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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Mar 28. 2022

저희 아이가 학습 부진아라는 건가요?


지금처럼 봄이었다. 신학기가 주는 설렘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까지 왔으니 모든 게 다 처음이었고 집 앞 슈퍼조차 새로 정을 붙여야 할 이웃집처럼 정겹게 느껴졌다. 열 살을 막 넘긴 아이를 데리고 학원 테스트를 받으러 갈 때만 해도 들뜬 기분이었다.


신도시에서 학원 정하기는 쉽지 않았다. 빈 건물에 듬성듬성 있는 학원은 대기자를 받았다. 아파트 입주는 한참 전에 끝나서 학생들은 많은데 정작 학원은 귀했다. 학생을 서로 자기 학원에 등록시키려는 타도시와 달리 이곳에서는 오히려 학원에 자리가 났다고 연락이 오면 테스트를 받고 감사한 마음으로 등록해야 했다. 그 정도 불편은 감수하리라 마음먹었던 터였다. 도서관과 공공시설을 비롯해 도시 인프라가 우수한 신도시 아니던가. 쾌적한 신도시의 활력을 누리려면 이 정도 낯설고 번거로운 상황은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르릉!"

학원 문을 열자 작은 종이 흔들리며 경쾌한 소리를 냈다. 안내 데스크에 앉아 있던 실장이 아이를 테스트받는 교실로 데리고 가며 "어머니는 휴게실에서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꽤 시간이 흐른 후에도 아이가 나오지 않아 슬쩍 교실 앞으로 가봤더니 문제가 잘 안 풀리는지 아이가 턱을 괸 채 집중하고 있었다. 괜히 초조해져서 복도를 서성였다. 한참 후 시험지를 제출하고 나온 아이는 지쳐 보였다. 답안 채점이 끝난 후 실장이 안내한 원장실로 가니 젊은 남자 원장이 가만히 결과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Photo by JESHOOTS.COM on Unsplash


"지난 학년에 배운 내용을 벌써 많이 잊어버렸네요. 흠, 이런 상황에서 수학 선행은 어려울 것 같고요, 그런데 저희는.....한 반 빼고 다 선행반, 아니면 심화반이라서요."

"그러면 그 한 반은 보통 수준의 아이들이 모인 건가요? 저는 아이가 아직 어리기도 하고, 선행이나 심화에 대해 급하게 생각하지 않아서요. 그 반에 들어가면 되지 않나요?"

내 질문에 원장은 약간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짓더니 다소 거드름을 피우며 말을 이었다.

"그 반 아이들이라고 해서 수학을 못하는 아이들은 아니고요, 학기 수업을 그냥 따라가는 반이라고 해도 사실, 뭐랄까, 학습이 부진한 상태의 아이들은 아니라서요, 좀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려 애썼지만 귀밑이 달아오르는 느낌이었다. '저희 아이가 학습 부진아라는 건가요?'. 순간적으로 그렇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어딘지 상대를 무시하는 태도로 말을 하는 원장을 보니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겨우 초등 저학년을 벗어난 아이를 두고 선행이 어쩌고 학습 부진이 저쩌고 하는 사람과 입씨름해봐야 내 아이 상태를 잘 모르는 엄마의 제 자식 감싸기로 보일 게 뻔했다.

알겠다고 짧게 대답하고 일어섰다. 머릿속으로는 40분짜리 간단한 테스트로 한 아이의 모든 것을 다 아는 양 단정적으로 말하는 그가 틀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기실에서 약간은 지루한 듯 책상에 길게 뻗은 한쪽 팔에 작은 머리를 힘겹게 올려놓은 아이를 보는 순간, 왠지 모르게 짜증스러운 마음이 밀려들었다.


'그러게, 방학 때 잊어버리지 않게 문제집 좀 꾸준히 풀라니깐, 참!'


학습에 안달복달하는 엄마가 아니라서 나부터도 아이를 느긋하게 키워놓고는, 원장의 말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으면서도 아이를 향해서 뾰족한 마음이 솟아났다. 아이는 엄마 눈빛이 달라진 걸 알아채고 풀이 죽은 태도로 조용히 따라나섰다. 못 푼 문제가 많아서 안 그래도 걱정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이에게 테스트 결과에 부담 가질 필요 없다고, '쿨한' 엄마처럼 말해놓고 테스트가 끝난 후엔 화난 사람처럼 앞장서 걸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이에게 미안해진다. 평소 같으면 "엄마, 같이 가!"라고 말했을 텐데 뒤에서 엄마 눈치 보느라 그 한 마디도 못했던 아이를 떠올리면 '약한 자아'를 지닌 부모만큼 아이에게 해로운 주변 인물이 있을까 싶다.


더구나 중학생이 된 아이가 웩슬러 검사에서 거의 영재에 가깝다는 판정을 받고 검사자 선생님이, "00 영역은 원점수가 거의 만점이에요. 상위 0.3% 내죠. 아이가 아주 머리가 좋고 똑똑합니다."라고 힘주어 말하는데 다른 의미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오래전 그 원장 말만 듣고 혹시 아이가 이과 영역에 재능이 없는 건가, 기본 교과를 따라갈 만한 소양이 부족한 건가, 섣부른 걱정을 했던 내가 떠올라서다.


물론 웩슬러 검사 또한 모든 걸 대변해 주지는 않는다. 지능과 학습은 별개라서 웩슬러 검사에서 상위 구간에 있는 학생이 반드시 학업 성취도가 높은 것도 아니며, 아이의 정서적 상태에 따라 결과치가 달라지기 때문에 한 번 나온 결과가 영구적인 것도 아니다. 게다가 우리는 오은영 선생님처럼 대중에게 알기 쉽게 설명해 주는 분을 통해, 심리적 어려움은 높은 지능을 쉽게 무력화하며 동기가 없는 학습은 꾸준하기 어렵다는 걸 잘 안다.

그러니 웩슬러 검사를 받고 내 아이가 영재네 하면서 들뜰 만큼 초보 엄마는 아니다. 다만 그 학원 원장처럼 테스트 한 번으로 학생을 '학습 부진아'로 결론 짓는 게 얼마나 위험한 태도인가를 실감했다. 거기에 부모가 동요해서 아이를 못 마땅한 시선으로 보는 것 또한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도.


예전에 아이와 같은 반이었던 A는 대안학교를 다니다 전학을 온 친구였다. 저학년 내내 산과 들을 다니며 뛰어노느라 영어 수업은 전혀 받지 못한 상태였다. 당시 우리 아이가 다니던 학교는 귀국학생 반이 있을 만큼 외국에서 살다 온 애들이 많았고 영어 유치원 출신 아이들도 흔해서 영어 듣기 평가를 어려워하는 아이는 없었다.

영어에 대한 배경지식이 거의 없었던 A는 초등 고학년이 되어 난데없이 처음 치르는 영어 듣기 평가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몇 번의 평가 결과가 쌓였을 때 담임 선생님이 A 엄마에게 면담을 요구했다. 초등 고학년인데 이토록 영어 기초가 없는 아이를 처음 본 담임 선생님은 고심 끝에 A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A의 영어 듣기 평가 점수를 쭉 봤는데요, 점수가 너무 낮아서 그러는데 저 혹시, 그게 A가 귀가 잘 안 들리나요?"


담임 선생님은 진심으로 염려하면서 물어봤다고 한다. 솔직히 나라면 아이가 그렇게 오해를 받을 정도로 점수가 낮았나, 그 생각이 먼저 들어 부끄러웠을 것 같은데 A 엄마는 마치 라디오에서 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처럼 자기 아이가 '영어 학습 부진아'가 되어 나머지 공부를 한 사연을 유쾌하게 재구성했다. 늦었지만 담임 선생님의 도움과 엄마의 코칭으로 아이는 예상보다 빠르게 또래의 영어 수준을 따라잡았고 중학생쯤 되었을 때는 자신감도 되찾았다. 훗날 전해 들은 소식에 의하면 A는 들어가기 무척 어려운 대학 부설 영재원에 다닌다고 했다.


아이들이 가진 무한한 가능성이 어른에 의해 얼마나 쉽게 훼손될  있는지, 혹은 반대로 지켜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설혹 실제로 학습을 따라가는  지능이 다소 부족해도 아이들은 부모의 지지와 학교의 안내가 있으면 결국 목표를 달성해 낸다.

<우리에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를 쓴 김누리 교수는 독일의 철학자 아도르노의 말을 인용하며 "권위 앞에서 쉽게 순종하는 약한 자아가 민주주의에 가장 위협적인 요소"라고 했는데, 부모의 불안과 조바심을 자극하는 일부 사교육 업자들에게 휘둘릴 만큼 나약한 부모는 민주주의 이전에 아이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는 장본인이 되기도 한다.


어려운 문제를 푸느라 애썼건만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못 듣고 화가 난 엄마 눈치 보며 웅크렸던 아이의 작은 어깨. 그 어깨를 감싸주지 못했던 게 지금도 안타깝다. 아이들은 부모의 시선과 평가에 따라 같은 아이인데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 버린다. 이제는 나보다 키가 커버린 아이지만, 아이 어깨를 감싸줄 만큼 더 크고 단단한 엄마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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