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중간고사를 앞두고 며칠 전부터 걱정을 많이 했어요. 이러다 자기 50점도 못 맞겠다면서. 혹시 자기가 30점이든, 50점이든 맞아도 놀라지 말라고 해서 얼마든지 괜찮다고 해줬습니다. 그런데 시험 전날, 프린트 보면서 구두로 문제 내달래서 해봤다니, 진짜 달달달달 외웠더라고요. 이만큼 외우고도 불안하면 문제집을 풀어보라 했더니, 이미 다 풀고 검토까지 했다고 해서 그럼 더 할 건 없으니 편히 자라고 했습니다.
떨지만 않으면 잘 보겠지 싶었지만 아침까지도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걱정하는 게 속으로 좀 귀여웠어요. 시험날 아침에 밥 먹으면 얹혀서 안 된다고 전날 자기가 죽도 미리 사놨다가 먹고 가는데 유치원생이 행시 준비하는 것처럼 어찌나 우습던지요. 고등학생 큰애가 있어서 그런지 중학생 주제에(?) 무슨 중간고사 공부한다고 그러나 웃겼습니다. 작은애에 대해서는 늘 태평하네요.
시험이 끝나고 제법 잘 봤다고 연락 왔어요. 실수로 한 두 개 틀린 정도? 그것도 문제를 잘못 읽어서라고, 너무 아깝다 하면서요. 그래도 기분이 좋은 것 같았어요.
"그래? 정말 기분 좋겠네~애썼어~~"
"잘했어"가 아니라 이렇게 칭찬하는 게 처음에는 좀 낯설었는데 하다 보니 익숙해졌어요. 칭찬을 "잘했다" "최고다" 결과 위주로 하는 게 굉장히 위험하다 하더라고요. 지난번에 금쪽이 프로그램에 나왔던, 강박적인 성향의 초등 고학년 아이도 엄마에게 이런 칭찬을 어려서부터 지속적으로 들었다 합니다.
"우리 딸 최고" "우리 딸 똑똑해" "누가 우리 딸만큼 빨리 배우겠어?" 모두 발언자의 평가가 내재된, 결과치에 대한 칭찬. 부모의 욕망이 투영된, 남들과의 비교 속에 나온 칭찬.
이런 게 길게 보면, 아이가 실패할 것 같은 일에는 아예 도전을 안 하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남과 자신을 지나치게 비교하면서 괴로워하는 캐릭터가 되는 데에도 영향을 미치고요. 물론 그래도 별 영향 안 받는 애들도 있겠지만 사람은 다 다르잖아요. 그리고 애들은 부모에게 영향을 받지 않기가 쉽지 않고요. 그러니 "과정에 대한 칭찬"을 하는 게 좋고, 발언자가 아니라 아이 당사자의 기분과 감정을 읽어주는 칭찬이 필요하답니다.
실제로 큰애 친구 엄마 중에 세 아이를 참 다 건실하고 바르게 잘 키웠다 생각한 분이 있었는데 "난 애가 시험 잘 보면 애한테 한 턱 내라고 해" 한다더라고요. 좀 의외였어요. 보통 애가 시험 잘 보면 엄마가 뭐 사준다 하고, 엄마가 뭐 해준다고 하잖아요.
그 엄마 얘긴즉, 애한테 기분 좋은 일이고 경사니까 애가 한 턱 내는 게 맞다는 거예요. 그분은 저처럼 육아서를 탐독하며 연구하지도 않았건만, 정말 육아서에서 말한 엄마와 아이 분리가 모범적으로 된 사례가 아닐까 싶었어요.
그렇다고 그분이 애한테 무관심했던 건 아니에요. 당시 어렸던 그 집 셋째가 매미를 좋아했는데 나무에 붙어서 약간은 죽어가는(?) 듯한 매미를 보더니, 셋째한테 보여주면 기뻐하겠다며 그 매미를 맨손으로 잡아서 소중하게 비닐에 넣어가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그분은 엄마가 아니라 아이한테 맞춰서 세팅이 잘 되는 분이라 느껴졌어요. 전문직이라 휴직 중이셨는데 자기 일도 확실히 하면서 애한테 집중해야 할 때는 확실하게 하고. 그런 유연함이 없는 저로선 이렇게 아이 기분을 알아주는 칭찬으로 흉내라도 내봅니다.
아이가 수학은 다음날 시험을 보니까, 오늘은 잘 봤지만 내일은 망칠 예정이라고, 혹시 울면서 들어와도 놀라지 말라 해서 "그럼~" 해줬습니다. 실제로 작년 시험날은 첫날부터 울면서 들어왔거든요. 시험을 잘 본 것보다 더 기특한 건, 아이가 "작년처럼 울고 들어올 정도로 망치지 않아서 좋아. 남들이 뭐라 하던 작년의 나보다 더 잘 봤으면 됐어"라고 한 거예요. 혹시 진짜 울면서 들어와도 흔들리지 말고 꽉 안아주며 위로해야겠다 다짐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