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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Aug 31. 2021

에필로그_나는 카페로 신나게 출근한다

오늘도 쓰는 삶을 위하여


큰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차에 노트북과 읽던 책도 있으니 집 말고 어디로든 가고 싶었다. 발걸음을 재촉하는 학생들이나 버스 정류장에 줄지어 서 있는 직장인들. 모두 바쁘게 어디론가 향하는데 나만 집으로 돌아가는 게 내키지 않았다. 진짜 출근이 아니라도 좋으니 출근하는 인파 속에 섞이고 싶어서 일부러 복잡한 중심가 카페를 향했다.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정부 청사 주변 카페라 가는 길은 한참 막혔다. 막히는 차 안에서 차창은 작은 활동사진처럼 사람들을 잠시 화면에 담았다가 내보낸다. 처음에는 여유롭게 걷는 사람들이 화면에 등장했는데 9시가 다가오니 종종걸음으로 걷거나 뛰는 사람들이 보인다.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신호를 기다리는데 자전거를 탄 여자가 지나쳐간다. 크로스 백을 매고 마스크를 쓴 채로 정신없이 페달을 밟고 있다. 마스크를 써서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작게 들썩이는 어깨에서 턱끝까지 차오른 숨이 느껴진다. 지각인가?


나도 저렇게 숨 가쁘게 출근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하철에서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다 환승역에서 다시 떠밀리듯 내려, 정장 입은 사람들과 갈아탈 열차를 향해 뜀박질 선수처럼 달려갔다. 많은 사람들이 구두 뒷굽을 동시에 바닥에 찧다 보니 우박 떨어지는 소리가 역 복도에 울려 퍼졌다. 차려입은 사람들이 무표정하게 단체로 뛰는 광경이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데 그때는 미세하게 볼살이 흔들리는 느낌만 있었을 뿐 웃음이 나지 않았다.


저 사람들도 자신을 보는 내 시선을 의식할 여유가 없겠지. 지각하면 안 된다거나 오늘 할 일, 갈등 관계에 놓인 사람들과 또 어떻게 하루를 지내야 하나 하는 걱정 등으로 머릿속이 꽉 차 있을 거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당시 나는 아침 출근길의 상쾌함이나 설렘 같은 걸 자주 느끼지는 못했다. 팀장님이 나한테 했던 감정적인 분풀이를 떠올리며 속상해하거나 내 공을 수시로 가로채는 선배와 어떻게 계속 일을 할지 고민하느라 마음이 복잡한 날이 더 많았다. 그래서 잘 몰랐다. 언젠가 출근길을 그리워하며 이렇게 차 안에서 상념에 잠길 줄은.




그날도 팀장님한테 뭔가 지시를 받고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팀장님은 내 모니터를 바라보며 뒤에서 훈수를 뒀다. 그냥 나 혼자 하면 더 빨리 하겠는데 싶어서 약간은 짜증스러운 마음으로 모니터를 노려보던 중이었다.

지금의 내 나이쯤 되지 않았을까. 40대 한 여성이 서류를 들고 사무실에 찾아왔다. 한눈에 봐도 조금 오래돼 보이는 빨간 정장을 입고 있었다. 화장도 어딘지 부자연스러웠다.


"어떻게 오셨어요?"

"아, 저, 여기 번역 아르바이트 구한다고 해서요."

주뼛거리며 대답하는 그녀를 힐끗 본 팀장님이 티 나게 무성의하게 답했다.

"저희 홍보물 번역할 사람 구하는 공지 보고 오신 거예요? 네, 거기 서류 두고 가시면 돼요."

서류만 두고 가기가 뭐했는지 그녀는 서류를 조심스레 놓고선 팀장님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아, 제가, 그 00대에서 00를 전공하고 0년간 00에서 번역 일을 했었거든요. 그니까 저, 중간에 아이들 키우느라 잠시 쉬었지만요."

용기 내서 긴장한 채 더듬더듬 말하는 게 느껴져서 괜히 내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팀장님이 어떤 말이라도 좋으니 좀 성의 있게 대답해 주기를 바랐다.

"네네, 알겠습니다~."


빨리 가줬으면 좋겠다는 듯이 팀장님이 말끝을 올리며 가볍게 목례를 한다. 뭔가 더 말을 하려던 그녀가 시선을 내리며 인사하고 나가는데 처진 어깨로 걸어가는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한참 바라봤다. 공부도 잘하고 경력도 훌륭한데 어쩌다 저렇게 처량하게 걷고 있는 걸까.


"어우, 40대 아줌마가 뭔 일을 한다고. 얼굴 화장 뜬 거 봐라."

잠시 생각에 잠길 새도 없게 만드는 팀장님의 말. 지금은 저렇게 말하는 상사를 찾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내가 직장에 다닐 때는 사무실에서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흔했다. 구멍가게도 아니고 공공기관 홍보실이었는데도 말이다. 아무렇지 않았던 것에는 담배뿐 아니라 무례하고 거친 말도 포함되어 있었다. 팀장님을 경멸에 찬 시선으로 한번 봐주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어 또 애꿎은 모니터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은수 씨, 뭐해? 아까 그 부분 다시 보여줘 봐."

"네!"

나도 아무렇지 않은 가면을 쓰고 다시 문서에 집중했다.




그녀도 출근하고 싶었던 거다. 사연은 모르지만 어쩌면 나처럼 직장에 사표를 내고 제 발로 결혼이나 가정을 택했을지 모른다. 여자가 일하기 힘든 사회적 환경에 반발하고 거기에 무릎 꿇고 싶지 않다고 수없이 생각하면서도 육아와 살림을 대신해 줄 사람을 당장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내 소신만 고집할 수 없었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타지에서 어린아이들을 두고 일을 하려니 걸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출산 직후 여자도 육아 휴직이 힘든 시대였으니 남편에게 휴직이나 뭔가를 기대하는 건 더욱 어려웠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클 때까지 조금만 기다리자고 생각했는데 그게 10년을 훌쩍 넘겨버렸다.


한때는 그녀처럼 처량한 얼굴로 여기저기 서류를 들고 다녔다. 나이를 보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을 하는 공공기관에 응시해 용케 최종 면접까지 오르기도 했지만 발랄하게 자기소개를 하던 젊은 사람이 붙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동안 이어졌던 '취준생' 시절, 아침마다 출근하는 사람들을 창밖으로 바라보며 그 풍경에 나를 그려 넣었다. 언제쯤 나도 출근할 수 있을까 애를 태웠다. 마흔을 한참 넘긴 나이에 오래전 빨간 정장을 입은 그녀가 되어 다시 출근하고 싶다고 간절하게 바랐지만 그녀보다 더한 문전박대도 당해보고, 아무리 애를 써도 최종 문턱에서 좌절되는 일이 반복되자 사람이 시들어갔다.

 

강상중 교수는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에서 사회적인 일자리를 얻는 건 사회로 들어가는 '입장권'을 갖는 의미라고 했다. '당신을 이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합니다'라는 증서와 같은 건데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일하기를 원하는데 취업하지 못하는 개인이 많은 상황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런 사회는 개인을 무기력하고 정신적으로 황폐하게 만들 수 있다고.



이제는 더 이상 '사람인'을 검색하느라 뜬눈으로 밤을 새우거나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고 다니지 않는다. 사회가 나에게 입장권을 발부하지 않는다면 내가 스스로 셀프티켓을 발급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사회에서 내 역할은 '쓰는 일'이고 사무실은 내가 좋아하는 카페다.

아침 출근길이 주는 활력을 느끼고 싶을 때 가끔 이렇게 카페로 출근한다. 처음에는 82년생도, 김지영도 아니지만, 남편 스폰 삼아 커피 마시며 뭘 끄적거리고 있다고 누군가 흉볼 것 같아서 공연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되도록 구석 자리에 앉았다. 이제는 당당히 중앙에 앉는다. 예전 같으면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었을 때 억울한 마음이 들어 해명이든 변명이든 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나도 힘들게 취업했었고, 정년이 보장된 직장도 있었다고. 중간에 재취업할 기회도 있었지만 내가 박차고 나가면 애들은 어떻게 할지 아무 대안도 없었다고. 여기에 오기까지 당신이 알지 못하는 사연이 있는 건데 함부로 재단하고 평가하지 말라고.


어차피 '아줌마'라고 비웃고 무시할 팀장님 같은 사람들이라면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을 거라는 걸 지금은 안다. 누군가 비웃는다면 차라리 자랑하는 쪽을 택하겠다. 그래, 내 남편은 능력 있어서 외벌이지만 사치는 못 해도 크게 부족하지 않게 산다. 내가 이렇게 커피 마시고 글이나 끄적거려도 돈 벌어 오라고 안 한다. 그 덕분에 읽고 싶은 책 실컷 읽고 지금처럼 브런치에 글 쓰다가 책도 냈다. 원하는 공간에서 원하는 일을 하는 내 인생이 그렇게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문득 출근이 그리워질 때 나는 카페로 신나게 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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