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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May 15. 2023

저도 어버이날 전화 한 통 못 받았는데요.

얼마 전 어버이날이었지요. 제가 종종 가는 온라인 카페에서 어버이날을 전후로 장성한 아이들이 해준 카네이션과 각종 선물 사진이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키워준 부모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 아이들을 기특해하는 것까지는 저도 좋아 보였는데요, 어버이날이 끝나갈 무렵에는 차츰 성토의 장이 되는 거예요.


'어버이날이 끝나도록 전화 한 통이 없다, 꽃 한 송이 없이 빈손으로 집에 들어왔다, 저녁 한 끼 같이 먹고 싶다 했는데 바쁘다고 한다'며 서운한 마음을 토로하는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어요.나중에는 '자식 키워봐야 아무 소용없다'거나 '요즘 애들 풍족하게 커서 저밖에 모른다'는 세대 갈등으로 치닫더군요.


사실 저도 어버이날 전화 한 통 못 받았었어요. 어버이날인데도 조용하길래 제가 가족 단톡방에 "얘들아~ 어버이날이다!" 공지했더니 큰애가 간신히 한 마디 톡 올렸습니다. 작은애는 그나마도 대답이 없었고요. 저도 마음 한편 서운함이 조금 올라왔는데 며칠 후 큰애한테 긴 카톡이 왔어요. 그날 학교에서 힘든 일이 있었더라고요.


아무 걱정 없어 보이는 대학생같지만 저마다의 고민과 사연이 하나도 없을 리가 있나요. 저 또한 대학교 때 세상 모든 아픔을 짊어진 것처럼 마음이 힘든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힘겨운 마음을 담담히 쓰고 있었지만 행간에서 거의 통곡하고 있는 게 느껴졌어요. 문득 어버이날 전화 같은 거 없어도 되니 아이가 힘들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옛 어른들이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며 소식 없는 누군가를 향한 서운하거나, 약간은 괘씸하기도 했던 여러 마음들을 다스렸던 게 떠올라요.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네 싶어요. 아이가 힘들어하는 걸 지켜보자니 서운했던 마음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그저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돌이켜보면 애들 어릴 때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얼마나 많은 카네이션을 접어서 주고, 수많은 그림 편지를 써서 주었나요? 큰애는 수험생으로 입시 준비하는 바쁜 와중에도 꽃과 선물을 챙겨서 줬었지요. 유아부터 고등학생이 되도록 매년 받다 보니 나중엔 무감해지기도 했어요. 그렇게 매년 줄 때는 당연하게 여기다 어쩌다 한번 넘어간 해가 생겼다고 서운해하거나 심지어 발끈하며 괘씸해하다니요.


게다가 애들 어릴 때 효도는 이미 다했잖아요. 예전에 저보다 한참 나이 많은 이웃 아주머니가 "애들은 세 살까지 평생 할 효도는 다 한 거야"라고 했었어요. 그때까지 정말 예쁜 짓 얼마나 많이 하고 얼마나 많은 기쁨을 줬나요.

아이들이 어릴 때 나한테 준 벅찬 순간들, 돌이켜보면 힘들었던 시절마저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내가 살아갈 힘이 되어줬습니다. 친척들 모두 팔 벌리고 아이를 얼렀지만 오직 나만 바라보며 아장아장 걸어오던 아이. 누가 그토록 절대적으로, 맹목적으로 나를 사랑해 줄 수 있을까요. 내가 아이들을 키운 것 같지만 아이들이 나에게 살아갈 이유가 되고 동력이 되어줬어요.


어버이날 아무 이벤트 없이 끝나는 줄 알았던 그날 작은애가 밤늦게 카톡을 보내왔어요. 어릴 때 쓴 장문의 편지에 비하면 정말 간소해진 문자였어요. 요즘 사춘기라 그런지 예전만큼 살갑지는 않은, 이모티콘 하나 없는 건조한 카톡이었지만 읽는 순간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16년 동안 키워줘서 고마워. 가끔 힘들게 하고 속상하게 해서 미안해. 그래도 항상 사랑하는 건 알아줬으면 좋겠어. 항상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해."


어버이날 아무 연락도 없어 저처럼 조금 서운했던 분들이 계시다면 아이도 바쁘고 힘든 사정이 있어 연락을 못한 거라 생각하시길요. 우리 젊었을 때, 부모님이 보기엔 아무 걱정 없이 놀고 다닌 것 같았지만 그 나름대로 삶의 무게를 느끼고 힘들기도 했잖아요. 지금도 노인이 된 부모님들이 "옆집 아들은 뭘 해줬다.""앞집 딸은 뭘 사 왔더라", 이런 비교하면서 나무라듯 말씀하시면 안 그래도 사느라 바쁘고 고달픈데 부모까지 마음에 짐을 얹어주는 현실이 더 버겁게 느껴지잖아요.


우리 애는 진짜 노느라 연락이 없었다고요? 그것도 다행인 거죠. 즐겁게 지낸다는 거니까요. 애들 어릴 때 카네이션과 편지 실컷 받았으니 저는 더 욕심 안 내려고요. 해주면 좋은 거고 안 해줘도 괜찮습니다. 그저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웃으면서 살아준다면, 그게 최고의 효도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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