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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Apr 21. 2022

아이에게 칭찬을 조심하세요


아이가 중간고사를 앞두고 며칠 전부터 걱정을 많이 했어요. 이러다 자기 50점도 못 맞겠다면서. 혹시 자기가 30점이든, 50점이든 맞아도 놀라지 말라고 해서 얼마든지 괜찮다고 해줬습니다. 그런데 시험 전날, 프린트 보면서 구두로 문제 내달래서 해봤다니, 진짜 달달달달 외웠더라고요. 이만큼 외우고도 불안하면 문제집을 풀어보라 했더니, 이미 다 풀고 검토까지 했다고 해서 그럼 더 할 건 없으니 편히 자라고 했습니다.


떨지만 않으면 잘 보겠지 싶었지만 아침까지도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걱정하는 게 속으로 좀 귀여웠어요. 시험날 아침에 밥 먹으면 얹혀서 안 된다고 전날 자기가 죽도 미리 사놨다가 먹고 가는데 유치원생이 행시 준비하는 것처럼 어찌나 우습던지요. 고등학생 큰애가 있어서 그런지 중학생 주제에(?) 무슨 중간고사 공부한다고 그러나 웃겼습니다. 작은애에 대해서는 늘 태평하네요.


시험이 끝나고 제법 잘 봤다고 연락 왔어요. 실수로 한 두 개 틀린 정도? 그것도 문제를 잘못 읽어서라고, 너무 아깝다 하면서요. 그래도 기분이 좋은 것 같았어요.


"그래? 정말 기분 좋겠네~애썼어~~"

"잘했어"가 아니라 이렇게 칭찬하는 게 처음에는 좀 낯설었는데 하다 보니 익숙해졌어요. 칭찬을 "잘했다" "최고다" 결과 위주로 하는 게 굉장히 위험하다 하더라고요. 지난번에 금쪽이 프로그램에 나왔던, 강박적인 성향의 초등 고학년 아이도 엄마에게 이런 칭찬을 어려서부터 지속적으로 들었다 합니다.


Photo by Chris Liverani on Unsplash

"우리  최고" "우리  똑똑해" "누가 우리 딸만큼 빨리 배우겠어?" 모두 발언자의 평가가 내재된, 결과치에 대한 칭찬. 부모의 욕망이 투영된, 남들과의 비교 속에 나온 칭찬.

이런 게 길게 보면, 아이가 실패할 것 같은 일에는 아예 도전을 안 하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남과 자신을 지나치게 비교하면서 괴로워하는 캐릭터가 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치고요. 물론 그래도 별 영향 안 받는 애들도 있겠지만 사람은 다 다르잖아요. 그리고 애들은 부모에게 영향을 받지 않기가 쉽지 않고요. 그러니 "과정에 대한 칭찬"을 하는 게 좋고, 발언자가 아니라 아이 당사자의 기분과 감정을 읽어주는 칭찬이 필요하답니다.


실제로 큰애 친구 엄마 중에 세 아이를 참 다 건실하고 바르게 잘 키웠다 생각한 분이 있었는데 "난 애가 시험 잘 보면 애한테 한 턱 내라고 해" 한다더라고요. 좀 의외였어요. 보통 애가 시험 잘 보면 엄마가 뭐 사준다 하고, 엄마가 뭐 해준다고 하잖아요.


그 엄마 얘긴즉, 애한테 기분 좋은 일이고 경사니까 애가 한 턱 내는 게 맞다는 거예요. 그분은 저처럼 육아서를 탐독하며 연구하지도 않았건만, 정말 육아서에서 말한 엄마와 아이 분리가 모범적으로 된 사례가 아닐까 싶었어요.

그렇다고 그분이 애한테 무관심했던 건 아니에요. 당시 어렸던 그 집 셋째가 매미를 좋아했는데 나무에 붙어서 약간은 죽어가는(?) 듯한 매미를 보더니, 셋째한테 보여주면 기뻐하겠다며 그 매미를 맨손으로 잡아서 소중하게 비닐에 넣어가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그분은 엄마가 아니라 아이한테 맞춰서 세팅이 잘 되는 분이라 느껴졌어요. 전문직이라 휴직 중이셨는데 자기 일도 확실히 하면서 애한테 집중해야 할 때는 확실하게 하고. 그런 유연함이 없는 저로선 이렇게 아이 기분을 알아주는 칭찬으로 흉내라도 내봅니다.


아이가 수학은 다음날 시험을 보니까, 오늘은 잘 봤지만 내일은 망칠 예정이라고, 혹시 울면서 들어와도 놀라지 말라 해서 "그럼~" 해줬습니다. 실제로 작년 시험날은 첫날부터 울면서 들어왔거든요. 시험을 잘 본 것보다 더 기특한 건, 아이가 "작년처럼 울고 들어올 정도로 망치지 않아서 좋아. 남들이 뭐라 하던 작년의 나보다 더 잘 봤으면 됐어"라고 한 거예요. 혹시 진짜 울면서 들어와도 흔들리지 말고 꽉 안아주며 위로해야겠다 다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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