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는 자식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by 은수

(지난번 글 <딸아이의 페미니즘>,

그 이후의 이야기를 궁금해하시는 독자들이 있어서 이번 추석 이야기를 써 봅니다. )


이번 명절, 시어머니께 며느리는 자식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며느리든 사위든 '우리는 가족'이라며 어떤 유대를 강요하는 시대는 점점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친밀감이 쌓여서 저절로 가족 같은 분위기가 되면 모를까, '내 자식이랑 결혼했으니까 너도 내 가족이야'라는 압박은 오히려 정스러운 마음이 자연스레 스며들 여유마저 빼앗습니다.


저희 시댁 또한 며느리도 한사코 자식이라고 주장하시는 분위기입니다. 저를 낳고 키워주신 부모님은 친정 부모님입니다. 평생을 바쳐 저를 키워주신 부모님도 저에게 바라는 게 없으신데 시부모님이라는 이유로 지속적인 관심과 효도를 바라시니 사실 지치더군요.




권리는 없고 의무만 가득한 자식...

손님도 아니고 가족도 아닌 애매한 위치...

누가 자식한테 아프거나 말거나 시댁에 오라고 부담을 주나요.

누가 손님한테 그렇게 산더미 같은 설거지며 요리를 당연하게 시키나요.

누가 가족한테 어린 아기 돌보느라 정신없는데 안부 전화 안 했다고 역정을 내나요.

진짜 자식인 아들한테는 안 하는 훈계를 왜 남의 자식인 며느리한테 하나요.


사실 저도 오랜 기간 '나 하나만 참으면 이 가정에 평화'란 생각으로 많이 삭이며 살았는데

그렇게 참는다고 시부모님의 행복지수가 쑥쑥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끊임없이 더, 더, 더를 바라셔서 서로 갈등만 깊어지더군요.


그래서 선을 긋기로 생각을 바꿨습니다.

며느리도 자식이라고 하시며 또 뭔가 말씀하시려는 시어머니한테 못 박았네요.

며느리는 자식 아니라고요.

병원에서 수술받을 때도 며느리가 보호자 사인하려고 하면

가족 아니라고, 아들 데려 오라고 하는 의사들도 많다고요.

아들이 아프면 아들 걱정에 전전긍긍하시면서

며느리가 아프면 '네가 아프면 우리 아들 못 챙겨줄 텐데 어쩌냐' 걱정하시는 모습에

서운해하지 않을 테니 어머니도 '며느리가 자식'이라고 안 하셨으면 좋겠다고요.



결혼하는 순간, 배우자의 부모가 갑자기 내 부모처럼 너무 애틋하고 가깝게 느껴지는 건 아닙니다.

하물며 의무만 가득한 '자식'의 위치에 놓으시려 하면 마음은 저만치 더 멀어집니다.




언젠가 어머니가, 영화 '나의 특별한 형제'를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들도 크고 작은 갈등으로 관계가 단절되는 삭막한 세상이지만

피 한 방울 안 섞여도 저렇게 서로에게 위안과 기쁨이 되는 관계도 있음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영화 속 인물들처럼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날 때 며느리와 시부모 사이에 흐르는 깊은 강도 어쩌면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른잖아요.


'귀한 내 아들하고 결혼했으니까 마땅히 시부모에게 잘해야지',

라는 며느리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얼토당토않은 기대와 보상심리가 아니라

세월 속에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노력하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이 쌓이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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