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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Mar 26. 2023

마트에서 울던 꼬마


문 닫을 시간이 거의 다가온 마트는 분주했습니다. 직원 몇몇은 야외에 내놓은 청과물을 들여놓느라 바빴고 손님들도 계산하려고 서두르는 중이었어요. 계산대 앞, 길게 늘어선 줄 한가운데서 네다섯 살 정도 된 꼬마가 손에 뭔가를 들고 엄마에게 사달라고 조르고 있었어요. 엄마가 몇 번 단호하게 안 된다고 말하자 시무룩한 얼굴로 작은 과자봉지 같은 걸 갖다 놓더군요.


엄마 말을 참 잘 듣는 기특한 꼬마라고 생각했어요. 아이는 몇 번 더 봉지를 아쉬운 듯 만지작거리다 엄마에게 돌아가서 옷을 잡아당기며 손바닥을 쫘악 펴서 보여줬습니다. 저는 딱 알겠던걸요? 엄마한테 자기 과자 갖다 놨다고 자랑하는 것 같았어요. 말 잘 들었으니 칭찬해 달라는 몸짓이었어요. 엄마는 정신없이 장 본 것을 챙기며 계산 중이었습니다. 아이가 자꾸 옷을 잡아당기자 엄마는 화가 났는지, "아, 얘가 자꾸 왜 이래? 안 된다고!"라고 소리쳤습니다. 아이는 이미 큰 결심을 하고 스스로 갖다 놨는데 말이지요. 몇 번 엄마한테 치대던 아이가 마음이 상했는지 울먹거렸어요.


그제야 계산을 마치고 장바구니를 잡아들며 아이를 쳐다본 엄마가 다시 한번 무서운 얼굴로 엄포를 놨어요. "얘가 안 된다는데 왜 자꾸 이래? 안 된다면 안 돼!". 자기 말을 못 알아듣는 엄마가 퍽 답답했던지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고 엄마는 거칠게 아이 손을 잡고 끌고 나갔어요. 아이의 억울한 마음이 뒤에서 다 보여서 달려가서 제가 해석해 주고 싶었지만 괜한 오지랖인 것 같아서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돌아오는데 자꾸 그 모녀가 떠올랐어요. 엄마는 지쳐 보였습니다. 마트 문 닫을 시간에야 부랴부랴 장을 보러 올 만큼 하루가 바빴을 거라 짐작이 됩니다. 어린아이 챙겨서 집에 돌아가면 또 일거리가 한가득 기다리고 있겠지요. 집 치우고 밀린 설거지하고, 아이 씻기고 재우고, 바쁜 하루를 보내고 또 종종거릴 젊은 엄마가 안쓰러웠던 건 아마 그 시절 제가 생각 나서였을 거예요. 울먹이던 꼬마가 눈에 밟혀 따라가서 아이의 말을 대신 전해주고 싶었던 건, 역시 지치고 바쁘고 우울하기까지 한 엄마한테 제대로 관심받지 못하고 힘들었던 큰아이가 생각 나서였을 거예요.


벌써 15년 전쯤일까요? 큰애가 마트에서 본 꼬마 나이쯤이었어요. 갓난아기인 둘째 업고 저녁 차리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는 엄마를 보며 제 딴에는 엄마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나 봅니다. 공들여 만든 레고 2층집을 조심조심 들고 와서 "엄마, 이것 좀 봐", 한껏 다정하게 말을 걸었지만, "뜨거운 거 있는데 위험하게 왜 자꾸 부엌에 와? 방에 가서 놀아!"라고 저는 신경질적으로 소리만 질렀어요.


지칠 대로 지쳐 있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빠듯한 살림일지언정 좀 요령껏 도우미 아주머니도 부르고, 반찬도 대강 사 먹이고 남편한테 이렇게는 못 살겠다고 악에 받쳐 소리라도 질러서 우울한 마음을 털어냈어야 하는데 모든 게 서툴기만 했던 젊은 엄마는 그저 자기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것밖에 방법을 몰랐어요.



지금도 레고 집을 들고 시무룩하게 돌아서던 아이의 작은 어깨가 생각나요. 저녁 한 끼 대충 먹으면 어때서 돌아서던 아이를 불러 세우지 않았을까 마음이 아픕니다. 그나마 이렇게 제가 기억하는 장면이면 다행이죠. 어른만큼 말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지도 표현하지도 못했을 어린아이가 겪었을 억울하거나 서글픈 순간들은 얼마나 많았을까요.


오은영 선생님이 자식의 감정을 갖고 시비를 가리지 말라 했지요. '네가 그렇게 느끼는 건 네가 너무 예민하기 때문이야, 네가 오해한 거야, 엄마아빠가 널 사랑하는 걸 몰라서 그래'라는 합리화는 필요 없어요. 아이가 서운하면 서운한 거죠. 억울하면 억울한 거죠.

구체적인 사건은 다 기억 못 해도 그때 느낀 감정은 아이에게 남아 있어요. 제대로 풀지 못했다면 부모에게 서글프고 힘겨웠던 감정은 아이 몸 어딘가에 떠돌고 있다가 여러 형태로 나옵니다. 사춘기 아이라고 갑자기 반항하게 되는 건 아니에요. 부모가 모를 뿐(많은 경우 아이도 모르죠) 감정과 사연이 차곡차곡 쌓이다가, 아이에게 조금 힘이 생기면 터져 나오게 됩니다.


며칠 전 작은애가, 제가 보기에는 사소한 사건을 갖고 화를 냈어요. 제가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했는데도 좀처럼 마음을 풀지 않더군요. 방문 닫고 들어가서 말하고 싶지 않다고 시위하는 아이를 보며 저도 잠깐 부아가 치밀었지만 마음속에 해석기를 돌렸어요. 마트에서 본 꼬마처럼 아이의 언어는 번역이 필요하잖아요. 아이가 방문 닫고 찬바람 일으킨다고 해서 똑같이 냉랭하면 제가 어른인 이유가 없겠지요.


아이가 좋아하는 간식을 사들고 이야기 좀 하자고 살며시 들어갔더니 뾰로통한 얼굴로 바닥만 보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이 입장에선 꽤 억울하다 느낄 만한 이전의 몇몇 사건들이 있었어요. 아이가 단순히 한 번의 사건으로 그렇게 마음이 상한 건 아니었던 거죠. 말해 봤자 해결이 안 될 것 같아서 말하고 싶지는 않고, 그렇다고 마음이 안 풀리니 표정도 풀리지 않고 그랬던 거지요.


저와 이야기하며 속마음을 털어놓은 아이는 한결 가볍고 밟은 표정이 됐어요. 이제는 알겠어요. 아이의 침묵시위는 엄마가 미워서 하는 게 아니라 '엄마, 엄마가 용기 내서 저에게 말 좀 걸어 주세요', '내가 이렇게 문 닫고 빗장 채워도 엄마가 두드려 주세요', '이대로 엄마가 문 밖에서 안 들어올까 봐 사실 나도 무서워요'라는 마음의 총합이라는 걸.


큰애한테 평생 초보엄마로 실수 연발이었던 엄마가 작은애한테는 조금 더 여유를 갖게 되네요. 이제는 독립해서 엄마 곁을 떠난 큰애에게 '엄마 키워주느라 애썼다' 고맙고 애틋한 마음을 보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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