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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May 12. 2023

가정의 달에 생각해 보는 "노시니어 존"

노키즈 존에 이어 노시니어 존이 논란이 되고 있더군요. 한 카페에서 '노시니어 존'을 표방하며 '60세 이상 노인 출입을 제한'하자 노인 차별이란 비판이 제기되었습니다. 그런데 단골손님이라는 한 누리꾼이 '사실은 노인들 몇이 와서 카페 여사장님에게 지속적으로 성희롱 발언을 했기 때문'이라고 밝혔어요. 그러자 역시 주책맞은 노인들이 문제라며 여기저기에서 노인들이 카페나 식당에서 벌인 '진상 짓'을 성토하는 글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건을 지켜보며 우리 사회는 어떤 현상을 정교하게 세분화해서 논의하는 데 참 미숙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식당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직원에게 돌보라며 무책임하게 방치한 부모, 카페 여사장을 대상으로 성희롱 발언을 하면서도 그게 문제인 줄도 모르는 노인. 이런 게 아동의 문제이고 노인의 문제일까요?


우린 하나의 정체성만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노인이라고 다 같은 노인이 아니죠. 카페 여사장에게 손님으로 온 노인은 자신이 '갑'이라고 생각하며 성희롱 발언조차 거리낌 없이 하지만, 한여름 경비실에서 에어컨도 없이 더위를 견디는 노인은 '을' 중의 을로 까마득하게 나이 어린 입주민에게 욕설을 듣습니다. 이렇게 직장에서 모멸감을 겪은 노인이라도 막상 집에 가면 며느리에게 사소한 일로 불호령을 떨어뜨리며 '갑'처럼 굴기도 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는 갑과 을의 정체성을 왔다 갔다 합니다. 아동이 쏟은 음식물을 점원에게 치우라고 시키는 '진상 부모'나 여사장에게 추근대는 '진상 노인'의 문제는, 아동과 노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손님과 직원을 수평적 관계로 보지 않고 갑과 을 정도가 아니라 무슨 요구든 다 들어줘야 하는 상하관계 내지는 노예관계로 생각하는 삐뚤어진 인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그들의 안하무인하고 몰상식한 태도는 돈만 있으면 상대를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아도 된다는 비인간적인 사고방식에 근거합니다.



성희롱 발언 또한 노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성을 대등한 인격체로 생각하지 않고 남자보다 하등한 존재재로 바라보거나 성적 대상으로만 보는, 뿌리 깊은 가부장적 신념이 그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지요.


얼마 전 이사벨 아옌대의 <운명의 딸>을 재미있게 봤는데요, 불과 100여 년 전 이야기이건만 "아내는 자식이나 하인보다 더 권리가 없는 남편의 소유물"이었다고 해요. 중국의 경우 딸이 태어나면 신생아를 미련 없이 길거리에 버려서 개들이 뜯어먹게 놔두거나 일고 여덟 살까지 키워서 사창가에 팔아버렸다는 끔찍한 대목도 나옵니다. 우리나라 또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크게 다르지 않았고 아직까지도 변하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 경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하는 이들이 아동만 있을까요? 성희롱 발언을 하는 이들이 노인뿐일까요? 고객이 되는 순간, 갑자기 점원에게 어마어마한 '갑질'을 하는 사람이 특정 연령대나 특정 성별에만 몰려 있을까요? 그저 맘충이니 틀딱이니 혐오하고 여기저기 무슨 존, 무슨 존을 만들어 서로서로 못 들어오게 막으면 이 문제가 해결될까요?


캐나다에 사는 지인이 캐나다에서는 식당에서 아기가 울면 주변 손님들이 같이 달래준다고 하더군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항상 뒤따라오는 말이 '그들은 잘사니까 여유가 있어서다', '우리는 자기 애만 귀해서 부모가 교육을 안 하니까 화가 나는 거다'처럼 우리가 그렇게 못하는 이유만 찾습니다. 경제 규모로 친다면 대한민국도 경제 대국 10위권 내에 드는 국가입니다. 자기 애만 귀한 부모 때문에 아동이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으며 차라리 지나친 가족주의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지는 것이 타당합니다.


사람을 돈 밑에 두는 천박한 자본주의적 사고나 낡은 가부장적 신념, 극단적인 가족주의에 대한 반성 등 사회적 고민이 시작되어야 할 자리에 그저 누군가를 향한 혐오와 비난만 넘쳐납니다. 특히나 그 대상이 아동, 노인, 사회적 소수자일 때는 다분히 신나 보이기까지 합니다. 마음껏 욕설을 하며 속 시원해합니다. 생각해 보면 사회면을 장식하는 말도 안 되는 '갑질'은 사회적 지도자임을 자처하는 이들이 더 많이 하는 것 같은데 말이지요.


저는 가정의 달이니 어버이날이니 이런 인위적인 기념일이 그다지 달갑지 않습니다. 자연스레 각자 되새길 가정과 부모의 의미를, 관 주도 하에 '건강한 가정 문화 창달'에 기여한 이들에게 무슨 상을 주면서 반추하라고 하는 것도 어색하고요.


하물며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노인 공경을 할 생각도 없고 훗날 제가 노인이 되었다고 해서 살아온 세월만으로 누군가에게 존경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굳이 가정의 달에 이렇게 노키즈 존, 노시니어 존이 논란이 되는 게 씁쓸하긴 합니다.

내가 아이였을 때 기꺼이 나를 참아준 어른들이 있었던 것처럼, 나 또한 아이를 참아주는 너그러움을 지녀야 우리 사회가 세대를 이어갈 텐데 싶어서 그저 나부터  할 수 있는 '가정의 달' 작은 실천 사항을 찾아보려고요. 혈연이 아니더라도 내가 친절을 베풀 수 있는 아동과 노인은 주위에서 만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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