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찾아도 없다. 벌써 일주일째 온 집안을 뒤졌다. 침대 밑에 몇 번을 기어들어가서 플래시로 비춰보고, 청소기 먼지통도 샅샅이 헤집어 보았다. 하지만 결혼반지로 맞췄던 다이아 반지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걸리적거린다고 생전 안 하던 반지를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끼고 나갔다가 집에 와서 낀 채로 잠들어 버렸다. 잠결에 손가락이 답답해서 어디론가 던져 버렸나 보다. 다음 날 저녁때까지도 몰랐다. 저녁 설거지를 하는데 문득 손이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보니 반지가 없었다. 그제야 반지 생각이 나서 허겁지겁 달려가 침구를 뒤졌지만 안 보였다. 이미 청소기도 돌리고 만 하루가 지난 터였다.
일주일간 애들 레고 장난감까지 뒤집어 가며 찾아도 없었다. 찾으리란 희망을 버리고 나니, 어쨌든 이걸 준 남편에게 솔직하게 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또 한번 마음이 무거웠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 앞에서 잔뜩 무게를 잡고 말했다.
"난 한심한 사람이야."
"어? 그게 무슨 말이야, 갑자기?"
"말한 그대로야. 정말 형편없어. 왜 사나 몰라."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걱정스러운 얼굴로 묻는 남편에게 다른 것도 아니고 결혼반지를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그게 어떤 반지인데 이렇게 어이없이 분실한 게 믿기지 않는다고 울먹였다.남편은 의외로 괜찮다고 말하며 이사 갈 때 나올지도 모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했다.
"이사 갈 때도 안 나오면 어떻게 해?"
"할 수 없지, 뭐. 내가 나중에 돈 벌면 새로 사줄게."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또 새로 살까. 그러다 내가 대체 얼마짜리 반지를 잃어버린 건지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졌다. 결혼 20주년쯤 되었을 때 말하면 다시 사줄까, 내심 기대도 했다. 종류도 많고 가격도 천차만별이라 설혹 다시 산다 해도 뭘 사야 하는 건지 결정이 쉽지 않겠다고 생각하던 중, '블러드 다이아몬드'라는 영화가 검색 결과에 떴다. 신교도를 박해한 영국의 블러드 메리는 아는데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뭐지? 찬찬히 검색해 보니 영화 제목이었다.
이때부터 다이아몬드에 얽힌 피의 역사를 밤새 검색해서 읽었다. 안 그래도 예전에 어떤 시사 주간지에서 다이아몬드 채굴과 관련해 어린아이들이 동원되는 문제를 다룬 기사를 읽은 적은 있는데 이토록 잔혹한 배경이 있는 줄은 몰랐다. 서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시에라 라이온. 세계 세 번째로 큰 다이아몬드 원석이 발견되면서 이 땅에는 끔찍한 피 바람이 불었다.
다이아몬드를 차지하기 위한 내전은 10년 동안 계속됐다. 시에라 라리온 인구 450만 명 중 35만 명이 사망하고 4천 명이 신체가 절단되는 고통을 겪었다. 반군이 공포심을 조장하고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어린아이, 노인 할 것 없이 손발을 잘랐다. 부모가 지켜보는 앞에서 아이 손을 자른 반군도 있었다. 손이 잘려 뭉툭해진 팔 끝으로 다이아몬드를 채굴하고 있는 아이들 사진을 보니 속이 울렁거렸다. 불법 채굴한 분쟁 지역 다이아몬드를 취급하지 않기 위해 다국적 기업이 노력하고 있다고 하지만 앞으로 다이아몬드는 보고 싶지도 않았다. 다이아몬드 반지를 사고 싶은 마음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부동산 강의에서 '입주권'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조금 뜬금없지만 시에라 라리온의 다이아몬드가 떠올랐다. 내 돈 내고 부동산 강의를 들으러 가기까지, 천 갈래 만 갈래로 흩어지는 마음이 있었다. 10여 년간 그대로인 집 값이 조금 오르자마자 냉큼 팔았는데 삽시간에 두 배 가까이 뛰는 걸 지켜봐야 했다. 이제 그런 실수는 안 할 줄 알았는데 경험도 쌓이고 이 책 저 책 들춰보며 지식도 늘었건만 세상살이 요령 없는 내 모습은 여전했다. 그게 답답하고 싫어서 세상 돌아가는 데 너무 뒤처지지는 말자는 심정으로 신청한 강의였다
"전 이제 소설 같은 건 안 읽어요. 재테크 책 읽기도 얼마나 바쁜데 소설 같은 걸 읽고 있겠어요?"
하지만 강사의 첫마디부터 듣기 힘들었다. 여기 오려면 소설 따위는 머릿속에서 지우고 와야 하는구나. 30여 명 정도 모인 소규모 강의였는데 다들 태연한 척을 하는 건지, 진짜 아무런 동요가 없는 건지 소설 같은 건 안 읽는다는 말이 불편한 사람은 나밖에 없어 보였다. 강사는 재건축, 재개발에 대해서 한참 이야기했다. 조합설립, 시행인가, 조합원 동호수 추첨, 이주와 철거 등 낯선 용어를 따라가느라 정신이 없는데 이런 건 발로 뛰어서 알아보는 게 필요하다며 주변 부동산을 방문해 봐도 좋다고 덧붙였다.
다들 고개를 끄덕거리며 강의 내용을 받아 적고 있었다. 쉬는 시간이 됐을 때 수험생처럼 줄을 서서 강사에게 열정적으로 질문하는 사람들을 보니 나만 이방인인 것 같아 잘못 온 게 아닐까, 조금 고민스러웠다. 하지만 환불도 안 되는 강의인 데다 기왕 들으려고 왔으면 나도 선생님 말을 잘 따라야겠다고 애써 마음을 바꿨다.
며칠 뒤에 재건축이 추진 중인 아파트를 찾아가 봤다. 80년대 중반에 준공했다는 아파트는 예상대로 낡고 허름한 5층짜리였다. 아파트 외벽 페인트는 군데군데 벗겨져 있고 주차장도 누구네 집 앞마당이라 해도 믿을 만큼 작았다. 주차장이 이렇게 협소한데 주민들이 불만을 갖지 않을까? 궁금해서 인근 부동산 사장님께 물어보니, 코 끝에 안경을 걸친 나이 지긋한 사장님이 반말을 섞어가며 말씀하셨다.
"여기 원주민들이야 거의 노인들인 데 뭐, 젊은 사람들처럼 차를 많이 갖고 있겠어? 저렇게 작아도 주차장 비어 있잖아. 입주권 알아본다고요? 어디 보자, 13평은 1억 8천에 나왔고 15평은 2억에 나왔다가 들어갔어. 여기 주변이 개발될 거라고들 하니까 더 올리려나 봐. 지금 이 아파트는 반 이상이 이미 외지인 소유야. 팔 사람들은 많이 팔았지. 진작 오지 그랬어. 그래도 또 모르니 번호 남기고 가던가. 돈 없는 사람들 꼬셔 봐야지."
신문에서 봤던 것 같다. 새 아파트 받는 줄 알고 덥석 조합원 가입을 하고 철거에 찬성했던 노인들이 집과 땅을 다 주고도 각종 비용으로 큰돈을 내야 하는 걸 뒤늦게 알고, 결국 입주권을 포기하고 주변 전세도 얻기 힘든 보상금만 받아 더 외진 지역으로 떠나간다고.
노인들은 '조합직원이란 사람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25평 정도면 공짜로 들어간다고 분명히 말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입증할 방법이 없어 필요한 비용을 내지 못하면 쫓겨날 처지라고 했다.
한 할머니는 조합 가입을 권유했던 아들과 극심한 갈등을 빚던 어느 날, 스트레스로 아들이 갑자기 쓰러졌는데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다고 눈물지었다. 모든 재건축 아파트가 이런 상황은 아니겠지만 혹시 이곳도 비슷한 사연이 있는 걸까? 돈 없는 사람을 꼬셔 본다는 사장님 말씀은 무슨 이야기일까?
가뜩이나 부동산 강의 열등생인 처지에 머리만 더 복잡해졌다. 늘그막에 살던 곳을 떠나 더 구석지고 더 허름한 집에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어떤 심정일지 상상도 잘 안 됐다. 언젠가 여윳돈이 생겨서 저런 입주권을 산다면, 누군가의 눈물과 한이 서린 집에 들어가 사는 기분이 들 것 같다. 시에라 라리온 아이들의 눈물이라는 다이아몬드 반지처럼, 분명히 눈앞에서 화려하게 빛나고 있는데 그걸 지켜보는 마음은 씁쓸하지 않을까
"에이, 언니, 너무 감상적인 거 아니에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러면 어떻게 살아요?"
집에 돌아가는 길에 만난 이웃 동생이 부동산 강의는 잘 듣고 있냐고 물었을 때 내가 어두운 얼굴로 저런 이야기를 했나 보다. 부동산에 꽤 관심이 많은 이웃이라 안 그래도 내가 무슨 강의를 듣는지 관심을 보였었다.
"그런가? 그런데 그런 집은 마음이 편치 않을 것 같아."
"그런 식으로 따지면 마음 편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요? 그 사람들이라고 거꾸로 위치 바뀌면 손해 보고 살 것 같아요? 다들 자기 이익 추구하는 세상이잖아요. 분양권은 당첨도 어렵고 세금 관계도 그렇고, 입주권이 장점이 많더라고요. 비용이야 좀더 들지만."
그 뒤로 재건축에 대해 그녀가 한참 이야기를 해줬는데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어려운 용어를 섞어가며 하는 그녀 이야기에는 집중이 안 되고 얼마 전에 읽은 <불과 나의 자서전>의 주해가 떠올랐다. 다 쓰러져가는 남일동에서 아이를 키우며 아파트 입주권만 기다리던 주해가.
"남일동이 재개발된다는 이야기와 개발 이후 아파트 입주권이 나올 거라는 이야기를 반복하는 주해의 목소리는 자꾸만 더 커졌습니다. 잘됐죠? 잘됐죠? 주해의 두 눈이 기대감과 놀라움으로 일렁거렸습니다. 그러게요, 잘됐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습니다."
-<불과 나의 자서전>, 김혜진
우여곡절 끝에 재건축이 진행되어도 주해 모녀가 새 아파트에 들어가 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혈혈단신으로 가진 것 없이 아이 키우는 주해는, 부동산 사장님이 꼬셔보겠다는 '돈 없는 사람들'에 속해 있을 거다. 돈이 절박한 상태에서 누군가 입주권을 팔라고 했을 때 주해는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부동산 시장에서 승자가 되려면 소설 같은 건 안 읽는 게 맞나 보다. 소설은 낡은 아파트에서 이제나 저제나 입주권을 기다리며 살고 있는 그들을 구체적으로 재연해 준다. 어떤 사연으로 이곳에 와서 어떤 열망과 기대로 하루하루 버티는지, 그리고 종국에는 어떻게 쫓겨나는지.
"그런데 자기도 경매로 넘어간 집은 안 사지 않았어?"
"네?"
한참 재건축 이야기를 신나게 이어가던 그녀가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물었다.
"좀전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 생각이 너무 감상적이라고 했잖아?"
"네, 아까 그랬죠?"
"응, 그런데 자기도 경매로 넘어간 집은 사기 싫다고 했던 거 기억나? 언젠가 집 보러 갔는데, 집이 경매로 넘어가서 가족들이 이삿짐 꾸릴 시간도 없이 나갔는지, 애들 옷가지도 바닥에 굴러다녔다고 했잖아. 다른 집에 비해 값도 쌌는데 이상하게 사기 싫었다며."
"에? 아, 언니 그 얘기를 기억하고 있었어요? 네, 그런 일이 있었죠."
"자기도 나랑 비슷하게 감상적이네."
공통점을 발견한 듯 혼자 반가운 나와 달리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가, 그녀가 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나라도 그런 집은 선뜻 못 샀을 거야. 앞뒤 사정은 모르지만 분명히 안 좋은 일로 가족이 야반도주하듯이 황급히 짐 싸서 나가는데 애들은 울고, 그 와중에 옷가지를 꼼꼼히 챙길 정신은 없어서 옷은 줄줄 흘렸는데 그걸 이 사람 저 사람이 밟고 다니고. 그런 걸 상상만 해도 마음이 아플 것 같아. 시세보다 저렴해도 그 집에서 마음 편히 살 수 있겠어? 물론 그 집을 내가 안 산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 아, 뭘 바꾸고 싶어서 안 산다기보다 그런 집을 살 만큼 내가 세상에 맞춰 바뀌지 못하는 거지. 그런 게 쓸데없는 감상이라면 감상이겠지? 자기도 나랑 통하는 데가 있네.
이번에는 내가 쉴 새 없이 말을 이어갔다. 어느새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한 사람이라도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은 저녁이 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