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엄마가 불편하지만

by 은수

엄마들 수업에서 노키즈존에 대한 글을 쓰고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각자 노키즈존을 두고 여러 의견과 경험담, 서러웠던 기억 등을 들춰내며 갑론을박 토론을 벌였는데 한 엄마가 "엄마도 엄마가 불편해요."라고 말했다. 듣고 보니 그렇다. 아이의 돌발행동은 주변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하지만 사실 뜻대로 통제되지 않는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엄마가 제일 힘들고 불편하다.

사람 많은 곳에서 아이는 누워서 온 거리가 떠나갈 듯 울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리고 수군대는 상황에서 나 또한 "저 그렇게 지각없는 사람 아닙니다! 학교 다닐 때 공부도 잘했고 직장 생활도 똑 부러지게 했는데요, 아이만큼은 제 뜻대로 안 돼요. 키워 본 분들은 아시죠?"라고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다. 아이의 울음이 길어지니 그런 의욕도 사라지고 그저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은 마음만 들었다. 길바닥에 누운 아이 옆에 '엄마는 부재중' 입간판이라도 세워놓고 잠시 없어지고 싶었다.




부재중이 용납되지 않는 엄마의 삶은 그 자체가 커다란 불편함인지 모른다. 아기를 두고 엄마가 화장실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물리적인 구속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가 웬만큼 커도 '엄마'라는 심리적 압박에서 완벽하게 자유롭긴 힘들다. 하다못해 학교 준비물을 빠뜨린 아이가 발을 동동 구르며 전화하는 사람도 엄마고, 학교에서 아이가 말썽을 부린다면 담임선생님이-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아빠가 아니라 엄마에게 연락하지 않는가.

사회적인 역할에 이어 나에게 가장 크게 다가온 부담은 아이에게 매 순간 정서적인 지지자가 되어 주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육아서에서는 엄마라면 아이가 마음 놓고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굳건한 대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상 누가 뭐라고 해도 아직은 연약한 존재인 아이를 흔들림 없이 품어서 아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도록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부모님에게 편안하게 뿌리내린 기억이 없는데 갑자기 ‘엄마인 너는 아이에게 탄탄한 토양이 되어야 한다’고 하니 어리둥절했다. 받아본 기억 없는 따스한 사랑의 햇살을 얼른 아이에게 내리쬐어야 할 것 같아 초조하기도 했다.




내가 '나의 엄마'에게 느끼는 감정은 연민에 가깝다. 나에겐 그 시절 흔히 그렇듯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그러나 그 시절 흔치 않게 대학까지 나오고 교사였던 어머니가 있었다. 갈등은 끊이지 않았고 부모님의 언성이 높아질까 봐 조마조마한 나날은 계속됐다. 아버지의 고집을 못 꺾고 학교를 그만둔 엄마는, 인생의 회한을 자식들에게 화내는 걸로 푸셨다. 영문을 모른 채 시시때때로 혼나면서도 엄마를 미워하기보다는 내가 잘못한 탓이라고 여겼다. 세월이 흘러 엄마가 느꼈을 상실감을 많이 이해하게 됐고 같은 여자로서 연민도 느꼈지만 엄마의 복잡한 내면을 이해하기에 오래전 나는 너무 어렸다.

지금도 누군가의 에세이를 읽다가 '한 순간도,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고 오직 사랑으로 날 키워주신 우리 엄마', '내가 태어난 그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응원과 사랑을 주신 어머니' 같은 문장을 보면 책을 덮어 버리곤 한다. 나는 그런 문장을 빈 말로라도 쓸 수 없다. 그 사실에 가끔 화가 나고 얼굴도 모르는 작가들에게 질투심도 느낀다.

엄마를 향한 가슴속 멍울이 풀리지 않은 내가 아이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는 건 마른 행주 쥐어짜는 격이었다. 책에서 배운 대로 열심히 '사랑의 대사'를 읊었지만 아이들은 진담인지, 농담인지, 가끔 '엄마, 꼭 책 읽는 것 같아'라고 말했다. 안정된 가정환경에서 건강한 사랑을 받고 자란 이들이 이상적인 부모가 되고, 교육 방식도 대물림된다는 말이 무서웠다. '당신은 좋은 부모가 되기엔 애당초 틀렸어'라는 말로 들렸다. 그 사슬을 끊고자 무던히 애썼고 좋은 엄마 흉내라도 내보려고 몸부림쳤다.


나의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실행되려면 역설적으로 나의 엄마와는 거리를 두어야 했다. 엄마를 볼 때마다 예전 기억이 떠올라 거북한데 오래전 양육방식에 대해 별다른 반성이 없는 엄마 모습을 보면 잠재된 분노까지 건드려졌다. 이 분노를 다스리려고 모래놀이 상담도 받아보고 심리학 책 독파에도 열을 올렸다. 도움이 안 된 것은 아니지만 오랜 세월 축적된 응어리가 몇 번의 상담이나 책 몇 권으로 쉽게 풀리지 않았다. 방법은 되도록 엄마를 내 인생에서 '차단'하는 거였다. 기본적인 도리는 하지만 엄마랑 자주 연락하지 않고 대화도 길게 안 했다. 내가 그러는 걸 우리 아이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은 크게 의식하지 못했다. 어쩌다 아이들이 지나가듯 물어보면 '엄마가 사춘기 때 외할머니랑 사이가 안 좋아져서 지금까지 그래'라고 얼버무리곤 했다. 그날도 엄마에게 온 전화를 서둘러 끊기 바빴다.


“아, 알았어요. 바빠, 끊어요.”

옆에서 듣던 큰아이가 물었다.

“외할머니야?”

“어.”

“외할머니한테 왜 그렇게 쌀쌀맞아?”

“뭐가?”

“아직도 30년 전 일 때문에 화 나 있는 거야?”

“내가 뭘.”

“엄마 어릴 때 일은 내가 잘은 모르지만 어쨌든 외할머니한테 감정이 안 좋다는 건 아는데... 그래도 외할머니한테 좀 친절하게 했으면 좋겠어.”

“이 정도면 친절한 거지 뭐.”

어째 엄마랑 아이 역할이 바뀐 듯해 오히려 더 심통난 사람처럼 말했다. 잠시 가만히 있던 아이가 말문을 연다.

“엄마, 예전에 쿠키 죽었을 때 생각나?"

아이가 키우던 햄스터다.

"그때 말이야, 쿠키를 잘 못 챙겨줬던 게 생각나서 너무 괴로웠어. 정말 잘해주고 싶은데 쿠키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더라. 미국에 가도 싱가폴에 가도 산에 가도 바다에 가도 쿠키는 없어. 아무리 잘해주고 싶어도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어. 아무리 아무리 원해도 챙겨줄 수가 없어. 세상 어디에도 없으니까.”

“.......”

“잠깐 키운 동물도 그런데 하물며 ‘엄마’라는 존재는 어떨 것 같아? 외할머니는 오래 사셔야 하고 오래 사실 거지만 그래도 이제 적은 연세는 아니잖아. 언젠가는 외할머니랑 헤어져야 할 때가 올지 몰라. 나는 만약 엄마 없으면 어떻게 살까 싶은데.... 엄마는 외할머니를 세상 어디에서도 만나지 못하는 날이 오면 어떨 거 같아?"

아이를 보고 있던 시선을 돌렸다. 눈물이 날 것 같은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난 말이야, 엄마가 그때 가서 잘해드릴걸 하고 후회하고 힘들어할 게 너무 보여. 그래서 가슴이 아파.”



첫째에게 엄마는 영원한 초보 엄마다. 모든 순간이 처음이니까 늘 서투르고 부족하다. 나도 좋은 엄마 흉내를 내려고 퍽 애썼지만 첫째에게 편안한 엄마가 되어준 시간은 15년 통틀어봐야 며칠 안 될 거다. 일이 많아 쫓기듯이 바쁜 엄마였다. 일이 없을 때는 우울한 엄마였다. 아이가 마음 편히 뿌리내리기 힘들었다. 때론 바람에 날리는 모래처럼 가벼웠고 때론 암석처럼 메마르고 딱딱했다. 기름진 땅 같은 엄마가 되고자 버둥거렸지만 쉽지 않았고 어쩔 때는 이상적인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오히려 압도당해 엄마 주변에서 애처롭게 맴도는 아이에게 이리 오라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데 인색했다. 아이는 많이 외롭고 힘들었을 거다.

레고로 만든 작은 집을 보여주며 엄마가 웃어주길 기다렸던 아이. 그 아이가 어느새 훌쩍 커서 엄마를 걱정해 주고 있었다. 영화 맘마미아에서 메릴 스트립이 딸을 애잔하게 바라보며 'slipping through my fingers'를 부르는 장면이 떠올랐다.


'눈 비비며 아침 식탁에 마주 앉아

그 소중한 시간 그냥 보냈지.

그 애가 간 뒤에 미안한 맘에 사로잡혀

죄책감마저 느꼈어.

(중략)

잡아보려 해도 언제나 내 곁에서 멀어져 갔어.

노력할수록 내 손에서 빠져나갔어.

나는 정말 그 앨 잘 알고 가깝다고 생각했지만

자꾸 볼수록 내 곁에서 멀어져 갔어.

시간을 멈추게 할 수는 없을까.

그 행복했던 모습으로 돌아갈 수는 없나'


언제 이렇게 컸니. 아이는 금세 자란다는 걸 실감했다. 눈물이 흐르는 걸 숨기려고 방문을 닫고 혼자 가만히 침대에 걸터앉았다.

전문 상담사의 상담으로도, 저명한 심리학자들의 책으로도 가라앉히기 힘들었던 성난 마음. 유년 시절 받은 상처에 대한 분노가 큰아이의 진심 어린 한 마디 한 마디로 많이 차분해지는 걸 느꼈다. 아이가 이토록 간절히 원하는데 내가 좀 더 성숙한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됐다. 엄마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지난번 보내준 반찬 잘 먹었다는 인사를 깜빡했다고 말씀드리니 무척 좋아하시는 눈치다.




가끔 엄마도 엄마 노릇을 훌훌 벗어던지고 싶을 때가 있다. 받아본 적 없는 완벽한 사랑을 아이에게 주려고 발버둥 치다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혹여 내가 딱딱하고 메마른 돌덩이 엄마일지라도 아이와 주고받는 사랑이 풍화 작용을 일으켜 조금씩 부드럽고 기름진 땅으로 바뀌게 된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완벽한 엄마가 되려는 내 욕심이 오히려 나를 불편하게 했음을. 아이를 낳는 순간 바로 엄마가 되는 게 아니라 아이와 시간을 보내면서 차츰 엄마가 되어 가는 거였다.

고마워, 우리 딸. 엄마 노릇이 불편하다고 느낄 때마다 오늘 이 장면을 떠올려야겠다. 유년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어른아이에 머물러 있는 엄마를 이토록 어른스럽게 위로해 준 너와의 이 장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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