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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Apr 06. 2023

함부로 연민하는 위험에 대하여


오스트리아 출신 전기 작가이자 심리 분석의 대가인 츠바이크의 작품 <초조한 마음>에서는 인간의 연민을 두 가지로 나눕니다. 하나는 남의 불행에서 느끼는 충격에서 가능한 한 빨리 벗어나고 싶은 초조한 마음에서 비롯된 나약한 연민이고, 또 다른 하나는 비참한 최후까지 함께 갈 수 있는 끈기와 자기희생적인 마음을 바탕으로 하는 진정한 연민입니다. 주인공 호프밀러 소위는 하반신이 마비된 에디트에게 춤을 청하는 실수를 범하고, 이 실수를 만회하고자 성급하게 서두르다 오히려 에디트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줍니다.


자기희생까지 각오하지 않은, 얄팍한 연민이라는 것이 자칫 얼마나 큰 파국을 불러올 수 있는지 날카롭게 경고하는 작품이지요. 제목 그대로 읽는 내내 독자가 초조해져서 얇은 책이 아닌데 책장을 허겁지겁 넘기느라 빨리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쩌면 그날 아이가 저에게 말하고자 했던 것도 그런 맥락이 아니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한창 입시 준비할 때였어요. 아이가 수험생이다 보니 종일 앉아 있어야 했는데 어느 날부터 허리가 너무 아프다고 하더군요. 아침 8시면 나가서 밤 10시에 돌아오는 나날. 어른도 실내에만 종일 있으면 답답한데 아이들이 내내 앉아만 있으니 얼마나 답답하고 좀이 쑤실지 상상만으로 제 허리도 뻐근해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허리가 아픈데 앉아 있으려면 고역이겠다 싶어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했지만 명쾌한 설명을 듣지 못해 허리 전문 병원에 가서 MRI를 찍게 됐어요.


촬영을 마치고 진료비 수납을 위해 대기하다 젊은 부부를 봤습니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아내는 허리가 많이 불편한지 계속 자세를 바꿔가며 끙끙거렸고 남편은 아내를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 주려고 연신 살피며 애쓰는 모습이었습니다. 통증으로 힘들어하면서도 아내는 남편의 살뜰한 보살핌이 고마웠는지 웃으면서 뭐라고 말을 건네더군요. 애틋한 두 사람 모습에 저도 모르게 눈길이 갔어요. 그런데 수납 직원 말을 들은 남편이 금액을 듣더니 깜짝 놀랐습니다.


"네? 60만 원이요? 아, 그래요? 어, 어, 그렇군요."


생각보다 많이 나온 액수에 무척 당황한 눈치였어요. 결국 카드 몇 개를 꺼내서 각각 최대한 할부로 계산했습니다. 찬찬히 보니 두 사람 입성도 허름했어요. 낡은 운동화와 무릎이 튀어나온 해진 바지가 부부의 상황을 짐작하게 해 주더군요.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이에게 아까 본 부부 이야기를 하며 치료비를 못 내서 쩔쩔매는 모습이 안 돼 보였다고 말했습니다. 아픈 아내를 극진히 보살피느라 힘들 텐데 치료비 걱정까지 해야 하니 얼마나 막막하겠냐고, 대신 내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안쓰러웠다고요. 평소 같으면 동의하거나 자기 생각을 덧붙여 말해주는 아이가 어쩐 일인지 가만히 있었어요.


"왜? 무슨 생각해?"

"어.. 글쎄, 생각 중이야."

"무슨 생각?"

"음, 엄마, 솔직히 말하면 내가 그 사람들이라면 엄마의 이런 시선이 기분 나쁠 것 같아."


이번엔 제가 당황스럽더군요. 치료비가 없는 사람들을 안쓰럽게 여기는 시선을 두고 아이가 왜 비판적으로 말하는지 언뜻 이해가 안 갔습니다.


"내가 뭘 어떻게 한 건 아니지 않나? 당신들 불쌍하다고 가서 말한 것도 아니고 뒤에서 가만히 안쓰럽게 지켜본 것뿐이야. 사실 우리나라 의료보험 제도가 미국이나 이런 나라에 비해 좋은 것도 맞지만 아직도 사각지대가 있고 불합리한 구석이 있잖아. 난 그 순간에 그런 여러 가지 생각을 한 거라고."

"응, 엄마가 사회 문제에 관심 많은 건 나도 알고 그런 면을 항상 배우고 있어. 그런데...이건 좀 다른 것 같아서."


슬슬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어요. 뚜렷한 이유 없이 저의 선의를 왜곡해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어떻게 다르다는 거야? 내가 그들을 무시한 건 아니잖아?"

"무시는 아닌데... 뭐랄까. 너무 대뜸 불쌍히 여겼잖아. 엄마가 말한 대로 두 사람은 다정하고 사이도 좋아. 돈은 없지만 어쩌면 충분히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지 몰라. 우리가 그 사람들보다 더 큰 행복을 가졌나? 난 잘 모르겠는데? 그 사람들 입장에선 함부로 자신들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을 보면 반감이 들 것 같아.


나도 정확히 설명은 못하겠는데, 그냥 뭔가... 그저 그들은 돈이 좀 모자랐을 뿐인데 갑자기 인생 전체가 불쌍한 사람들이 된 것 같은? 나도 설명하기는 어렵네. 아무튼 돈이 엄마한테는 그렇게 중요한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어. "


Photo by takahiro taguchi on Unsplash

순간적으로 치료비도 못 내면서 어떻게 '충분히' 행복할 수 있냐고 반박하려다 아이의 마지막 말이 걸렸습니다. 사회 문제를 조망하는 관점에서 의료 사각지대가 없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돈이 없으면 행복할 수 없다고 굳건히 전제하는 것은 좀 다른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아이의 말대로 우리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했어요.


그들처럼 당장 병원 갈 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과연 저희가 그들을 불쌍히 여길 만큼 행복한 사람들이었을까요? 당시 저는 남편과 눈만 마주치면 말다툼을 벌이고 싸웠어요. 어쩌면 아이 눈에는 얼굴만 보면 싸우는 우리 부부가, 돈은 없을지언정 서로를 더없이 다정하게 바라보는 젊은 부부보다 더 불행해 보였을지 모릅니다.


운전하고 오는 내내 어색한 침묵이 흘렀어요. 아이는 뭔가 자기가 엄마 기분을 상하게 한 건가, 저의 안색을 살피면서도 의견을 물리지는 않았습니다. 저도 공연히 억울한 마음이 들어 어떤 말도 선뜻 나오지 않았고요.

사실은 알고 있었어요. 아직 정교한 언어로 표현하지 못했을 뿐 아이가 말한 모순이 뭔지. 평소에 돈과 물질의 가치에 매몰되지 않을 것을 강조해 왔으면서 정작 누군가의 행복과 불행을 가르는 절대적인 기준을 손쉽게 '돈'으로 삼은 저의 모순을요.


아이의 순수한 눈에는 다 보인 거지요. 츠바이크가 말한 성급한 연민이 갖게 되는 위험성이나, 자기희생과 헌신이 빠진 얄팍한 연민이 가진 모순 같은 걸 면밀하게 설명하지는 못했어도 알고는 있는 거예요. 그 순간 저의 무의식은 어쩌면 '나는 저렇게 치료비가 없는 사람은 아니라 다행'이라는 소시민적 자기 위안도 조금 느꼈을지 모르고 저들의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도록 작은 수고도 하지 않으면서 안쓰럽게 여기는 것으로 면죄부를 얻으려는 셈을 하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김애란 작가의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 그런 말이 나와요. 사람들이 자식을 낳는 이유는 '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래요. 이미 세상의 때가 묻은 저에게는 아이의 생각이 지나치게 티 없이 맑아서 받아들이기 버거웠던 것 같습니다. 면전에서 당신들 불쌍하다고 한 것도 아닌데 이런 생각도 못해? 처음에는 그렇게 느꼈으니까요.


그날 막히는 차 안에서 결국 마음속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올곧게 보는 아이 덕분에 제가 또 배우고 있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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