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맹 가리의 소설 <자기 앞의 생>에 그런 말이 나옵니다. "꿈이 오래되면 악몽으로 변한다." 주인공 모모에게 로자 아줌마가 한 말입니다. 로자 아줌마는 아우슈비츠를 경험하고 한때 매춘부로 살았으나 이제는 나이 들어 다른 매춘부의 아이들을 돌봐주는 보모 역할을 하며 지내는 인물이에요. 꿈이 악몽으로 변한다니. 젊었을 때라면 이 문장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을 거예요.
지금 읽으니 소설 속 내용과는 별개로 악몽이 되어 버렸던 내 꿈이 생각나서 공감이 갔어요. 영혼을 불태웠다 할 만큼 열심히 했노라 딱히 자신은 못 하지만, 어쨌든 젊은 날의 몇 년은 교원 임용시험만 바라봤습니다. 고시 떨어진 사람들이 다들 비슷하겠지만 너무 근소한 차이로 불합격한 뒤로 교원 임용시험은 저에게 열어보면 안 되는, 아픔을 담아 놓은 기억 상자가 되었지요.
오래전 큰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 우연히 학교 담벼락을 지나는데 점심시간에 선생님들 몇몇이 커피를 들고 담소를 나누는 장면을 보게 됐어요. 갑자기 눈물이 났습니다. 한 문제도 아니고, 반의 반 문제만 더 맞았으면 나도 저 자리에 앉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안타깝고 슬펐습니다.
그때 한참, 돈 안 벌고 집에 있는 주부를 향해서 사회가 참 야박하게 평가한다는 걸 실감할 때였거든요. 나도 종일 종종거리고 일하는데, 느긋하게 커피 한잔 마실 시간도 없이 사는데 놀고먹는 사람 취급당하는 것에 억울한 마음이 층층이 쌓이고 있을 때라 상실감이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거나 아무리 근사해 보이는 직업에도 명암이 있다는 말도 위로가 안 됐어요. 그 뒤로 한동안은 학교 근처에도 가기 싫었습니다. 교사가 되고 싶었던 꿈은 더 이상 제게 꿈이 아니라 악몽이었던 거죠.
글을 쓰면서 새 세상이 열린 것도 잠시, 이곳에도 등급이 나뉘고 대우가 다르다는 걸 차차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전처럼 꼭 일간지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지 않아도 책을 내고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설렜지만 작가 강연회에서 불쑥 "그래서 작가님은 신춘문예 같은 데 통해서 등단한 건 아닌 거죠?"라고 질문하는 청중이나, 독서모임에서 책을 냈다고 말하니 대뜸 "책은 얼마나 팔렸는데요?"라고 다소 추궁하듯이 묻는 회원을 만났고 그럴 때마다 저는 작아졌습니다.
작가로 인정받으려면 꾸준한 집필은 물론 지속적인 판매고를 올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런 데는 초연하고 오직 글만 쓰는 작가들도 있습니다. <로드>를 쓴 퓰리처상 수상 작가 코맥 매카시나 <밀크맨>을 쓰고 맨부커상을 받은 애나번스처럼 극도의 궁핍함이나 긴 무명 기간, 대중의 외면 등에도 불구하고 걸작을 쓰는 작가들이 있지만 저는 그런 위대한 면모라고는 전혀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칭찬과 인정에 목말라하는 나약한 속인일 뿐이었습니다.
어릴 때 백일장에 나가서 자주 상을 받거나 국어 선생님들에게 글을 잘 쓴다는 칭찬을 항상 듣는 문학소녀는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잖아요. 저도 딱 그 정도였어요. 있는지 없는지 모를 재능이란 건 어쩌다 잠깐 나를 스칠 뿐 그 모습을 잘 드러내 주지 않았고, 현실적으로 책을 냈다고 편집자에게 청탁 의뢰나 기획 제안이 쏟아지는 것도 아니니 과연 내가 작가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불안해졌습니다. 대중의 호감이나 출판계의 인정 여부에 아랑곳하지 않기가 힘들었어요.
불안하니까 오히려 글은 더 안 써졌습니다. 언제부턴가 SNS도 잘 안 들어갔어요. 그 이유가 다른 작가의 출간 소식을 보기 힘들어서였다는 걸 자각하고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아뿔싸, 이게 뭐지? 학교 담벼락 뒤에서 선생님들 보고 울던 그 시절 나로 돌아간 건가? 이러면 작가란 꿈도 또 악몽이 되는 건가?' 위기감이 들었어요. 어리석은 쳇바퀴에 다시 빨려 들어갈 수는 없었어요.
'보모 사진작가'로 널리 알려진 비비안 마이어는 말년에는 사진을 보관할 창고 비용조차 지불할 수 없었던 비운의 예술가로 언급되곤 합니다. 그녀의 사진은 천재적이라고 극찬을 받았지만 모든 찬사는 그녀 사후의 일입니다. 40년간 찍은 14만 장의 사진은, 사진이 보관된 창고 주인이 채무를 갚지 못해 경매에 부쳐졌을 때야 세상에 공개되었습니다.
그녀는 아이 돌보는 일을 하면서 왜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았을까요? 아무도 봐주지 않는 사진, 보여준 적 없으니 누구에게 인정받아본 적 없는 사진을 지속적으로 찍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베일에 싸인 그녀 삶의 면면을 제가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짐작컨대 사진은 그녀와 세상을 연결하는 고리인 동시에 자신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증표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저 역시 인생의 10년을 반쯤은 보모로, 반쯤은 살림꾼으로 살면서 그 일이 하찮거나 보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다른 일로 나를 표현하고 싶은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니까 독서모임도 하고 밤에 내려앉는 눈꺼풀을 치켜뜨며 글 쓰고 책도 냈겠지요. 그녀가 사진기를 놓지 않았던 것처럼, 저도 아이들을 돌보면서 오히려 끈질기게 책을 놓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녀가 일약 유명 사진작가로 데뷔해서 명성을 떨치고 싶었다면, 오로지 그 욕구 하나로 사진을 찍었다면 긴 세월 그만큼 변치 않는 열정으로 셔터를 누를 수 있었을까요? 누군가는 그녀를 비운의 예술가라고 말하지만 거리를 누비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담고 싶은 광경을 포착해 마음껏 셔터를 누른 일생이 불행하게만 보이지 않습니다.
돌이켜보면 첫 책을 낼 때 무슨 대단한 작가가 되겠다는 야심 같은 건 없었어요. 그저 정신없이 글을 쓰다가 부르르 끓는 찌개 소리에 깜짝 놀라 가스불을 끄러 총총 걷던 그 순간이 좋았어요. 찌개 올려놓은 것도 까맣게 잊을 정도로 내가 무언가에 몰입했다는 사실만으로 들떴습니다. 브런치에 올린 글에 독자가 댓글을 달았다는 '알림'이 울리면 반나절치 행복을 다 받은 기분이들었고요. 개수대에 떨어진 깍두기 같은 걸로 태어나지 않고 햇살 비치는 서재에 앉아 글을 쓰며 독자와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했습니다.
꿈을 향한 여정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감각을 잊으면 꿈은 악몽으로 변하는 것 같습니다. 고미숙 작가님 말씀처럼 봄, 여름, 가을, 겨울처럼 둥글게 순환하는 우주 속에 살면서 삶을 그저 종착역을 향해 달리는 직선으로 생각했던 건 아닐까. 합격, 성공, 명예와 같은 최종 목표의 달성 여부만 따지면 꿈은 더 이상 꿈이 아니라 짐이 되겠지요.
<자기 앞의 생>은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343쪽의 책은 "사랑해야 한다"로 마무리됩니다. 마음껏 사랑해야 이 무거운 삶을 버티게 된다는 책을 읽으며 매일 부서지지만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노트북을 열어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는 원고를 기꺼이 쓰는 저를 돌아봅니다. 글을 쓰면서 조금 더 최선의 자아가 되도록 매만지고 다듬는 시간. 모모가 사랑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인 것처럼, 저는 글을 쓰지 않고는 일상을 버티기가 힘든 사람인지 모릅니다. 꿈이 악몽으로 변하지 않도록, 쓰는 감각의 즐거움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