 봤으면 어쩔 뻔했는지, 집으로 돌아와 아들에게 건네보는 사탕이 때마침 짱구다.

학원에서 받아온 사탕들, 전부 냉장고에 넣어두지만 사라지진 않는다.

기억을 더듬어 냉장고를 열어보니 짱구가 보이기에 건네 보았다.

물론 사탕보다 초콜릿을 더 좋아하는 아들인지라 사탕은 눈으로 실컷 즐기고, 맛을 보자마자 쓰레기통으로 향했지만 이것 또한 뜻하지 않게 얻어걸린 센스이기에 웃어본다.

아들은 오늘 영화관에서의 김치볶음밥도 행복했던 순간의 일부로 기억되기를, 그리고 언젠가는 그때 그 추억을 이야기할 수 있는 날로 기억되기를 기대한다.

"엄마는 네가 지난 8살 연말, 영화관에서 맛본 김치볶음밥을 단 한 톨도 흘리지 않고 먹었음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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