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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Dec 15. 2020

하우스 푸어 vs 패닉바잉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최고 뷰를 자랑하는 00동 00 아파트 40평대 귀한 매물!'


갑자기 카톡에 집 홍보하는 장문의 문자가 왔다. 얼핏 보고 스팸 문자인 줄 알았는데 뒤이어 그녀의 질문이 올라왔다.


"나 드디어 집 팔려고! 네이버 부동산에 올리려는데 이렇게 쓰면 될까?"


한 달 전부터 집을 팔겠다고 벼르던 그녀가 결심을 한 모양이다. 아이 친구 엄마로 만났지만, '서울에서 지방에 내려온 동갑내기'란 공통점 덕에 우린 꽤 오래 알고 지내왔다. 아이를 통해 맺은 인연은 이사나 전학, 기타 이유로 대개는 흐지부지되는데 그녀랑은 긴 시간 인연이 이어졌다. 사실 성격이나 취향, 가치관 등은 별로 통하는 게 없다. 자주 만나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통화할 때도 나는 거의 듣는 편이다. 하지만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그녀의 수다를 듣는 게 어쩐지 싫지 않았다. 동향 사람의 힘이랄까? 살던 동네도 비슷해서 그녀가 언급하는 장소나 지명, 주변 사람들 이야기는 왠지 익숙했고 내용과 별 상관없이 아련한 옛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번에도 남편이 갑자기 서울로 발령을 받아서 얼마나 정신없이 이사 준비를 하는지, 아이들 전학을 시키는 과정은 또 얼마나 복잡한지 구구절절이 하소연을 했다. 집을 팔아본 적이 없어서 문구 하나 쓰는 데도 힘들다며 이상하냐고 물어봤다.


"어, 당연히 이상하지. 웃겨 죽겠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가 뭐야? 나 빵 터졌어."

"이상해? 그럼 잘 좀 고쳐줘. 그리고 집 잘 팔려면 어떻게 해야 해? 난 사실 팔고 싶지 않은데 남편은 집 두 채 있으면 세금 문제로 골치 아프다고 난리라서. 하필이면 갖고 있는 집 두 채가 다 조정지역이라서 세금 문제가 복잡해."

"그래도 당신 대단하네. 선견지명이 있었나 봐. 15년 뒤 신랑이 서울로 갈 걸 어찌 알고 서울에 집을 사놨어? 그것도 강남에?"



사실이었다. 15년도 더 전에 그녀도 나처럼 전세살이였다. 난 2년마다 옮겨 다니는 게 힘들어서 대출을 받아 지방에 집을 샀고, 그녀는 지방보다는 서울에 집을 사야 한다며 가진 돈을 탈탈 털어 전세를 끼고 강남에 위치한 아파트를 샀다. 그때만 해도 강남이 지금처럼 비싸지는 않았고 그녀가 구입한 비인기 아파트는 전세가와 매매가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 생각보다 큰돈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집 구입 자금의 대부분이 전세금인 상황에서 그녀는 행여 세입자가 나간다고 할까 봐 마음을 졸였고 세입자 눈치 보느라 오래된 아파트를 수시로 손 봐줬다. 본인은 지방에서 전세를 살며 버텼는데 해마다 전세금이 몇 천씩 올라가니 견디지 못하고 세입자의 전세금을 보태 실거주할 자기 집을 샀다.


무모해 보였을 뿐 아니라 자칫 역전세난이 오면 세입자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이런 결정을 치밀한 계획 하에 실행한 것도 아니었다. 그 당시에 왜 그렇게까지 무리해서 강남에 집을 사냐고 물었을 때 그녀의 대답은 간단했다.


"내 친구들도 다 강남에 살고, 나도 강남에서 나고 자랐잖아. 친정도 강남이었고. 그러니까 강남에 집 한 채는 있어야지."

"그래? 나도 강남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그런 생각은 별로 못 했는데 신기하다."

"너희 친정이나, 우리 친정이나 강남에서 이사 안 나가고 그대로 있었어야 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다시 진입해야지."


사진출처 unsplash


강남에 별다른 미련이 없던 나와 달리 그녀는 꽤나 강남 찬양론자였고, 그런 바람 때문에 수중에 얼마 안 되는 돈을 갖고 강남 부동산을 구석구석 돌다가 푸대접도 받았다. 그 돈 갖고 강남에 집 못 산다고 대놓고 문전박대하는 부동산도 종종 만났다고 한다. 다행히 마음 좋은 어떤 부동산 사장님이 그녀랑 몇 날 며칠 발품을 팔아 지금의 아파트를 찾아 줬고 그 선택이 15년 만에 빛을 발했다.


"그때 기억나? 왜 그리 강남에 들어가려고 애를 쓰냐고 그랬는데,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었네. 지금 갑자기 서울로 발령받았는데 그때 집 안 사놨으면 어쩔 뻔했어. 여기 지방에서 실거주한 집값도 오르고. 당신 은근히 재테크 고수인가 봐."

"아유, 진짜로 아니야. 정말 소 뒷걸음치다 뭐 어쩐다고, 얻어걸린 거야. 그때 내가 시장 동향을 조사하거나 분석한 것도 아니고, 아닌 말로 순전히 집 사고 싶은 바람이 들어서였어. 얼결에 샀는데 그 얼마 뒤에 집값이 떨어져서 얼마나 신랑 눈치를 봤었는지."




그녀가 집을 산 몇 년 뒤에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왔고 절대로 안 떨어질 것 같던 집값이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당시 부의 상징이었던 도곡동 타워팰리스 1차는 30억 전후였는데 2012년 무렵엔 15억 전후로 거의 반토막이 났었다. 90년대 초반 1억 5천에 분양받은 부모님의 분당 아파트도 한때 10억까지 올랐으나 2012년, 5억 5천까지 떨어졌으니 비슷하게 반값 수준이 됐었다. 요즘 타워팰리스 1차가 다시 30억 전후가 됐고 분당 아파트도 10억 전후로 회복됐으니 떨어졌던 만큼 다시 오르는 데 거의 10년이 걸린 셈이다.


2010년대 초반 뉴스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하우스 푸어' 문제를 다뤘다. 당시 서울 가구가 760만 정도였는데 그중 45%에 이르는 340만 가구가 '나는 집을 사서 빈곤해졌다'고 느꼈다. 집 값의 70-80%씩 대출을 받아, 적게는 100만 원에서 많게는 몇 백 만원씩 매달 이자를 내고 있는데, 집값은 산 가격보다 떨어지고 심한 경우 저렇게 반토막이 났으니 그때 내 기억에도 주변에 이 문제로 부부 싸움 난 집들이 꽤 많았다. 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집을 팔려고 해도 사는 사람이 없었다.


요즘에는 거꾸로 '패바잉'이라고 한다. 10년 전에는 덜컥 집을 산 사람들이 뒤늦게 한탄하고, 부부간에 내 탓이니 네 탓이니 싸우고 그랬는데 이번에는 또 반대로 집을 진작 안 산 걸 후회하고 '내가 사자고 했는데 배우자가 반대해서 못 샀다'고, 속상해 죽겠다는 글들이 온라인 카페에 자주 올라온다. 하우스 푸어와 패바잉의 시대를 아슬아슬하게 지나오며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강남에 집 한 채 장만한 그녀가 시쳇말로 '위너'일까?


"위너는 무슨 위너야. 나 여기 지방 집값 오르긴 했는데 요번에 팔면 세금이 반이야. 그래도 남긴 하는데 생각보다 세금이 세서 앞으로는 전세 끼고 집 사는 건 안 하려고. 이번에 보니 세금 관계가 뭐가 그리 복잡한지. 더구나 이사 들어갈 집은 강남이란 이유로 실거주 10년을 채워야 80프로 비과세야. 이번에 예쁘게 고쳐서 오래 살려고."


그녀의 이런 면이 좋아서 띄엄띄엄 동의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도 인연을 이어가나 보다. 철부지 같기도 하고 때론 허영을 좇는 것 같기도 하지만 멈출 줄 안다. 그녀는 강남에 집 갖고 싶은 바람을 실현하고자 몇 년간 허리띠를 졸라매며 외식 한번 편하게 안 했다. 그 소망이 이뤄지니 더 이상 큰 욕심을 안 낸다.


이 나이쯤 되고 보니 주변에 다주택자들이 늘어났는데 그들을 지켜본 내 소감은 '욕망에는 브레이크가 잘 안 걸린다'는 것이다. 한 채 있는 사람은 보다 상급지에 집을 안 사놓은 걸 후회하고, 상급지에 집 있는 사람은 두 채 사놓지 않은 걸 안타까워하고, 몇 채씩 있는 사람조차 다른 지역에 더 많이 안 사놓은 걸 언급하며 속이 쓰리다고 한다.


심지어 '집은 파는 거 아니야. 모으는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집을 통한 자산 증식을 자랑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집이 무슨 피규어도 아니건만 여러  보유하고도 그는 여전히 부동산 '임장'을 다니며 집 없는 들의 불안과 염려가 끊이지 않는 이 와중에 규제를 피해 새로운 집을 사려고 모색 중이다. 날, '재산 만 석 이상 늘리지 말고, 특히 흉년에는 재산을 늘리지 말라'던 400년 전통 명문가 경주 최부잣집의 절제나 윤리의식 같은 건 아득하게 잊힌 덕목이  걸까.




우리 사회 부동산 시장을 둘러싸고 많은 전문가들이 갑론을박 논쟁을 벌인다. 주택 보급률이니, 수요와 공급이니, 유동성 파티니, 말들이 많지만 부동산 재테크에 관심이 많았던 친정 엄마 덕에 20여 년간 아파트 시장 변화를 지켜본 나로선 결국 부동산 시장은 욕망과 심리에 의해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는다.

수요 공급 곡선과 집값의 변화가 꼭 맞아떨어지지 않는다거나, 집값이 떨어질 때는 아무도 안 사다가 집값이 다락같이 오를 땐 너도 나도 사는 등, 우리가 상식적으로 아는 자본주의 셈법과는 종종 다른 양상이 되는 걸 보면 말이다.


"세금 안 무서운 사람들은 여러 채 있어도 당신처럼 집 안 팔고 증여한다고 하더라. 그런 사람들이 넘쳐나는 한, 주택은 계속 모자라겠지."

"아이고 , 무슨 증여까지? 난 그런 건 모르겠고 아쉬운 건 기왕에 사는 거 좀 큰 평수를 살 걸, 구축인데 30평대라서 좁아. 나중에 10년 뒤에 넓은 집 갈 기회를 노려보려고."

"하하, 10년 뒤에? 그때쯤이면 우린 중년도 아니고 중장년일 텐데 넓은 집이 필요할까?"

"알 수 없지. 코로나 때문에 요즘 다시 큰 평수가 인기라더라. 어쨌거나 집값은 오르내리니까 기회가 올 거야. 집값이란 게 영원히 떨어지는 것도, 오르는 것도 아니더라고."

"그렇지, 우리도 젊었을 땐 집값이 한번 오르면 그걸로 다 끝난 것 같았지. 그런데 막상 떨어졌 때도 막 사지 못 했어."

"맞아. 집 두 채면 큰일 나는 줄 알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잖아? 이 나이가 되도록 집 두 채면 큰일 나는 줄 알잖아."

"그러네, 나부터도 세금 때문에 이렇게 팔고 가려고 하니."


부동산 재테크 고수들이 보면 한참 모자라 보이는 우리 둘의 대화는 이렇게 이어졌다. 부동산 시장이 후끈 달아오른 몇 년간 관련 책도 많이 나오고 부동산으로 돈 벌었다는 분들이 강연도 많이 한다. 이대로 있으면 도태되는 거 아닌지 불안한 마음에 가끔 책도 들보고 강연도 쫓아다녀 봤는데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육아서 백날 읽어도 책대로 안 되는 게 육아인 것처럼 기본적으로 재테크 마인드를 장착하지 못한 나 같은 사람이 부동산을 공부해서 무슨 돈을 벌 수 있을지 말이다.


어쨌든 선견지명으로 강남에 미리 집을 사놓은 그녀가 나와 비슷하게 모자란 소리를 하는 게 이상하게 위안이 된다. 욕망을 마음껏 드러내고 끝까지 쫓아가지 않으면 위선적이거나 부족한 사람 취급받는 세상인 건가, 궁금해하다 조금 울적한 기분까지 들곤 했는데 그녀를 보니 꼭 그런 세상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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