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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Dec 06. 2021

딸은 공부 안 시키려고요!


"전 우리 딸 공부 안 시킬 거예요. 그냥 편하게 키울 거예요. 공부하면 뭐하냐고요."


나보다 10년 이상 젊은 그녀가 울분에 차서 쏟아내는 말에 공감하면서도 사회가 꽤 변한 것 같은데 내가 10년도 더 전에 했던 대사를 왜 젊은 엄마들이 종종 똑같이 말할까,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학창 시절 독하게 공부한 끝에 남들이 꿈꾸는 '신의 직장'에 힘겹게 들어갔다.

하지만 타지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기약 없는 휴직을 하게 됐다. 작은애는 몸이 허약하고 알레르기 체질이라 위생이나 음식 섭취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했다. 집안 청소에 잠깐만 소홀해도, 외식 한번 잘못 해도 아이는 온몸이 아파서 고생을 했다. 특이 체질 아이를 키우며 입원과 퇴원을 밥먹듯이 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남편은 야근으로 바빴고 자신처럼 세심하게 아이를 챙기지도 못할 것 같았다.

아무리 좋은 직장이라도 휴직이 너무 길어지면 달가워하지 않는다. 올해는 복직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아픈 아이를 섣불리 남에게 맡길 수도 없어 또 휴직계를 냈다. 입학시험, 취업 시험, 승진 시험, 끝없는 시험 관문을 통과했건만 육아가 이렇게 발목을 잡을 줄 몰랐다며 막막한 심정을 토로하는 그녀를 보며 언젠가 한 기자가 스웨덴 공무원을 인터뷰한 글이 떠올랐다. 아이가 셋이라는 그녀에게 기자가 '아이 셋 키우면서 직장 다니기 힘들지 않으셨어요?'라고 묻자 스웨덴 공무원은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고 한다.


"아, 제 아이가 셋인 것과, 제가 직장 다니는 게 힘든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거죠?"


처음에는 상대가 일부러 모른 척하는 건가 의아했는데 정말로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거여서 당황스러웠고, 워킹맘인 자신의 고군분투가 떠올라서 잠시 비애에 젖기도 했다고. 이런 기사에 대한 반응은 정해져 있다. '복지국가니까 우리나라랑 다르다 ', 사회 민주주의 국가니까 복지가 탄탄하다', '세금을 엄청나게 걷으니까 가능한 이야기다', '우리나라도 예전보다는 좋아졌다' 등등. 어떤 부분에서는 맞다.




특히 예전보다 좋아진 것도 실감한다. 친정 엄마는 공립중학교 교사였는데도 출산 한 달만에 복직해서 몸조리도 못한 채 대여섯 시간씩 서서 수업을 했다. 아이 셋을 낳고 키우는 동안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해서 지금까지도 고생하신다. 친정 엄마랑 나랑 몇십 년 차이가 나는데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공기관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직장 다닐 때는 출산 후 3개월 간신히 쉬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고, 7개월 쉰 사람이 유난 떤다고 욕을 먹었다. 출산과 육아를 둘러싼 사회 제도만 낙후되었던 게 아니다.

얼마 전 방탄소년단이 미국에서 공연하며 '뉴키즈 온 더 블록'과 사진을 찍었던데 지금의 40대들에게 '뉴키즈 온 더 블록'은 말하자면, 거꾸로 지금 방탄과 같은 존재였다. 뉴키즈 온 더 블록 내한공연 때 소녀팬들이 공항에서 환호하는 장면을 두고 당시 9시 뉴스 앵커는 '꼴불견 추태'라고 했다. 공연장보다 너무 많은 인원을 수용한 데다가 안전 요원도 턱없이 부족했던 탓에 한 명이 압사당해 죽었을 때 뉴스 헤드라인은 "10대 광난 불상사"였다. 성폭행을 당한 여대생이 자살한 사건을 보도하면서 앵커가 "혼전순결에 대한 의식이 희미해진 지금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는 식으로 말했다. 사회 곳곳에 아동과 청소년, 여성을 향한 차별과 혐오가 난무했다.

그게 불과 20-30년 전 일이다. 조선시대가 아니고. 생각할수록 놀라운 것은 그런 멘트를 들으면서 당시 '아, 성폭행당했다니, 정말 죽고 싶었겠다'라는 생각밖에 못했던 나 자신이다. 은장도라도 품고 다니라는 건지, 성폭행당하면 자살하는 게 맞다는 건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발언을 9시 뉴스 앵커가 전 국민을 상대로 당당하게 했다. 요즘 같으면 사회면 기삿감이다.


Photo by Jonathan Borba on Unsplash


지금 우리 모습도  훗날,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아닐까? 직장 다니며 애들 키우기 힘든  당연하니 참으라는 훈계나, 그럴 거면 결혼은  했냐, 애는  낳았냐는 조롱은 세월이 흐른 후에 '그때는  원시 사회 같았네'라는 누군가의 회고 속에 등장할지 모른다.

1800년대 중반 영국, '미성년 아동 노동에 관한 영국 의회 조사 보고서'에서는 '공장이 바쁠 때 소녀들은 19시간 노동을 했고 손을 다쳐도 일절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나온다. 그나마 영국은 의회가 나서서 진상이라도 조사했지, 1970년대 우리나라 산업화 시절 열서너 살 여자 아이들이 청계 피복공장에서 16시간씩 일하는 것에 대다수 사람들이 별 문제의식을 못 느끼니 스물셋 된 청년 전태일이 몸을 불살라 알리려고 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며 개인에게 감내하라고 하는 고통이, 세월 지나 돌아보면 말도 안 되게 불합리하고 잔인한 시스템이나 사회적 편견의 문제라는 게 드러나고 그때서야 새삼스레 놀라는 거 아닐지 모르겠다.




그녀와 나눈 이야기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아 식사하다 말고 잠깐 멍하니 있었다. 따지고 보면 우리 엄마는 공립학교 교사, 나는 공공기관, 그녀도 신의 직장이었는데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힘들다고 아우성이었고 현재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비교적 법망과 제도의 보호를 받는 직업군도 그런데, 하물며 더 열악하고 영세한 곳에서 일하는 여자들은 출산과 육아의 터널을 어떻게 통과할지, 찬찬히 생각하면 내가 다 막막해진다.

"엄마, 뭐 걱정 있어?"

"아, 오늘 젊은 엄마를 만났는데 여전히 여자들이 가정과 일 사이에서 고민하는 게 참 안타까워서. 오죽 답답했으면 딸은 공부 안 시킬 거라고 하더라."

"그래? 그 딸은 안 하겠대?"

"하하, 그 딸은 아직 유아니까 아직 의사 표현은 못 해. 너라면 엄마가 너 공부 안 시키겠다고 하면 뭐라고 하겠니?"

"엄마, 전제가 틀렸잖아. 내가 공부하는 게 엄마가 시켜서 하는 거야? 난 엄마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닌데? 그냥, 내가 하는 거야."


아, 그렇구나. 내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게 아니지. 그러니까 내가 학원비나 사교육비를 대주면 그렇게 고마워하는구나. 주변 엄마들이 안 된다고 말렸지만, 나는 아이가 학원을 안 가겠다고 하면 별 미련 없이 끊었다. 학원 한 달만 쉬어도 큰일 나는 줄 아는 사람들 속에서 그렇게 하는 게 쉽지 않았고 그게 맞는 건지 지금까지도 잘 모르겠다. 1년이고 2년이고 아이가 다시 가겠다고 할 때까지 기다렸다. 아이는 어느 시점에 스스로 공부하겠다고 결심했고 부족한 부분을 혼자 채우기 힘드니 사교육을 지원해줄 수 있는지 내게 조심스레 물었다. 내가 등 떠밀어서 보내는 게 아니라 그런지 아이는 고마워하면서 다니고, 어쩌다 아파서 빠질 때조차 회차당 수업료를 계산하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자기가 불효녀가 된 것 같다며 미안해한다.

'명문대 보내기' 로드맵을 유치원 때 다 짜 놓고 아이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달리기 시작하는 엄마들이 보면 세상 느긋한 소리일 거다. 나처럼 하는 게 아이 성적에 도움은 안 될지 모르지만, 그래도 하나 확실한 건 아이가 일찍부터 자기 인생을 자기가 사는 능동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자는 공부해 봐야 부질없다는 한탄을 떠올리며 조금은 무력하게 한숨 쉬는 내게 아이가 말했다.

"공부할지, 안 할지는 그 아이가 크면 결정하겠지. 부모라고 해서 그런 걸 미리 결정할 수는 없는 거 아니겠어? 그 아이가 커서 어떤 세상을 살지 아직 모르는 거잖아."


우리 세대의 한숨을 다음 세대까지 물려주게 되는 거 아닌지 착잡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이었다. 제도적인 진전은 일부 이뤘지만 요즘 흐름을 보면 사회적 인식은 오히려 퇴보하는 것 같아 우려스러운 마음이었는데 씩씩하게 말하는 아이를 보니 왠지 다음 세대의 생명력과 역동성에 희망을 걸게 된다.

공짜로 주어지는 건 없다. 그저 묵묵히 시키는 공부하고, 시키는 일하며 직장 다닌다고 해서 불합리한 구조나 차별적 관행이 바뀌지는 않는다. 전태일뿐이겠는가. 여성에게 참정권을 달라고 외치며 경마장에서 달리는 말에 뛰어들어 목숨을 잃은 에밀리 데이빈슨, 유학파 독립운동가이자 화가, 소설가로 경계를 넘나들며 눈부신 활동을 했지만 여성에게 억압적인 사회에 맞서 싸우다 행려병자로 생을 마감한 나혜석처럼 영화와 문학 속에 자주 등장하는 여성 운동가도 있다. 결국 암살당했지만 여성은 물론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는 복지 체계를 완성해 오늘날 세계가 부러워하는 스웨덴 복지 국가 근간을 마련한 올로프 팔메 같은 정치인도 있다.

이전 세대가 목숨을 걸고 비장하게 싸워 변화를 이뤘다면 다가올 세대는 조금 덜 비장하게, 조금 더 발랄하고 즐겁게 사회 변화를 도모할 수 있지 않을까. 아이의 당찬 대답 한 마디에 너무 많은 기대를 거는 게 과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렇게라도 기운을 내고 싶은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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