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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Oct 23. 2021

좋은 친구 만들어 주려면 강남에 살아야 하나요?

한때는 그 애와 친하다고 생각했었다. 몇 번 고개를 갸우뚱한 순간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친하다고 마음속에서 우겼다. 중간에 연락이 뜸한 시기가 있었다 해도 무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알고 지냈다. 그토록 오랜 시간 지속된 사이인데 친한 게 아니라면 내 지난 시간이 다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시간이 좀 흐른 어느 해 겨울인가, 그 애는 아버지가 원래는 남자친구와 결혼하는 걸 반대했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어쩐지 하나도 슬퍼 보이지 않았다.


“아, 그래?”

“응, 처음에는 반대하셨어. 남자친구네 집이 뭐랄까, 그냥 별 볼 일 없어. 아버지가 작은 가게를 하거든.”

“...”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조금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그 이야기를 따분한 얼굴로 하는 그 애를 바라보며 '아무래도 너랑 나는 안 맞는 것 같아', 연인한테나 할 법한 대사를 생각하고 있었다. 나의 아버지도 박봉의 공무원이었고 그 동네에서는 대우받지 못하는 직업이었다. 아버지 직업을 말하면 은근히 무시했던 시선들. 어린 마음에도 되게 어이없다고 생각했고 그러면서도 그 시선에 주눅 드는 나 자신이 이해가 안 가서 힘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자기 아버지가 남자친구 집안을 무시하는 이야기를 꺼내면서 마음 아픈 기색이 하나 없는 친구를 보니 우리가 아무리 많은 대화를 주고받아봤자 어차피 서로 닿지 못할 인연이란 예감이 들었다. 그 애가 뒤이어 말했다.


“그래도 그 사람 직업이 워낙 좋으니까 결국 허락하신 것 같아. 전문직이잖아.”

‘선 시장’이란 말이 나올 만큼 결혼이 거래가 된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지만, 나도 지고지순하게 아무 조건 없이 그저 사람 하나 보고 연애를 했던 건 아니지만, 마치 남일 말하듯이 무심하게 남자친구 집안을 아버지의 시선에서 경멸하면서, 동시에 남자친구 직업을 아버지의 시선에서 인정하는 모습이 이상했다. 아버지랑 남자친구가 결혼하는 건 아닐 텐데 말이다.


언젠가 맘카페 고민 게시판 글을 봤을 때 그 친구가 떠올랐다.


"아이한테 좋은 친구 사귀게 해 주려면 강남에 살아야 한다는데 그럴 형편이 안 되어 속상해요."라는 글이었다.


30년도 더 전에 아버지도 그 말씀을 하셨고 우리 가족은 강남 아파트로 이사했다. 그 친구는 좋은 친구였을까? 아버지가 말한 좋은 친구란 대체 무슨 뜻이었을까? 경제적으로 안정된 집에서 공부 열심히 하고 예의범절을 잘 배운 아이를 말한 거라면, 그 친구는 좋은 친구 맞다. 아버지가 전문직이고 부유했으며 학교에서는 착실한 모범생이었으니까. 그렇게 따지면 학교에서 알고 지낸 친구들 대부분 좋은 친구다. 문제는 그 좋은 친구들이랑 오래전에 연락을 다 끊었는데 아쉽다고 느낀 적이 없다.


고민 게시판에 단골로 올라오는 사연은 또 있다.


"신도시는 면학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해서 걱정이에요. 학군지로 이사 가야 할까요?"


신도시는 신설 학교가 대부분인 데다가 이 동네 특성인지 모르겠으나 혁신학교도 많았다. 자유로운 학교 분위기가 입시 준비에 도움이 안 될 거라는 생각에 아이가 초등 고학년만 돼도 이사나 전학을 고민하는 부모가 많다. 내가 초중등 아이들을 데리고 거꾸로 신도시로 올 때 주변 사람들도 같은 이야기를 하며 말렸다. 아이한테 예전 동네로 돌아가고 싶냐고, 그 동네 애들이 더 공부를 열심히 했냐고 물었더니 아이가 '그 동네 애들이 공부를 더 많이 한 건 맞는데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라고 대답했다.


"왜?"

"그때 힘들었던 것 같아."

"너 초등 4학년 때 이사 왔으니까 거기에서 학교 다닌 시간은 기껏해야 3년인데?"

"그래도 힘들었어. 매일 30분씩 셔틀 타고 폴리 가는 것도, 폴리 숙제하는 것도, 애들이 공부 갖고 경쟁하는 것도."

"그때 엄마한테 힘들다는 말 안 했잖아?"

"어, 친구들도 다 그렇게 사니까 원래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건 줄 알았어."

아, 이래서 부모들이 아이를 데리고 학군지에 가려고 하는 건가? 친구들 공부하는 거 보면서 인생이란 원래 이런 거라고, 너도 견디는 힘을 기르라고? 순간적으로 그냥 거기에 살았어야 하나 약간 아쉬운 마음이 드는데 아이가 말했다.

"엄마, 사실 거기 있을 때 애들이 나한테 대부분 잘해주고 그랬지만 가끔 그런 생각이 들었어. 얘네가 내가 공부를 못하거나 똑똑하지 못해도 이렇게 대해줄까? 무시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가 많았어."

겨우 초등학교 3학년 교실에 그런 기류가 흐르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애들이 종종 공부 못하는 애한테 몰려가서 그랬거든. 네가 공부를 못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노력을 안 하는 게 문제라고. 그런 말 들으면 슬플 것 같아서."


열 살짜리 아이들 머리에서 나온 이야기는 아닐 테고 부모가 한 말일 것이다. 자기보다 못한 약자한테 거들먹거리며 할 이야기도 아니고, 한창 뛰어놀 나이에 곱씹을 내용도 아니었다. 선생님도 아니고 같은 반 친구들한테 그런 핀잔을 듣고 위축되었을 어떤 아이가 있었다고 생각하니, 내 아이가 아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때는 공부가 나를 뒤에서 때려서 앞으로 밀려나가는 기분이었거든. 여기 와서는 공부랑 손 잡고 가는 기분이야. 공부랑 친구가 된 것 같달까."


Photo by Rubén Rodriguez on Unsplash

아이는 알아서 자신의 '좋은 친구'를 찾아내고 있었다. 살아보니 '좋은 친구'란 부모가 정의 내리거나 대신 만들어 줄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반대로 나쁜 친구도 정형화되어 있지 않다. 가끔 '우리 아이가 친구한테 나쁜 물들까 걱정이다'라고 말하는 부모들이 있는데, 내 자식이 남한테 나쁜 물들이지 않게 잘 보살피는 게 우선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힐빌리의 노래>를 쓴 J.D. 밴스 같은 처지라면 다르다. 미국의 쇠락한 '러스트 벨트' 지역에 살면서 주변에 온통 마약 하는 친구들밖에 없으면 그의 할머니처럼 친구들을 단속하는 게 맞다. 그 동네는 중학생이 되면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가볍게 마약을 시작하는 분위기였다. 밴스 할머니는 그에게 교제 금지령을 내리며 '만약 네가 친구를 사귀면 내가 그 애들을 트럭으로 칠 거야'라고 협박한다. 10대에 권총으로 사고를 쳤던 전적이 있는 할머니이기에 밴스는 얌전히 할머니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정도로 강력한 우범지대가 아닌 한, 친구가 일방적으로 순진한 내 아이에게 나쁜 물을 들이는 경우는 잘 없다. 관계는 상호 주고 받는 것이니까. 친구와 관계를 맺고 거기에서 만족감도 느꼈다가 좌절도 해보고 새로운 우정을 찾는 것, 모두 아이 몫이다.


나를 고민스럽게 만든 그 친구와 쌓았던 우정에 작별을 고한 것도 능동적인 내 선택이었다. 어쩌면 진작에 결단을 내렸어야 할 일이었는데 나 또한 무의식 중에 아버지의 '강남에 좋은 친구' 지론에 갇혀 어떻게든 그 애들과 잘 지내보려고 노력했던 면도 있었다. 15년이 지난 시점에야 그게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았다. 서로 시공간이 많이 겹쳤다고 해서, 오래 묵은 우정이라고 해서 저절로 상대에게 진실해지는 건 아니었다.

친구가 남자친구와 결혼을 앞두고 이런저런 저울질을 하던 당시 우린 둘 다 대학원생이었다. 친구와 달리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동시에 대학원도 다니느라 늘 시간에 쫓겼는데 한번은 꼭 필요한 책을 미처 대출하지 못해서 난감했다.


"00야, 내가 이번 과제하는 데 꼭 필요한 전공 책이 있는데 이게 절판돼서 구하기도 어렵거든. 그런데 우리 학교 도서관에는 이미 다들 빌려가서 없어. 찾아보니까 너희 학교 도서관에는 있던데 이번 주에 언제 학교 갈 때 좀 빌려줄 수 있을까? 내가 학교 앞으로 받으러 갈게."

지하철을 타고 다니던 나와 달리 친구는 차가 있었고, 학교 간 거리가 멀지도 않았지만 감히 갖다 달라고 부탁할 생각도 안 했다. 그저 대출만 좀 해줄 수 있느냐고 묻는데 잠시 침묵을 지키던 친구가 물었다.

"어, 그, 전공책이면, 무겁지 않나?"

"어? 무슨 말이야?"

"아니, 제목 들어보니 두껍고 무거운 책일 것 같아서. 나 무거운 책 들고 계단 오르내리는 거 좀 힘들거든."

"......"


알았다고, 신경 쓰지 말라고 전화를 끊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 건지 잠시 멍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생각하느라 화도 바로 내기 힘들었다. 머릿속 회로가 감전된 것처럼 멈춰서, 이 모욕감이 어디에서 비롯된 건지 결론도 내리지 못 했다.

그 애와 내가 함께 보낸 시간은 뭐였을까? 너한테는 단 한 조각의 정성도 들이지 않겠노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을 좋은 친구는커녕, 친구라고나 할 수 있을까?

 

B가 떠올랐다. B라면 나에게 이렇게는 안 해. 마음이 다쳤다고 느낀 순간에 그래도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는 건 다행이었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 대학 친구 B는 지금 상황과는 반대로 나에게 들이는 정성은 조금도 아깝지 않다는 메시지를 주었다. 


대학 동아리 친구 A가 집안 사정으로 급하게 돈이 필요한 일이 있었다. 사연을 들어보니 급박한 상황 같아서 캐시에 가서 내가 갖고 있던 돈을 몽땅 보냈지만 여전히 모자랐다. 용기를 내서 같은 과 친구 B에게 전화를 했다. 이런저런 사정을 설명하고 꼭 갚을 거라고, 만약 그애가 못 갚으면 나라도 갚겠다고 하자 B가 흔쾌히 말했다.

"알았어. 지금 바로 보낼게."

B랑 A는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니었다. B는 그야말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기는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 줬다. 순전히 나를 믿고서. 우린 벌이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 봐야 사회 초년생이고 목돈 같은 건 없었다. 그래도 십시일반으로 모아서 A는 급한 불은 끌 수 있었고 얼마 후에 나와 B에게 빌린 돈을 모두 갚았다.


그때 B가 내게 준 건 돈이 아니었다. 너를 믿는다는 신뢰와, 너는 내게 소중하다는 확신이었다. 대비되는 두 상황을 겪고 보니 확실히 알게 됐다. 책 한 권의 무게도 이겨내지 못하는 15년 우정의 무게는 계속 지고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친구 간에 돕는 게 중요하다거나 돈에서 인격이 나온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좋은 친구'는 부모든, 누구든, 다른 누가 찾거나 추천해 주는 대상이 아니다. 아무리 알고리즘의 시대라 해도 좋은 친구는 스스로 부대끼며 찾아야 한다. 당연히 '아이에게 좋은 친구 만들어 주려면 강남에 가야 한다'는 명제도 설득력이 없는 이야기다.

경제적으로 윤택한 지역이라면 내 아이에게 맞는 좋은 친구들이 훨씬 많을까? 그 애들이 모여서 내 아이를 기다리고 있을까? 그런 기대는 흡사 간판이 세련된 집 파스타는 반드시 맛있다고 생각하거나 명품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구두 뒷굽이 늘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을 거라고 추측하는 것만큼이나 인과관계가 빈약한 편견이고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환상이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좋은 친구'로서 아귀가 딱 들어맞으려면 서로의 삶에 얼마나 촘촘히 맞닿아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무거운  잠깐 드는 수고도 힘들어서 못해주겠다는 초등학교 친구를 보니 그애가  또한 '   없는 집안의 아이' 내내 바라보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미쳤다. 사실 이미 오래전부터 그런 느낌을 받았다. 애써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다. 나도 아니고, 나의 배경을 두고 홀대하며 모멸감을 주는 사람과는 친구 이전에 지인으로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어렵다.


강남에 좋은 친구가 있다거나, 없다거나, 그런 결론을 내리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운이 없었는지 모른다. 사람 보는 눈이 없어서 곁에 있는 정 많고 따듯한 친구를 놓쳤을 수도 있고, 나부터도 별로라서 별로인 친구만 있었는지 모른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특정지역에 좋은 친구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나랑 사귀려고 대기하는 일 같은 건 없다는 것이다.

늘 다짐한다.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자고.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좋은 친구 노릇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게 부모가 먼저 할 일이라고. 좋은 친구 사귀게 해 준다고 어디로 이사할 생각부터 하는 건, 지금 내가 아이를 좋은 사람으로 키우고 있는지,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정면으로 응시할 자신이 없을 때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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