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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도 사람이다 Jan 03. 2025

엄마 그거 알아요? 의 시작

아직 오전

방학인데 더 일찍 일어나는 아들 녀석, 오늘은 새벽 5시부터 엄마 아빠의 몸뚱이를 타고 넘고, 타고 넘고 알람 덩어리가 되었다.

"엄마 혹시 그거 알아요?"

"쉿! 새벽이야. 더 자야 해~"

"한 번만요~!"

"뭘~?"

"엄마는 웃을 때 예쁜데! 아빠는 웃을 때 웃겨요!"

아들 녀석의 뜬금없는 말로 엄마도 아빠도 웃음이 터진 채 잠에서 깨어났다.

아빠의 어이없는 웃음소리에 아들 녀석은 재밌다고 웃는다.

역시 아직까지는 아들에게 엄마가 더 최고다.

아빠는 황당해 하지만 엄마는 좋은 아침이다.






너무 일찍 일어난 탓에 오전길겠다.

아빠의 출근길을 배웅하고 아들 녀석과 동네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10분쯤 걸었더니 무인 카페를 발견한 녀석이 쏠랑 들어간다.

"좀 더 걷자~!"

"추워요!"

"저기 앞에 카페도 있잖아~"

"여기 커피가 더 싸요!"

"아들이 사줄 거야~?^^"

"네!"

오백 원짜리 커피 한 잔 용돈 카드로 사주더니 오천 원 달란다.

사기꾼 녀석이다.






본격적인 수다가 시작되고 아들의 머리가 어중간하게 길러진 시점이라 자를 건지 물어보니 더 길러본단다.

사실 여태 머리는 내가 다 잘라줬기에 오늘 잘라주려고 했으나 이번엔 꼭 기르겠다길래 예쁘장한 녀석의 얼굴을 상상하며 알겠다고 했다.
"겨울 방학 끝나기 전에 머리 길러서 예쁘게 파마 한 번 하자^^"

"좋아요~^^"

파마 사진을 검색하며 멋쟁이 스타일을 보여주니 벌써 신나 하는 녀석이다.

곧이어 장난기 발동한 엄마가 뽀글이 파마 사진을 보여주니 컸다고 정색도 할 줄 안다.

직접 헤어 스타일을 골라보는 녀석, 역시 많이 컸다.






이 동네 김밥 맛집이 있다.

산책하다가 오픈 시간 맞춰서 김밥 먹기로 했던 거라 카페에서의 수다는 마치고 김밥집을 찾아갔다.

첫 손님으로 등장한 우리는 김밥에 라면을 주문하고 앉았다.

같은 라면이라도 이 집 라면이 더 맛있다는 아들 녀석이니 못 이기는 척 주문한다.

호로록호로록 면치기도 가능해진 아들 녀석, 좋아하는 면을 먹을 때는 젓가락질도 잘한다.

좋아하는 배추김치를 찢어 김밥 위에 올려놓으면 라면을 먹다가도 하나씩 집어 입에 한가득 넣는다.

"엄마! 여기 김밥도 맛있어요!^^"

조용한 순간에 듣기 좋은 말은 사장님도 웃게 만든다.

나 역시도 아들 녀석의 예쁜 말에 흐뭇하다.

고맙다며 많이 먹으라는 말씀을 주시니 아들 녀석이 몇 마디 더한다.

"참 맛있는데 왜 엄마가 만든 김밥은 밥이 딱딱해요?"

평소 나름 요리 잘한다고 칭찬받아온 내가 사장님 앞에서 밥도 못 짓는 똥손, 요리 못 하는 엄마가 되었다.

굴욕에 치욕을 느끼는 순간이다.

사장님을 등지고 앉아서 다행이다.

아들 녀석을 보던 흐뭇한 미소는 정색이 되고 레이저를 쏘며 콧평수가 또 넓어진다.

아들 덕분에 웃는다는 사장님이지만 엄마인 나는 울고 싶다.






김밥집을 나서며 집으로 향하다가 배도 부르니 산을 타자고 제안하는 엄마의 말은 안 듣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졌다.

"뿌쒸 뿌쒸~! 푸옥~~~ 퍼엉!"

갑자기 분위기가 전쟁터다.

이젠 자동 반사가 되어 아들의 적이 된다.

"수류탄 발사 피요옹~! 푸어어어어억 팍팍빡팝~!!!!"

아들 녀석의 작은 몸뚱이가 달려든다.

아무리 작아도 이젠 무시무시한 무기다.

갈비뼈 부러질까 봐 잔뜩 긴장하는 엄마는 웅크리며 어깨로, 방댕이로 방어한다.

뭐 했다고 숨이 찬다.

방금 먹고 나온 김밥과 라면이 소화가 된다.

아니, 이젠 토할 것 같다.

얼른 분위기를 바꿔야 살 수 있다.

"아들~ 이제 집에 가서 뭐 할까~?^^"

"탱크 놀이요!!!"

적당히 무시하며 시선을 편의점으로 돌린다.

"팝콘이랑 치토스 사자!"

"좋아요! 영화 보면 되겠다^^"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었다.

난 이제 잠깐의 쉬는 시간을 번 셈이다.

하지만.. 정말 무서운 건 아직 오전이라는 것이다.

길다. 오전이 너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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