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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Oct 21. 2021

세상의 무례에 대처하는 40대의 자세


처음으로 혼자 부동산 문을 두드렸을 때, 시기적으로 분명히 한겨울이었다. 사무실 문을 열었을 때 두툼한 패딩을 입고 난로 앞에 서 있던 사장님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런데 자꾸 초봄이라고 착각한다. 약간 서늘한 이른 봄날 햇볕이 사무실 앞 푸른 새순을 비추고 있었던 풍경이 떠오른다. 계절적으로 맞지 않는 광경이니 기억 어떤 부분이 왜곡된 거다.

왜일까? <성실중개 000 부동산>이란 간판을 보고 문을 두드리는 순간에야 부동산에 혼자 발걸음 하는 게 처음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순간이 새 학기를 시작하는 학생이 낯선 교실 문 앞에서 두근대며 걸음을 멈춘 장면 같아서 계절도 봄으로 기억하나 보다.


어릴 때부터 문구점 드나들듯 매매를 목적으로 부동산에 자주 들락거린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성인이 된 후에 자취집을 알아볼 때도 보통은 부모랑 동행해서 다녔기에 부동산에 혼자 갈 일은 흔치 않았다. 직장에서 제법 산전수전 다 겪고 결혼생활 환상도 꽤 걷어냈을 정도로 인생 경험이 쌓인 연령이 됐어도 부동산 매매는 처음이라 어린아이가 엄마 심부름으로 처음 슈퍼에 갈 때처럼 부동산 문 앞에서 떨게 된다.


"저, 집을 좀 알아보려고 하는데요." 사무실 문을 열자 일시에 쏟아지는 여러 눈동자를 찬찬히 바라보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태연한 척했지만 사장님과 직원들 눈에는 초짜 새댁이 바들바들 떨고 있는 게 다 보였을 거다. 부동산 첫 방문이 딱히 나쁜 기억으로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면 직원들이 따듯하게 맞아 줬던 것 같다. 부동산은 심호흡을 하고 들어가야 할 정도로 날 긴장하게 만드는 곳이었지만 세월이 흘러 몇 번의 거래 경험이 쌓이다 보니 이제 천연덕스럽게 사장님을 앞에 두고 매도자나 매수자 연기를 할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친정 엄마가 알려준 팁인데 집을 사려고 할 때는 매도자인 척, 집을 팔려고 할 때는 매수자인 척 물어본다. 그렇게 여러 군데에 물어보면 그 동네 시세나 부동산 분위기를 비교적 정확하게 가늠해볼 수 있다. 아무래도 부동산은 매매를 성사하는 게 목적인 만큼 매수자에게는 금방이라도 집이 동날 것처럼 빨리 사라고 재촉하고, 매도자에게는 매물이 쌓여 있어 팔기 힘든 것처럼 말하기 때문에(물론 사실 그대로 말해주는 곳도 있지만) 곧이곧대로 물어보는 것보다는 역할을 바꿔서 알아보는 게 더 낫다는 엄마의 조언이었다.


매수자와 매도자 사이에서 공정하게 관계를 조율하는 부동산 사장님을 만나면 별 탈 없이 매매가 진행되지만 드물게는 그냥 목소리 큰 사람 편을 드는 분도 있다. 일 처리를 성의껏 잘해주시는 고마운 부동산 사장님을 더 많이 만났지만, 보통의 인간관계에서 늘 좋은 사람만 만날 수 없듯이 부동산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청약을 접고 드디어 고심 끝에 살 집을 결정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우리에게 집은 거의 전 재산이었기에 아침저녁으로 집 보러 다니며 힘겹게 골랐다. 전 재산이 오가는 부동산 매매 자체가 주는 압박감과 부담도 버거운데 부동산 사장님이 매도자 입장만 일방적으로 대변해 더 힘들었다. 시장 상황이 매도자 우위도 아닌데 왜 그러실까 답답하기도 했지만 사소한 부분은 매도자에게 양보하려고 애썼다. 그런데 계약서 쓰는 날을 앞두고 사장님이 그간 진행된 내용과 전혀 다른 말씀을 하셨다.


처음에 집을 알아볼 때 '우린 간단하게 도배라도 하고 들어가야 하는데 이사 당일에 하기엔 시간이 촉박해서 걱정이다'라고 말했더니 부동산에서 매도자가 잔금을 치르기 사흘 전에 집을 비워주기로 했다며 걱정 말고 계약을 진행하자고 했다. 대신 우리도 매도자가 원하는 가격을 맞춰 주고, 중도금도 통상적인 금액보다 많이 지급하기로 했다. 날짜를 맞춰준다는 약속에 염두에 두고 있던 다른 집도 포기했다.

하지만 정식으로 계약서 쓰기 하루 전날, 부동산에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다.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없다는 것이다. 답답하고 억울했지만 '모든 사항을 문자로 남겨야 한다'는 원칙을 깜빡 잊은 내 탓을 하고 넘어가려 했다. 애써 참으며 절충안을 고민해 보려 했다. 그런데 부동산 사장님의 한 마디가 간신히 유지하고 있던 이성을 뒤흔들어 놓았다.


"좋은 집 사시는데 좀 양보하세요. 어차피 사모님도 이삿날, 집 판 돈을 받으니까 며칠만 모자라는 거잖아요. 그냥 은행에서 잠깐만 대출받아서 잔금 먼저 치르세요. 요즘 이자나 수수료도 별로 안 비싸요. 내일 계약서 쓸 때 제가 매도자한테 말은 해보겠는데 이게 확실하게 얘기된 것도 아니었으니까 사모님이 양보하면 좋겠네."


부동산 사장님도 알지 않을까? 대출 한번 받으려면 얼마나 많은 서류를 준비하고 얼마나 많은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중도 상환 수수료 몇 백만 원도 물론 아깝지만 필요하다면 낼 수 있고 그 돈이 없어서 당장 굶을 정도로 어려운 건 아니다. 하지만 자기 돈 드는 거 아니고, 자기 수고 들지 않는다고 무심하고 또 무례하게 말하는 사장님 태도에 참았던 화가 폭발했다.

남한테 언성을 높이는 것도 연습했어야 하는 건지, 머릿속에선 굉음이 나는데 그 폭발음이 입 밖으로 나오지는 못하고 왱왱거렸다. 일단 숨을 고르고 전화를 끊었다. 내 성격으로 삿대질하고 싸울 수도 없고 사장님은 자꾸 목소리 큰 매도자 편만 들고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남편에게 악역을 맡기기로 하고 사무실을 찾아갔다.


"사장님, 이 얘기를 남편에게 했더니 그냥 계약금 날리고 계약 엎자고 펄펄 뛰네요. 부동산이 이런 거 확실하게 중개하라고 있는 곳인데, 생각 안 난다, 기억 안 난다, 무슨 정치인도 아니고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책임 떠 미룬다고요. 구두로 정한 사항이지만 기록해야 할 의무가 있었던 거 아니냐고, 못 미더워서 계약 못하겠다고 난리네요. 저희 남편 성격이 보통 아니라서 제가 설득해도 막무가내고.... 어쩌죠?"


진짜 울상을 지으며 말하다 보니 내 연기에 내가 심취할 지경이다. 남편이 모난 사람이 된 건 좀 안 됐지만 그제야 사장님이 부랴부랴 매도자를 설득해서 중재안을 내놓으셨다. 이런 연기까지 필요한 상황이 안 오는 게 좋지만 인생이 마음대로 안 되듯이 매매 현장에도 늘 변수가 존재한다. 사실 내 연기 실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건 아닐지 모른다.


Photo by S. Tsuchiya on Unsplash

영화 <1987>을 보면 시위하는 대학생들을 상인들이 가게에 숨겨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로 그랬다. 친척 중에 대학가에서 식당을 운영하시는 분들이 있었는데 그분들은 선거 때마다 늘 보수 정권 편에 서실 정도로 정치적 입장이 확고하다. 하지만 80년대에는 학생들이 '백골단'에게 쫓기면 두려움을 무릅쓰고 가게 안에 숨겨주셨다고 한다. 자칫하면 가게 주인도 전경에게 곤봉 세례를 받을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학생들을 감싸 주셨다

격렬했던 80년대와 달리 내가 대학을 다닌 90년대는 좀 애매한 상황이었다. 문민정부니, 평화적인 정권 교체니, 겉모습은 그럴듯했지만 오랜 기간 지속된 군부 독재로 사회 곳곳에 만들어진 깊은 상처가 제대로 봉합된 건 아니었다. 내가 대학에 입학하기 한두 해 전에 시위 진압 과정에서 압사당해 죽은 학생도 있었고 학교 교문 앞에서 백골단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죽은 학생도 있었기에 대학가는 여전히 뒤숭숭했다.


그날도 학보사 기자로 카메라를 메고 시위 현장을 취재하러 갔는데, 갑작스러운 토끼몰이식 진압에 많은 학생들이 우수수 흩어져 나갔다. 삽시간에 퍼지는 최루탄 연기를 피해 지하철로 내려갔다. 오늘 취재는 공쳤구나 생각하면서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시끌벅적한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한 학생이 누군가에게 붙잡혀 있었다. 붙잡은 사람이 사복 경찰이었는지, 누구였는지 잘은 모르겠다. 그가 "너 방금 여기에서 데모한 거 맞지?"라며 학생을 끌고 가려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매섭게 생긴 아저씨에게 팔을 붙잡힌 학생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는데 주위를 둥글게 에워싼 시민들은 보고만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순간 카메라를 얼른 배낭에 넣고 묶었던 머리를 풀러 놀러 나온 대학생 분위기를 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발이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야, 너 여기서 뭐해? 선배들이 다 기다리고 있어!"

아저씨랑 학생이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학생과 눈빛을 주고받은 찰나, 그도 내 연기에 동참했다.

"어, 그래서 가고 있는데 갑자기 나보고 데모했다며 끌고 가려고 해서!"

"어머? 아저씨 누구예요? 왜 사람을 끌고 가요?"

한껏 의아한 얼굴로 언성을 높이니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조금씩 수군대기 시작했다.

"아니, 대학생이면 막 끌고 가도 되는 거예요? 이거 불법 연행 아니에요? 어이가 없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겁도 없이 대들자 사람들이 점점 더 모여들었다.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며 머뭇거리던 아저씨가 '에이, 뭐야' 그러면서 뒤돌아섰다. 얼굴도 모르는 그와 나는 가까운 사이인 척, 손까지 잡고 둘러싼 사람들을 빠져나왔다. 인파가 보이지 않는 지점까지 오자 그가 정말 감사하다며 인사했다. 나도 가볍게 목례를 하고 우린 각자 갈 길을 갔다. 주동자가 아닌 이상 붙잡혀 가도 가벼운 훈방 정도로 끝났을지 모른다. 하지만 쩔쩔 매고 있는 그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내가 갑자기 등장해서 말을 걸었을 때 무슨 상황인지 의아해하면서도 동시에 구원자를 만난 듯 눈빛이 간절했었다.




언젠가 독서모임에서 이때 이야기를 했더니 사람들이 그런 일이 있었냐며, 보기보다 겁이 없어서 의외라고들 했다. 시위 학생을 구하는 '행인1'역도 용기가 필요한 배역은 맞지만 우리 인생에서 주어지는 나머지 배역도 '행인1'역 못지않게 용감해야 한다. 정작 중요한 배역은 준비할 시간도 없이 덜컥 맡겨지기 때문이다.


신입사원이나 부모, 아내나 남편, 부장님, 사위, 며느리, 그리고 이런 매도자나 매수자 역할까지 생애 주기별로 부여되는 각종 배역을 맡기 전에 사전 준비나 연습을 충분히 해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모의 결혼을 한 다음에 새로 정식 결혼을 한다거나, 아이를 키우며 좋은 부모 연습을 충분히 한 다음에 새로 아이를 낳는다거나, 집을 많이 사보고 진짜 자기 집을 산다던가, 그러기는 어렵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도 별로 쓸데없고 혼자 책을 보며 간접 경험을 쌓았어도 글자로 배운 것과 실전은 다르다. 그래서 부모가 된 후에도 꽤나 오랜 기간 우왕좌왕하고(어쩌면 평생 헤매고), 부부간에 하루가 멀다 하고 잽을 주고받으며, "난 어른이잖아", 아무렇지 않은 척 부동산 사무실에 앉아서 계약서를 바라보면서도 속으로 이게 잘하는 계약인지 덜덜 떨고 있는 것이다.


'작가님' 소리도 준비 없이 들어서 얼떨떨했다. 출판 계약을 위해 출판사 대표님을 만났는데 꼬박꼬박 '작가님'이라고 불러 주셨다. 첫 책도 나오기 전이었다. 작가님 소리를 마치 3년 전부터 쭉 들어온 사람처럼 표정에 변화가 없는 척했지만 다 드러났을지 모른다. 내 딴에는 무표정하게 있어도 "작가님이요? 제가요? 아이고, 너무 어색합니다."라고 얼굴에 쓰여 있었을지도. 작가님으로 명명되니까 그에 어울리게 말하고 행동하느라 애쓴 것도 같다.


이 수많은 배역을 준 건 삶일까, 세월일까? 알 수 없지만 생활인으로서 여러 역할을 하다 보면 '진짜 나'는 세속에 있지 않고 깊은 산속 어딘가에 따로 있을 것 같다. 주어진 배역에 맞게 살려고 노력하다 진짜 그 역을 잘하는 사람이 되어 기쁠 때도 있지만, 배역을 충실히 해내려고 애쓰다 문득 무대 위라는 것도 잊고 '이게 진짜 나일까?' 의문이 드는 순간도 찾아온다.


'용기 있는 대학생 기자역'에 진심이던 그 시절, 상상이나 했을까? 세월이 흘러 내가 '성격 불 같은 남편을 둔 부인 역'으로 부동산 사무실에서 연기하고 있을 거라고. 혹시 그 학생 기자가 지금 내 모습을 보면 실망하지 않을지 슬그머니 걱정스러운 마음도 든다. 이 나이쯤 되면 사람과 세상에 대한 신념, 소신, 가치관 등이 더 견고해지고 거기에 걸맞은 모습으로 큰일을 하며 살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일개 소시민으로밖에 살고 있지 못하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해야 할까. 사회를 향한 젊은이의 패기나 학생 기자의 용기 같은 것은 이제 중요하지 않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말해 줘야 할까.


어쩌면 이 글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인지 모르겠다. 준비도 안 된 배역을 몇 개씩 맡아서 즉흥연기를 펼치느라 그렇지 않아도 힘든데, 시시때때로 무례해지기까지 하는 세상 앞에서 '일개 소시민' 역도 만만치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별안간 무례를 직면하는 현장이 어디 부동산뿐일까. 갑작스럽게 "네가 하는 게 뭐 있냐", 고함치는 직장 상사나 "돈 버는 것도 아니고 남편 내조라도 잘해야지"라고 핀잔 주는 시어머니, "그 나이면 40평대 집은 있어야죠", 밑도 끝도 없이 훈수 두는 이웃, 홀대나 무시는 물론이고 드물게는 사기 치거나 속이려는 사람도 만날 수 있다.


그렇게 허들 넘듯이 크고 작은 고비를 넘기면서도 속물 중의 속물이나 욕망의 노예 같은 건 안 되고, 법과 질서, 사회 정의의 테두리 안에서 케케묵은 사해동포 이념까지 마음 한 구석에 간직한 채 사는 소시민 역도 결코 쉬운 건 아니라고, 그 변명을 하려고 이렇게 긴 글을 썼다.

가끔은 더 치열하게 못 사는 내가 답답하다. 세상을 조금 더 살기 좋게 만들어 보겠다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가시밭길을 아직도 가고 있는 이들을 보면 부채감과 미안함이 밀려든다. 하지만 동시다발로 주어지는 몇 개의 역할을 열심히 하다 보면 또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때처럼 나를 구원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누군가를. 그 순간 다시 한번 손 내밀 용기가 남아 있다면 무례한 세상에 아주 지고 살지는 않을 거라고, 그럴 거라고 마지막 말은 오늘의 나한테 되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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