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 이집트
카이로로 가는 비행기에서 본 풍경은, 내가 본 가장 특이한 하늘 위 풍경이었다. 세상천지에 있는 것이라고는 모래뿐이다. 간혹 사막 위로 길게 흔적을 남긴 물줄기 같은 것이 보이긴 했다. 그러나 그 너머에는 어김없이 모래뿐인 바다가 펼쳐졌다. 착륙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올 때 즈음, 갑자기 신기루처럼 거대한 도시가 펼쳐졌다.
색채가 전혀 없는 그 풍경은, 도시라기보다는 대지에 촘촘하고 잘게 새겨진 생채기 같았다. 벌써 손에 땀이 나고 심장이 뛴다. 낯선 도시에 비행기가 착륙하는 이 순간을 나는 무척 좋아한다. 낯선 것에 대한 기대와 약간의 두려움, 그리고 그런 두려움을 덮어주는 엄청난 호기심. 게다가 이곳은 인류의 모든 역사와 비밀을 간직한 이집트가 아닌가. 동시에 아프리카라는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어줄 장소다. 오직 이 순간을 위해 바퀴벌레가 득실거리는 나이로비에 꼬박 3일을 더 머물렀다.(케냐에서 이집트로 가는 항공편은 일주일에 한 편 뿐이다.)
카이로 공항에서 비자를 발급받고, 밖으로 빠져나가자마자 심상치 않은 열기가 온몸을 감싼다. 아아. 그렇지. 여긴 사막 한가운데였지. 가만히 서서 숨을 쉬는 것도 버거울 만큼 뜨거운 공기였다. 가끔 부는 바람에 스치면, 굵은 땀방울 위로 모래가 엉겨 붙었다.
시내로 가는 내내 버스 창밖으로 색채 없는 누런 색의 건물들이 이어졌다. 거리의 간판 위에는 그림인지 글자인지 알 수 없는 문자가 아로새겨져 있었다. 숫자를 포함해 내가 읽을 수 있는 글자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라비아 숫자를 발명한 이들의 선조들이 봤다면 땅을 치며 분노했을 풍경이었다.
시내 중심지인 타흐릴 광장(Tahrir Square)은 상황이 더 좋지 않았다. 모래뿐 아니라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에서 시커먼 매연이 뿜어져 나왔다. 하얀 옷을 온몸에 걸치고 터번까지 둘러쓴 남자들이, 이곳이 중동에 가까움을 보여준다. 이 폭염 속에서도 꿋꿋이 온몸을 새까만 천으로 감싼 여인들은 여기저기서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등에 하얗게 엉겨 붙은 소금 덩어리들이 아니었다면, 뒤에다 대고 인사를 하는 풍경도 쉽게 벌어질 것 같았다.
참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도로에 차선이 없었다. 중앙선도 지워질 듯 말 듯 하다. 서로 물고 물려 뒤엉킨 차들의 경적소리가 가뜩이나 없는 정신을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 사실 이 정도는 애교에 불과했다. 횡단보도도 없다. 차들은 차선을 지키지 않고(사실 차선이 없으니까), 사람들은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지 않는다. 아니, 횡단보도가 없어도 사람들은 잘만 다닌다. 타흐릴 광장은 좌우 8차선 도로인데도 말이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도시의 가장 큰 거리는, 그렇게 차와 사람이 뒤엉켜 지옥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숙소에 도착해 엉겨 붙은 땀을 씻어낸 후 다시 거리로 나온 시간은 오후 1시. 지금 피라미드를 보러 갔다가는 미라가 될 거라는 숙소 직원의 말을 호기심은 잠시 묻어 두기로 했다. 바뀐 목적지는 이집트 박물관. 카이로에서 태양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막상 박물관에 들어서고 나니 잠시 헛웃음이 났다. 상상했던 모습은 파리의 루브르였지만, 내가 본 것은 일종의 헌책방 같은 모습이었다. 인류의 시작을 알리는 고대 문명의 유물들이 제 자리를 찾지 못한 채, 벽과 통로에서 온통 방황 중이다. 사진촬영은 금진데 만지는건 상관이 없는걸까.
이집트가 어떤 곳이던가.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다. 꼭 투탕카멘의 저주가 아니더라도, 이집트는 모든 미스터리의 원조이자, 소년소녀들의 꿈이었으며, 모험의 시작이었다. 그런 문명의 유물을 모아놓은 장소에서, 화장실에 다녀오다 짚은 벽이 알고 보니 상이집트(기원전 4000년) 시절 무덤에서 발굴한 벽화라던가 하는 어이없는 장면이 계속 연출된다.
엉터리에 가까운 연출력에도 불구하고, 이집트의 유물은 몹시 흥미로웠다. 사람 하나 죽는 것이 정말 큰 일이었던 이집트답게, 대부분의 유물은 무덤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죽음을 대하는 방식은 시대마다 나라마다 다르지만, 이집트인만큼 강한 집착을 보인 인류는 드물다. 그들은 일단 시체의 내장을 제거하고 썩혀서 미라로 만들었다. 그리곤 시체의 얼굴에 금으로 만든 마스크를 씌운다. 나무로 된 관을 짜고 그걸 덮는 석관을 또 하나 만든 뒤, 마지막으로 거대한 석관을 또 만든다. 석관에서 발굴된 미라들은 머리카락까지 온전히 남아있었는데, 죽을 당시의 표정이 유골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듯했다. 그러고 보면 영화에서 이집트 미라가 무덤을 박차고 나오는 것은 죄다 엉터리다.
다음 날 아침에는 피라미드로 가기 위해 서둘렀다. 싼 물가를 이용해 택시를 탈까 고민도 했지만 세계일주 여행가의 자존심이 있지, 라며 굳이 대중교통을 타기로 했다. 그러나 내가 평정심을 유지한 것은 딱 거기까지였다. 숙소에서 충분한 설명을 들었기 때문에 버스 번호, 정류장의 위치, 내릴 곳까지 정확했다. 그러나 이집트에서는 심각하게 영어가 통하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아랍인이지만 아라비아 숫자를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의 숫자는 분명 '0'같이 생겼는데, '5'란다. 버스정류장에서 헤맨 지 약 30분 만에 나는 숯처럼 타들어 갔고, 결국 택시를 잡아야했다.
“기자 피라미드로 간다고? 카이로에 왔으면 다슈르, 멤피스까지 봐야지. 세 군데 모두 들리고 다시 타흐릴로 오는데 50달러 어때?”
짧은 영어가 가능한 택시기사를 골라서 탔더니 그는 쉬지도 않고 상품을 팔아댔다. 기사가 영업을 하는 동안 창밖으로 이 도시의 유일한 푸른색인 나일강이 지나갔다. 그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것도 잠시, 기사가 자꾸만 나를 재촉해댔다. 별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잇츠 업 투유'라고 대답하고는 10초도 채 지나지 않아 가격을 낮춰 다시 재촉한다. 그래도 거절하니 35달러, 곧 30달러까지 내려갔고, 더위 때문에 귀찮다고 하자 에어컨을 꺼버린다. 오기가 발동한 나는 결국 20기니(약 4,000원) 만 내고, 기자 피라미드의 티켓 매표소 앞에 내렸다.
피라미드에 대한 실망은 그때부터였다. 매표소에서도 확연히 보이는 세 개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에 시선을 빼앗기는 것도 잠시, 티켓을 사기조차 쉽지 않다. 차이니즈? 라면서 들러붙는 이집트인들은 티켓 판매원을 사칭하기도 하고, 아예 가짜 티켓을 싼 가격에 팔기도 했다. 그 끈질김과 뻔뻔함은 정말이지 내가 본 그 어떤 곳과도 차원이 다른 수준이다.
적어도 나는 좀 더 드라마틱한 만남을 꿈꿨다. 오이디푸스가 정답을 맞히자 그 자리에서 자살했다는 괴물 스핑크스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부터 고대해왔던 만남이었다. 그러나 카이로에서 피라미드를 관람하는 일은, 스핑크스의 퀴즈를 맞히는 것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다.
일점돌파라는 각오로 매표소를 거쳐 유적지로 들어서니, 이번에는 낙타를 탄 상인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었다. 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다가와 낙타를 타라고 권유한다. 거리와 요금이 제멋대로인 것은 당연하고, 타지 않겠다고 하니 낙타가 침을 뱉었다. 그 치욕을 견디고 마침내 스핑크스 앞에 서서 카메라를 꺼내 들면, 이집션들의 공격이 절정에 달한다.
가는 곳마다 10대 소년 하나가 찰싹 붙어 사진을 대신 찍어주고는 끊임없이 박시시(팁을 의미)를 요구했다. 사진 한 장에 1페소라고 해야 200원일 뿐이지만, 돈의 문제가 아니라 이 찬란한 유물에 집중을 할 수 없게 만든다. 코가 떨어져 나간 스핑크스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낄 새도 없는 것이다.
이들의 박시시 타령은 정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거대한 피라미드 세 개를 한 컷에 담을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말에 결국 낙타에 올라 미리 약속한 요금과 팁까지 지불했다. 그런데 촬영 장소까지 가기도 전에 다시 팁을 요구한다. 아까 분명히 팁을 주지 않았느냐고 따지자 자기 말고 낙타에 대한 팁을 달란다. 이쯤 되면 부의 재분배(?)에 대한 이들만의 특이한 의식구조에 경의를 표해야 한다. 한창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낙타에서 내렸다. 어딘지도 모르는 그곳까지 갔다가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
30분을 넘게 사막 한가운데를 걸어 쿠푸왕 피라미드를 찍고 있을 때 기어코 사달이 벌어졌다. 한 소년이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말했고, 1~2기니 정도 줄 요량으로 카메라를 건네주었다. 녀석은 신이 나서 제멋대로 셔터를 눌러댔다. 그리고는 자기가 사진을 10장을 찍었으니 10 기니를 달란다. 나는 말 없이 2 기니를 건네주었다. 그랬더니 카메라를 품 안에 넣고는 돌려주지 않겠다고 했다.
“좋은 말로 할 때 카메라 돌려줘”
“돈 안 주면, 카메라도 없어!”
그 뻔뻔함과 당당함이 선을 넘었다. 나는 냉큼 달려들어 카메라를 빼앗았고, 그대로 몸을 돌려 내 갈 길을 가려고 했다. 그러자 녀석은 이상한 막대기를 휘두르며 달려와 내 등을 밀쳤다. 참았던 분노가 폭발했다. 내 입에서 정제되지 않은 욕설이 튀어나왔고, 나는 녀석의 멱살을 거칠게 옴켜쥐었다. 그 순간에도 쉬지 않고 내리쬐는 45도 태양광선이 아니었다면, 잔뜩 힘이 들어간 오른손 주먹을 그대로 내질렀을지도 모른다. 그대로 유적지를 떠날까 했지만, 진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이번이 내 인생의 마지막 카이로가 될 것은 분명하니까.
그렇게 먼 길을 돌아 쿠푸 피라미드 입구에 닿았을 때, 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가는 구멍 좌우로 어슬렁거리는 이집션들이었다. 대충 세어 봐도 스무 명은 되어 보이는 그들은, 아가리를 잔뜩 벌린 뱀처럼 입구 주위에 걸터앉아, 들어서는 관광객마다 일일이 집적거리고 있었다.
“와... 진짜 지독하다. 지독해.”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나왔고, 그대로 유적지 밖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잡상인들이 엉터리 파피루스 더미를 들이민다. 나를 친구라고 생각해 내놓은 상품이니 사라는 거다. 이들이 습관처럼 내뱉는 말이 있다.
“너한테만 이 가격에 파는 거야. 친구라고 생각해서.”
물론 그 말을 믿는 바보는 없다. 버스를 타기 위해 걷는 15분 정도의 시간 동안, 나는 10명이 넘는 잡상인의 손길을 뿌리쳐야 했다.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 점점 내려가는 동안, 내가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최후에는 걸쭉한 욕설이 날아들었다. 여차하면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집트의 찬란한 역사 앞에서는 저절로 고개를 수그리게 되지만, 그 후손들의 저열한 행동은 정말이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 번은 숙소의 이집트 직원에게 카이로에는 왜 횡단보도가 없고, 있어도 안 지키는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지금 여기서 건너편으로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바로 눈앞의 도로를 가로지르는 것인데, 뭐하러 굳이 돌아가는 길을 만들어?”
이쯤 되면 내가 이상한 건지, 이들이 이상한 건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오죽하면 카이로에서 길을 건널 때는 반드시 왼쪽에 이집트인을 끼고 가라는 말까지 나돌겠는가.
호기심, 애절함, 신기함, 경외감, 혼돈, 탐욕. 나는 단 이틀 만에 지난 5천 년간 이집트를 훑고 지나갔던 그 수많은 감정을 모조리 느낄 수 있었다. 나일강 물을 마신 사람은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는데, 나일강에 가더라도 물은 절대 마시지 말아야겠다.